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계획을 세우며 시작되어 지식을 채우며 끝난다. (3) 알프스와 CERN

파리와 로마에서 인류가 만든 작품들과 상징을 주로 새겼다면, 스위스 알프스와 이탈리아 알프스에서는 자연이 선사한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했다. 스위스 알프스는 소문대로 동화처럼 예쁘고 아름다웠다. 이탈리아 쪽 알프스는 훨씬 거칠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날씨의 축복을 받아서 여행 기간 내내 맑은 하늘과 함께했다. 스위스에서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이틀 뒤에 이탈리아 알프스인 돌로미티를 보았는데, ‘아, 스위스 경치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여기가 최고네!’ 하고 여러 번 감탄했었다. 이탈리아 쪽 알프스는 신비로운 외계 행성의 느낌이 난다. 두 곳 모두 나중에 꼭 다시 찾아가고 싶은데, 이제 집에 돌아와서 굳이 한 곳을 고르자면 (물가는 매우 높지만) 스위스 알프스에 마음이 더 간다. 경치가 가장 멋진 곳과 머물고 싶은 곳은, 좀 다른 의미인 것 같다. 돌로미티 아래 작은 도시 코르티나에서는 2026년 동계올림픽(밀라노와 공동 개최)이 열린다.


좌/중: 스위스 알프스(그린델발트 보르트) 우: 이탈리아 알프스(돌로미티)

위 오른쪽 사진을 보면 하얗게 빛나는 암벽산이 보인다. 석회암과 비슷한 하얀 암석이 백운암(돌로마이트)이다. 이 암석의 발견자인 프랑스 지질학자 돌로미외의 이름을 본떴고 추후 이곳의 이름이 되었다.

위 사진은 돌로미티로 가는 초입에 있는 작은 마을 “발레 디 카도레” 길가 어드메에서 찍은 것이다. 구름을 뚫고 새나오는 빛줄기가 교회와 어우러져 성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성당이나 교회 이름 중에 ‘산타 루치아’가 자주 나오는 것이 이해된다. ‘산타 루치아’는 ‘성스러운 빛’이라는 뜻이다. 베네치아 기차역 종점이 산타 루치아 역인데 광장에 서 있으면 운하에 반사된 햇빛에 눈이 부시다.


라가주오이 산장에서 바라본 풍경. 오른쪽(남서쪽)에 만년설이 쌓인 돌로미티 최고봉 ‘마르몰라다‘가 보인다.

언젠가 라가주오이 산장에서 묵으며 이 장관에 펼쳐지는 일출과 일몰도 보고 싶다. 위 사진과 비슷한 구도에서 찍은 것이다.



라가주오이 산장의 모습과, 산장의 뒤편(북동쪽)에서 바라본 풍경

돌로미티에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장소는 ‘트레 치메’(거대한 세 암석 봉우리)인데 아우론조 산장까지 차를 타고 와서 시작하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오는 길 또는 가는 길에 아래쪽의 미수리나 호수를 구경한다.


미수리나 호수. 호수 저쪽의 노란빛을 띤 건물은 호텔이 아니라 천식환자 치료센터다.


아우론조 산장 뒤쪽 풍경


아우론조 산장 앞으로 펼쳐진 협곡 풍경

서울신문 임병선 기자가 돌로미티를 다녀와서 “지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을 둘러본 느낌“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제네바로 가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아침 알프스 그린델발트로 가려고 제네바에서 인터라켄행 열차를 탔고, 이제 인터라켄에서 그린델발트행 열차를 갈아타면 될 참이었다. 전광판에서 갈아탈 곳이 2번 승강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2번 승강장으로 갔는데 다른 방면인 라우터브루넨행 열차를 탈 뻔했다. 같은 플랫폼에서 출발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가는 두 열차가 붙어있는 것을 모르고 탑승해야 할 뒤쪽 승강장이 아닌 앞쪽 승강장에서 기다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붙어있는 두 열차가 동시에 출발한 다음 분기점에서 갈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무작정 1호차~7호차에 올라타서는 8호차~13호차로 옮겨갈 수가 없다.

역사에서 일단 지하로 내려간 다음 승강장 번호를 확인하고 표시된 방향대로 나가면 문제될 것이 없다. “← Grindelwald”라고 화살표까지 벽면에 큼직하게 표시해 놓았기 때문에 헷갈릴 일이 없는데도,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있었다는 점이 화근이었다. 화살표 따라 왼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되니까 당연히 경사로인 오른쪽으로 올라가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무거운 캐리어가 있었으므로 오른쪽 경사로로 나갔는데, ‘어차피 같은 승강장’이라고 여겼던 것이 착오였다. 2A와 2B로 2번 승강장을 반으로 나눠쓴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갈아탈 열차에 탑승하기 전에 기념으로 찍어둔 것인데 왼쪽 위 전광판을 자세히 보면 그린델발트행이 아니라 라우터브루넨행이라고 표시돼 있다. 엉뚱한 열차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던 것이다.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아는 길도 다시 한번 물어보는 게 좋다 여기고 직원에게 ‘그린델발트 가는 거 맞나며’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저 뒤쪽으로 가라고 알려주더라. 낯선 여행지에서는 아는 길도 물어가면 뭐라도 하나 더 얻는다. 만일 2B 승강장에서 타야 하는 줄 모르고 2A 승강장에서 탔다면? 그 사실을 열차 출발 후에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분하게 정보를 검색하여 다음 역에 내린 다음 올바른 객차칸으로 옮겨 타면 된다.

그린델발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목적지인 보르트 숙소에 잘 도착했다. 위 사진은 보르트에서 해질 무렵 찍은 것으로 오른쪽에 아이거 산이 보인다. 높은 봉을 기준으로 세로로 수직선을 그으면 오른쪽 움푹 들어간 부분이 보이는데 바로 ‘노스페이스’라고 잘 알려진 북벽이다. 다른 봉우리에 비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지만 거대한 바위 직벽이라서 등정하기가 매우 힘들다. 많은 이들이 이 북벽을 오르다가 목숨을 잃었다. 아이거 오른쪽으로 살짝 솟은 설산은 질버호른이다. 질버호른 왼쪽에 있는 융프라우는 아이거에 가려서 안 보인다. 해질 무렵의 모습이고 햇빛이 오른쪽에서 비치고 있으니 오른쪽이 서쪽이고 앞쪽이 남쪽이다. 따라서 저 험준한 산들을 넘으면 남쪽 나라인 이탈리아로 통할 것이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아이거 산의 정남향은 토리노와 밀라노 사이다.

스위스 알프스에서 이탈리아 알프스로 넘어가는 경로 중에 인스부르크와 볼차노 사이 관문인 브레너패스가 있다. <이탈리아 기행>을 남긴 괴테가 그 길을 지나 이탈리아로 갔다. 괴테는 알프스를 넘은 다음 베로나, 비첸차, 파도바를 거쳐 1차 목적지인 베네치아에 도착한다.

나는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하고 길을 잘 찾는 편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길을 참 많이 헤맸다. 종이 지도 대신 온라인 앱에만 의존을 했기 때문인데, 항상 ‘북쪽’을 기준으로 모든 길을 파악하던 내 방식과 요즘 길찾기 프로그램의 방식이 너무나 달라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종이 지도로 ‘어느 쪽’인지 대강 파악하고 표지판 등을 보며 가다보면 결국 목적지 근처로 가게 되는데, 길찾기 앱은 북동쪽인지 남서쪽인지 알려주기보다는 ‘지금 좌회전인지 우회전인지’ 알려주는 방식이라 인터넷 연결이 조금만 지연되거나 끊겨도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다음 여행에서는 종이 지도도 챙기게 될 것 같다.

숙소가 있는 보르트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피르스트(First)가 나온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하늘 아래 첫 마을이라는 뜻이다. 위 사진 왼쪽에 커다랗게 보이는 봉우리가 베터호른이고 오른쪽에 가까이 보이는 암벽산이 메텐베르크다. 그 사이로 멀리 뫼산(山) 글자처럼 솟은 봉우리는 슈렉호른(4078m)이다. 보르트 숙소에서도 잘 보인다. ‘보르트 숙소에서도 잘 보인다’고 방금 적었는데 머물던 당시에는 멋진 산이 저 멀리 있구나, 하는 정도였지 이름까지 알진 못했다. 구체적인 명칭들은 귀국하고 나서 지도와 견주어보며 확인한 것이다. 숙소에서 멀리 보이던 봉우리 슈렉호른을 당시에는 ‘그 유명한 융프라우’겠거니, 하고 막연하게 추측했었다. 숙소에서는 융프라우가 안 보인다. 일정을 마치고 여행 복습을 하면서 여행기를 쓰지 않았다면 슈렉호른은 내 추억 속에 융프라우로 잘못 기억됐을 것이다. 위 사진을 보면 오른쪽 아래로 구불구불하게 절벽길이 설치돼 있는데 오른쪽 끝 전망대에서 보면 아래 풍경이 펼쳐진다. 역광이라 사진이 뿌옇게 나왔는데, 자세히 보면 높은 아이거 오른쪽 뒤로 멀리 융프라우가 살짝 보인다.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가 앞뒤로 일직선상에 놓이기 때문에 피르스트에서 보면 묀히는 아이거에 가려서 잘 안 보이고, 융프라우는 각도에 따라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피르스트에서 보이는 아이거 북벽의 오른쪽으로 돌아가 서쪽 방향에서 보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란히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가 한눈에 보일 것이다. 피르스트에서 50분 정도 더 올라가면 바흐알프 호수를 볼 수 있다. 아래에서 쉬고 있던 아들과 나를 대신하여 아내가 다녀왔다.

왼쪽에 베터호른과 중간에 슈렉호른이 보인다. ‘마테호른’처럼 알프스의 봉우리 이름에는 ‘호른’(horn, 뿔)을 주로 붙인다. 피르스트에서 보이던 슈렉호른은 완전한 뫼산(山) 모양이었는데 조금 더 높이 올라가서 바라본 슈렉호른은 오른쪽 획(낮은 봉우리)이 아래로 숨어버렸다. 바람이 없고 잔물결이 일지 않는 날에는 거울처럼 호수에 산들을 비친다고 한다.

보르트에서 환상적인 일몰 풍경을 보고, 다음날 일찍 그린델발트에서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산악열차를 탔다. 중간에 ‘클라이네 샤이덱’ 역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한다. 이 역 근처에 호텔이 있는데 여기서 보는 아이거 북벽의 경치를 최고로 친다(고 하더라). 자연 경관이 최고라고 함은 다른 곳과 견주어 1등이라는 뜻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감동을 선사한다는 뜻인 듯하다. 해발 약 3454m에 있는 융프라우요흐(‘처녀어깨’라는 뜻, 융프라우 능선)는 “Top of the Europe”이라는 별명을 지녔지만 이곳이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곳은 아니다. ‘유럽의 꼭대기’라기보다 ‘유럽의 지붕’ 정도 의미로 여기 기차역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철도회사에서 지은 슬로건이다.


좌: 묀히 봉우리 / 중: 알레치 빙하 / 우: 융프라우 봉우리

융프라우 봉우리는 약 4158m이고 알프스 최고봉은 약 4808m인 몽블랑이다. 분류 기준에 따라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있는 엘브루스산(5642m)을 유럽 최고봉으로 치기도 한다. 지구 지형이 시간이 지나며 바뀌므로 산 높이 역시 측정 시기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에베레스트도 현재는 8848m가 아니다. 융프라우요흐 약 3571m에 스핑크스 전망대가 있다. 위 사진들을 스핑크스 전망대에서 찍었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보면 융프라우 아래 설원에 모여있는 사람들 모습이 작게 보인다.

그 개미들처럼 보이는 사람들 사이로 나도 잠시 후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이쪽 전망대를 찍으면 다음처럼 나온다.

저 전망대는 암벽을 뚫은 기차역에서 엘리베이터로 연결된다. 이 높은 곳까지 터널을 뚫고 열차를 개통시킨 스위스인들은 ‘기차 부심’을 한껏 부려도 된다. 융프라우요흐 역으로 가는 산악열차 안에서 승무원이 스위스 초콜릿을 나눠준다.

다음날 인터라켄에서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했다.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환상적인 경험을 하고 나니 오래된 고소공포증이 반 정도는 극복된 것 같다. 위 사진은 패러글라이딩 출발 장소에서 찍은 것으로 툰 호수와 멀리 알프스가 보인다. 구형 핸드폰으로 찍어도 이런 경치가 담긴다. 아래 첫째 사진은 하늘 위 아들 시점에서 본 풍경이다. 그다음 사진들에서 멀리 보이는 설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융프라우다. 어제 저기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공원에서 본 융프라우

인터라켄은 ‘호수들 사이’라는 뜻을 지닌 마을로 브리엔츠호와 툰호 사이에 있으며 알프스 관광의 중심지이자 교통 요충지다. 이 마을 중심부에 축구장 5개 면적의 넓은 초지(회에 마테 공원, 위 사진에서 패러글라이딩 내리는 풀밭)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1864년 개인 투자자 37명이 이 땅을 사들인 다음 아무것도 짓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짓지 않으려고 땅을 사다니… 돈을 참 근사하게 쓴다.


툰 호수 유람선을 타면서 잠깐 들렀던 마을 슈피츠, 다음에 또 오면 여기에 숙소를 잡고 싶다.

걸작 예술품이나 건축물, 알프스나 호수의 멋진 경관이 아니더라도 값진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장 자크 루소의 고향 제네바에 하루 머물렀다. 기념관(생가)에는 들르지 못했고 그의 이름을 딴 호텔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의 이름을 딴 학교(Collège Rousseau, 대학인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였다.) 옆을 지나쳐 갔을 뿐이지만 그의 고향에 와서 그가 썼던 글과 그가 펼치고자 했던 일을 떠올리는 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제네바에는 유엔 유럽사무소가 있다. ‘유엔 난민 기구’는 외견상으로는 다른 건물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콘트리트지만 그 단체의 존재 의의를 되새기는 일은 특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제네바는 레만 호수를 끼고 있는 도시다. 베토벤을 모델로 삼아 집필된 <장 크리스토프>는 로맹 롤랑의 작품이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 교수였던 그는 평생을 반전, 평화 운동에 매진했던 인물로서 레만 호수가에서 살았는데 마하트마 간디가 그를 만나러 찾아온 적도 있다.

제네바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종점인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 세른)에 다녀왔다.


CERN행 트램과 CERN 전경, 맥스웰방정식을 비롯한 여러 수식이 새겨진 조각

세른(CERN)은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걸쳐있는 거대한 지하 실험실로서 물리학의 최전선이다. 월드와이드웹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실험 장치인 입자가속기가 두 국경에 걸쳐 있을 정도로 워낙 넓어서 연구원들끼리 정보를 쉽게 공유하려는 목적에서 생겼다. 도넛 모양으로 된 입자가속기 안에서 소립자들을 빛의 속력에 가깝게 가속시켜 충돌 실험을 한다, 아인슈타인이 밝혔듯 입자(질량/물질)와 에너지는 조건만 맞으면 서로 모습을 바꾼다. 이 실험으로 새로운 입자가 발견되기도 한다. 과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면서부터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도착했을 무렵 노을마저 무척 아름다워서 마치 꿈속을 거니는 것 같았다. 과학 에세이 <과학의 위로> 집필 후 성지 순례인 셈이다.


CERN의 입자가속기 모형들(좌: 제네바 CERN / 우: 밀라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립기술박물관)

스위스 일정을 마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 들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관람하였는데, 관람 후 기차 시간이 좀 남아서 근처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립기술박물관에 들렀다. 여기에도 세른의 입자가속기 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기보다는 본 만큼 보였다는 편이 맞을 것 같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