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원당희 옮김, «천재 광기 열정2», 세창미디어, 2009.

나폴레옹 – 그의 행동에 불안해진 세상사람들이 보나파르트라고 칭했던 – 은 … 반항하는 국민의회를 척결하고, 단칼에 프랑스의 지배권을 탈취했다. 발자크가 탄생한 1799년은 그러니까 제국의 원년인 것이다. … 소년 발자크는 거만하고 투박하게, 거의 로마인과 같은 열정을 품고, 승리의 날을 예견하던 포고령에서 독서법을 체득했을지 모르며, 아마도 꼿꼿이 세운 그의 어린 손가락은 나날이 변화하는 지도의 경계선을 이리저리 따라다녔을 것이다. 지도 위에서 프랑스는 나폴레옹 군대의 행진에 따라, 넘쳐흐르는 홍수처럼 점점 더 유럽 전역으로 부풀었으니 말이다. – 8쪽

외부의 회오리치는 세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은 그의 내면을 향한 체험으로 자라났다. … 어린 발자크는 저 위대한 세계의 정복자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 세계의 정복자를 바라본 소년에게 그것은 똑같은 하나가 되려는 소망과도 같지 않았겠는가? … 찰나의 순간에 두 사람의 세계 정복자가 잠시 쉬고 있었다. 쾨니히스베르크에서는 무질서한 세계의 착종이 한 사람에 의해 해결될 전망을 보이고 있었고, 바이마르에서는 군대를 이끄는 나폴레옹보다도 적지 않은 전망이 괴테라는 시인에게서 서서히 싹터오르고 있었다. – 10쪽

그는 세계를 단일화하여 세계를 지배하고자 한다. <인간희극>(Comédie Humaine)의 장대한 감방은 강요된 세계의 축소판이다. … 나폴레옹이 그랬듯이 그 역시도 프랑스를 세계의 원환으로, 그 가운데서도 파리를 중심지로 만든다. … 그의 세계의지는 사방으로 끝없이 확장되는데, 이는 그의 위대한 형성자 나폴레옹의 의지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본국과 원정지 사이에서 틈을 내어 민법을 만들었듯이, 발자크 또한 <인간희극>에서의 세계정복을 잠시 미루고 근본적으로 논문이랄 수 있는 사랑과 결혼의 도덕법을 저술한다. … 그가 나폴레옹의 초상 아래쪽에 다음과 같이 적었던 것도 헛된 일은 아니었다. “그가 칼로써 이루지 못한 것을 내가 펜으로 이루리라.” – 14쪽

가장 사소한 자들도 권력이라면 얻고 싶어 어쩔 줄 모른다고 하는 나폴레옹의 가르침 때문에 그들은 타락하였다. … 그리하여 그들은 저 거대한 야망의 총아들이 되는 것이다. 발자크는 이들에게 다른 인물들보다 한층 강인한 근육과 힘찬 언변과 열정적 충동, 성급하면서도 그만큼 살아 있는 생명력을 부여한다. – 17쪽

그가 창작하는 일에 절망을 느껴 현실적인 재력을 원했을 때, 그는 최초로 실제적인 삶에 종사했다. 그는 투기꾼이 된 적도 있었고, 인쇄소와 신문사도 차렸다. 그러나 배반자에게는, 언제나 운명이 준비해 놓고 있는 저 아이러니가 있게 마련이다. 자기가 쓴 책에서는 투기로 한 건 올리기라든가 대소 사업의 기교, 고리대금없자의 술채과 같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그였다. 그는 사물 하나하나의 모든 가치를 알고 있었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들에게 실존의 근거를 정립하여 올바르고 논리정연한 구성 능력을 쟁취한 바 있었다. … 그런데 바로 그 자신의 자본을 몽땅 날리고, 치욕스럽게 파산했던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그가 인생의 반세기 동안이나 그의 널찍한 고역의 어깨 위에 끌고다녔던 채무의 엄청난 무게였다. – 31쪽

‘제2의 눈’을 소유할 수 있는 재능은 물론 마법사와 예지자의 재능만은 아니다. … 그는 지방의 곳곳뿐만 아니라 파리의 세계를 알고 있었다. 책 속에 파묻히듯 혼잡한 거리의 특징을 속속들이 읽고 있어서, 그는 어느 집이 언제 어느 사람에게서 어느 누구를 위해 지어졌는지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대문 위에 새겨진 문장 모양의 자세한 내용이나 건물양식의 전반적인 시기까지도 알아냈었다. … 그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 그는 고상한 인간들의 삶, 부채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단 일 년 만에 이만 프랑을 써버리는 사람들의 삶을 알고 있었다. … 그가 사물들의 표면에서 벗겨낼 수 있었고, 또 그 사물들이 그에게 내적 본질을 드러내었다는 사실은 모든 면에서 그의 특징이자 모든 이에게 비밀의 열쇠였다. … 이렇게 무섭게 뛰어난 직관적 통찰이 발자크의 천재성인 것이다. – 37쪽

그는 사회적 기류를 측정하는 기상학자, 의지의 수학자이자 열정의 화학자, 국가적 근원형식의 지질학자, 다시 말해 다면적인 학자이기를 원했다. 모든 도구를 사용하여 시간의 형체를 간파하고 엿듣는 학자, 동시에 모든 사실의 수집가, 사실적 경관을 그리는 정열의 화가, 그 이념들을 추구하는 군인, 이런 자가 되려는 것이 발자크의 명예심이다. … 그리하여 텐(Taine)의 확언을 빌리자면 그의 작품은 셰익스피어 이래로 있었던 인간기록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전시장이 되었다. – 41쪽

무엇보다 돈이 그의 소설에 등장하였다.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그는 상대성의 통계자로서 외부의 도덕적, 정치적 가치 및 사물의 미적 가치를 자세히 관찰했다. … 그는 방탕아들의 뒤를 따라가 그들의 지출을 산출하고, 고리대금업자에게는 이윤을, 상인에게서는 수입을, 멋쟁이들에게서는 부채를, 정치가들에게서는 뇌물을 산출한다. – 42쪽

발자크는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천재는 언제든지 그의 사고를 행위로 옮길 수 있는 자이다. 그러나 정말 위대한 천재는 이 실행력을 부단히 펼쳐나간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신과 다름없으리라.” … 그의 작품은 … 반면에 … 미완의 토르소로서만 남아 있기에 후세들에게 가장 무서운 자극이 되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본보기가 도달 불가능한 것에로의 모든 창조적 의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44쪽

디킨스

그렇다! 찰스 디킨스가 얼마나 동시대인에게서 사랑을 받았던가를 알려면, 그의 책이나 자서전에 물어서는 안 된다. 사랑은 오직 공개된 말 속에서만 살아 숨쉬고 있다. … 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우편배달일에는 오직 그 책을 먼저 받으려고 2마일이나 배달부를 마중나갔다. 우편물을 받아 돌아올 때면 그들은 이미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 온 마을과 도시, 그리고 나라 전체가, 아니 그것을 넘어서서 지구 전역에 뿌리내린 영어권의 세계가 찰스 디킨스를 사랑하였다. 그것도 첫 대면의 순간부터 그가 생을 마치는 최후의 순간까지 그를 사랑하였다. … 이 명성은 불꽃처럼 폭사되어 올랐으나 꺼질 줄을 몰랐고, 태양처럼 세계를 굽어보며 변함없이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픽위크> 제1호에서 400부가 출간되었던 것이 제15호부터는 40,000부가 출간되었다. 그의 명성은 이런 눈사태의 폭발력을 가지고 자기 시대의 한복판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 46쪽

그의 명성은 월터 스콧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평생 동안 새커리의 천재성을 압도했다. … 그의 시신은 셰익스피어와 필딩과 나란히 영국의 판테온,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다. … 그렇게 대단하고, 넓이와 깊이를 동시에 관철하는 문학작품의 영향력은 오직 상호 대립하는 두 가지 요소를 통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천재적 인간과 시대전통의 통일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것과 천재적인 것은 물과 불처럼 상호 역작용을 일으키는 법이다. – 48쪽

그가 우리에게 특별한 것만을 행하고, 천재에게 하도록 예정된 강렬한 것은 행하지 못했다면, 그를 방해한 것은 영국이나 종족 자체가 아니라 영국 빅토리아 시대라는 순진무구한 찰나의 시간이다. … 셰익스피어가 영웅시대를 구가하던 영국의 화신이라면, 디킨스는 부르주아의 상징에 불과했다. … 셰익스피어가 탐욕스런 영국의 용기를 대변할 때에, 디킨스는 포만한 영국의 조심성을 대변한다. – 51쪽

디킨스는 1812년에 태어났다. … 영웅의 시대가 지나간 것이다. … 셸리는 티레니아 호반에서 익사하고, 바이런은 그리스 해안 미서롱지에서 열별에 걸려 재가 된다. 시대는 더 이상 모험가를 원하지 않는다. 세계는 암담한 색깔로 칠해진다. 영국은 안락하게 그저 피의 약탈물만을 낭비한다. 부르주아, 상인, 중계인이 왕인 것으로, 이들은 침대에서 뒹굴듯 옥좌에서도 제멋대로 행동한다. 영국은 먹은 것만을 새김질한다. … 예술은 감상적일 수는 있어도 비극적일 수는 없었다. … 당시의 사람들은 벽난로 예술을 원했다. 폭풍우가 몰아쳐 기둥뿌리를 뒤흔드는 동안, 난롯가에서 기분좋게 읽힐 수 있고 또한 그 자체가 가볍고 태만한 불꽃을 여기저기서 날름대어 가끔씩 긴장을 돋우는 그런 책들만을 원했다. 예술이란 따뜻한 차처럼 심장을 슬며시 데워주되, 뜨겁고 격렬하게 도취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 52쪽

디킨스는 당대 영국의 걸작품이 되어 버린 예술욕구의 발로이다. … 그가 이 욕구에 압도된 것이 그의 비극이었다. 그의 예술은 비만한 영국의 안락함에서 생겨난 위선적 도덕으로 길러졌다. … 디킨스는 절대로 이런 영국에 맞서 투쟁한 일이 없었다. – 54쪽

그는 전종족에 대해, 입법자들이나 시민에 대해, 모든 인습의 허위에 대해 성난 주먹을 위협적으로 곧추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만 여기저기 조심스런 손가락으로 분명히 잘못된 부분만을 지적한다. 영국은 1848년 당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유럽의 유일한 나라였다. 그랬기에 그 역시도 변혁을 일으켜 새롭게 창조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오직 부분적인 수정과 개선만을 원하였다. – 57쪽

발자크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끝없이 불만스럽다. 각자가 한결같이 세계정복자이자 변혁자, 아나키스트이자 동시에 폭군이다. 그들은 나폴레옹의 기질을 소유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주인공들 역시 열정적이고 또한 망아적이다. 그들의 의지는 세계를 부정하고, 현실적인 삶에 대해 조금도 만족하지 못한 채 참된 삶을 추구한다. 그들은 시민이나 범인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세주가 되려는 위험한 자만심이 모든 굴종을 맛보면서 그들 각자의 내부에서 번뜩인다. 발자크의 주인공은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며, 도스토옙스키의 주인공은 세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들 양자는 일상성을 초월하려는 긴장, 무한성에의 지향을 공유한다. 디킨스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가 겸허하다. … 그들의 이상은 세속적이고 소시민적 이상이다. … 그의 위대하고 기념비적인 행위는 … 산문적인 것에서 시를 발견해 냈다는 바로 그 점에 있었다. 그는 최초로 일상의 나날을 시적인 것으로 굴절시켰다. – 58쪽

디킨스는 아주 단순한 임금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 저속한 것에 대해서 매우 호기심 어린 열광을 보였고, 아주 쓸모없는 구식 물건이나 생활의 허섭스레기에 대해서도 감흥을 보였다. 그의 책 자체가 누구나 무가치하게 여길 수 있었던 잡동사니의 골동품 전시장이었다. – 59쪽

그는… 조용한 기쁨의 불씨가 일상의 잿더미에 파묻혀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그들이 일상의 나날을 불태워 순수히 쾌적한 열기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