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Das Wichtigste in der Musik steht nicht in den Noten.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보에 없다.” – 구스타프 말러
L’essentiel est invisible pour les yeux. – 〈Le Petit Prince〉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어린 왕자>
2023. 9. 9. 이름 기억하기
내 강의를 준비해주신 분들, 내 강의를 들어준 분들과 인사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 그럴 때는 눈맞춤이나 악수 등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되도록 이름까지 기억해두려고 노력한다. 먼저 이름을 묻고 수첩이나 핸드폰에 적어둔 다음 꺼내보면서 그분의 인상을 떠올리며 외운다. 어차피 오늘 지나면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을 굳이 이름까지…? 그렇게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아예 이름을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기억에 남는 분들도 당연히 없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바꾸면 인생의 방향도 달라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한 번 만났는데 이름까지 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일단 시도하면 이름을 기억할 가능성이 열리지만, 이름을 묻지 않으면 이름을 기억할 가능성은 0이 되고 만다. 혹시 기억하기 어렵거나 기억한 다음 나중에 까먹는 일이 있더라도, 인사를 나눈 사람의 이름은 꼭 기억해두리라 다짐했고 요즘에도 계속 실천하고 있다. 그 사람을 나중에 다시 만날지 못 만날지는 미리 알 수 없으며 그것을 알 수 있는 건 운명의 소관이지 내 일이 아니다. 다만, 새로운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이름을 기억하려는 태도는 더없이 좋은 것이며 그 일이 오롯이 내 소관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거면 계속할 이유로 충분하다.
2023. 8. 25. 수학 교양
요즘 재미있게 읽는 수학 교양서는 에르베 레닝, <세상의 모든 수학>(이정은 옮김, 다산북스).
지금까지 읽은 것 중에서 다시 읽고 있는 책은,
케이스 데블린의 <수학의 언어>(전대호 옮김, 해나무)와 <수학: 새로운 황금 시대>(허민 옮김, 경문사)
2023. 8. 24. 광속
보통 광속이라고 부르는 c는 꼭 빛에만 해당하지는 않고 질량이 없는 입자라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속력이다. 299,792,458m/s이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면 실제 속력은 그 이상일 수도 있는데 우리가 측정 가능하고 인식 가능한 상한선이 c가 아닐지…
2023. 8. 21. 디지털과 아날로그
이음매 없는(seamless) 것들을 ‘아날로그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소 단위로 끊어져 있는 것을 디지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음매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자세히 보면 끊어져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경우들이 많다. 우리가 보는 이미지와 영상물들이 대부분 그렇다. 아날로그적인 흐름처럼 보이는 물줄기도 H2O라는 조각들의 무수한 흐름이다.
2023. 8. 1. 화성학
‘도레미파솔라시도’는 ‘CDEFGABC’인데 왜 ‘도’를 A가 아닌 C라고 표시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내 화성학 공부의 막이 올랐다. 20대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인데 이제야 하게 됐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에 늦음이 있을리 없다. 화성학 역사 첫 장을 장식하는 인물은 피타고라스네.
2023. 7. 1. 손글씨
캘리그래피까지는 아니고 자연스러운 멋이 배어나는 필기체를 연습 중이다. 손글씨 작업을 촬영하고 있는데, 촬영의 목적은 미감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영상으로 찍어서 보면 쓰면서는 알지 못했던 부족한 부분이 잘 보인다. 그러면 애써 편집까지 마친 영상을 임시 보관함에서 삭제한다. 몇 번이 되든 ‘이 정도면 됐다’ 하는 수준이 될 때까지 반복하여 작업한다. 갈수록 그런 느낌이 잘 안 들고 작업 결과물이 대부분 맘에 안 든다. 그러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내 미감이 향상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 숱한 과정 속에서 일순간 미감과 실력은 한꺼번에 도약한다.
2023. 6. 30. 영상 편집
영상 편집은 똑같은 내용을 더 돋보이게 해주고 더 잘 이해시켜주는 마법이다. 더 열심히 배울 가치가 있다. KBS <역사스페셜>이 닮고 싶은 모범이다.
2023. 6. 25. 말을 잘하는 것
말을 잘하는 것은 대화에 능한 일이다.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할 줄 알고 타인의 질문이나 견해에 적절하게 대응할 줄 아는 일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즉흥성이 뛰어나고 청산유수 같은 달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깊이 숙고하고 더 나은 해답을 찾아 궁리하는 사람이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 평소 견해를 차분하게 표현하는 일을 가리킨다.
2023. 6. 24. 난제 해결
난제에 매달리는 것이 유익한 것은 해결 노력 과정에서 무수한 지식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자 황준묵 교수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능수능란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기보다는 문제 풀이에 골몰하면서 능수능란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 생활을 할 때 굉장히 어려운 문제에 도전했습니다. 지금도 못 푸는 난제였죠. 지도교수가 이 문제를 풀어서 박사학위 논문을 써보라면서 던져준 문제였습니다. 밑바닥에서 도전하는 과정이었죠.. 결국에 그 문제를 못 풀었지만 거기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다른 연관된 문제를 풀어 학위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 <사이언스온>, “문제풀이와 증명의 통쾌함과 즐거움”
난제 해결이라는 최종 목표에만 가치를 두면 난제 풀이 과정의 고난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좋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 고단한 시간을 버틸 수 있다. 난제 해결과 연관된 다른 분야도 그러한 것 같다. 남풍현의 <고대 한국어 연구>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14수…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해독이 시도되었으나 해독이 각기 다르다. 같은 작품이 여러 사람에 의하여 해독되었으면서도 해독자마다 다르다는 것은 해독이 안 되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향가 해독 작업이 아직 미완료 상태라니 놀랍다. 로제타석을 해독한 토머스 영, 장 샹폴리옹의 이야기도 그렇고, 독일군 암호를 해독한 앨런 튜링 얘기도 그렇고… ‘해독’하는 일에 깊은 매력을 느낀다. 앞으로 무언가 해독할 기회가 올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뭔가를 해독하게 되리라는 건 어렴풋이 미리 알 수 있다. 관심을 붙잡고 있으면 결국은 하게 되니까.
2023. 6. 23. 풍부한 한국어 표현
정확하고 적절하고 아름다운, 풍부한 한국어 표현을 더 많이 연습하고 연구하자.
2023. 6. 20. 쉬운 설명
플라톤의 <국가> 제7권 “동굴 비유”에는 “그가 높은 곳의 것들을 보게 되려면, 익숙해짐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네.”(516a)라는 구절이 있다. 어렵게 이해하고 터득한 것을 쉽고 간략하게 설명해주는 일에는 즐거움과 보람이 뒤따른다. 나는 그런 일을 한다.
* 징검다리라는 상징:
나는 글쓰기가 징검다리 놓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는 것은 개울에 징검다리를 놓는 일인데, 두 돌 사이 간격이 너무 멀면 위험해서 재미를 느낄 여유가 없고 돌들 사이 간격이 너무 촘촘하면 그냥 다리 같아서 재미가 없다. 총총총, 건너는 즐거움을 주는 적당한 간격이 있는데 그건 물의 깊이와 개울폭을 고려하여 직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5미터밖에 안 된다 해도 물이 깊으면 보통 때보다 더 촘촘하게 돌들을 놓아야 한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한 20미터는 된다 해도 물이 무릎도 안 잠길 정도 깊이라면 듬성듬성하게 돌들을 놓아야 깡총깡총 건너는 즐거움이 생길 것이다.
아주 힘들게 어떤 개념을 이해했는데 이해하고 보니 너무나 당연하고 의외로 아주 쉬운 거였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그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처음부터 알았던 것처럼 ‘당연히 ~이 된다’라고 설명을 할 때가 있다. 그 생략된 과정을 잘 복기하면 무척 유용한 해설문을 쓸 수 있다.
* 징검다리 놓기의 좋은 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입문하는 가장 쉽고 친절한 안내서인 박홍균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상대성이론>(이비락)
** 근사적 지식의 중요성
우리가 세상을 파악하는 것은 대체로 어림값이다. 방향만 올바르다면 근사적 지식은 늘 유익하다. 근사적인 지식의 효용을 잘 알아야 근사적 지식에 만족하지 않게 된다.
2023. 5. 21. 주제 일기
내가 쓰는 일기장은 대부분 공부를 위한 예비 노트인데 15가지 정도를 쓰고 있다. 한국어 공부, 외국어 공부, 과학 공부, 수학 공부, 음악 공부, 어려운 구절 해석, 강의 기록, 연결된 지식, 암기법, 디지털 활용법, 개념과 다이어그램, 표현법, 아들, 취향과 순위, 기업 분석.
2023. 5. 19. 운 맞추기
라임(각운)을 포함해 운을 맞추는 것은 시와 노랫말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 예컨대 영화 <몬스터싱어>(La Seine)[라 세느]의 주제곡에 “La Seine”에서 ‘La Seine’(세느강)과 ‘La scène’(무대)를 대비시킨 것.
2023. 5. 19. 알프레드 히치콕
‘사이코’의 샤워실 장면에 나오는 끽-끽-끽 소리는 버나드 허먼이 바이올린을 사용하여 낸 효과음이다. 다 보여준다고 더 끔찍한 건 아니다.
2023. 5. 8. 연결된 지식
지식에는 경계가 있지만 담장 같은 건 없다. 경계 역시 편의상 가상으로 그려둔 선일 뿐이다.
2023. 4. 25. 1970년대 일본 포크송
田中ユミ[다나카 유미]와 玉井タエ[타마이 타에]로 이루어진 포크 듀오 “シモンズ”[시몬즈]가 부른 “恋人もいないのに“을 듣고 있다. 이 앨범은 60만장이 판매되었고, 시몬즈는 제13회 일본레코드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北山修[기타야마 오사무](작사)、加藤和彦[가토 가즈히코](작곡), “あの素晴しい愛をもう一度” [아노/스바라시아이오/모-이치도] (그 멋진 사랑을 또 한 번)를 다시 들었다. 가수의 퍼포먼스를 조용히 감상하며 듣기에 좋은 곡들이 있는가 하면, 함께 즐겁게 따라부르는 게 좋은 곡들이 있다. 영화 <박치기>에 엔딩곡으로 들어갔다. 혼자 부르는 것보다는 여러 뮤지션들이 함께 부르는 커버 버전들이 좋다. 첫 솔로 부분을 부른 가수는 야마모토 준코다. 야마모토 준코가 멤버로 있던 그룹 “赤い鳥” [아카이도리] (붉은새) 발표곡 “翼をください” [츠바사오구다사이] (날개를 주세요)는 일본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다.
2023. 4. 25. 프렌치팝
“Le coup d’soleil”(햇별에 그을림) (원곡: Riccardo Cocciante[리카르도 코치안테])
분위기가 상반되는 두 버전: 앙젤 버전 | 엠마 뻬테흐스 버전(리메이크: Bon Entendeur)
2023. 4. 24. 번역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위기 파악 같다. 분위기에 따라 똑같은 단어 똑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오역이 아니라 해도 관점은 스며들게 된다.
2023. 4. 22. 의미부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
2023. 4. 21. 시도하는 경우의 성공 가능성
코넬 대학의 물리학자 필립 모리슨과 주세페 코코니는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를 촉구하며 논문에 이렇게 적었다. “성공 확률을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수색하지 않는다면 성공 가능성이 0이란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시도하고 도전한 사람들 중에 수많은 이들은 실패를 경험하지만, 성공이란 시도한 자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점만은 명백하다. 어떤 연대 정보를 보았을 때 ‘이런 걸 뭐하러, 어떻게 다 외워’ 하는 태도로 임하면 암기불가능 한가지 경우로 귀착되지만, ‘외워볼까?’ 하는 태도로 임하면 암기불가능/암기가능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
2023. 4. 18. 에너지
원전 제로를 선언한 독일의 첫날이다.
2023. 4. 17. 마라톤
왜 그런지 모르지만 킵초게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내가 달리고 있는 것처럼 감정 이입이 된다. ‘한계를 깬다’는 의미에 가장 어울리는 스포츠. 예전에 아내와 바르셀로나에 여행을 갔을 때 황영조 선수가 달렸던 몬주익 언덕을 걸어서 오른 적이 있는데, 너무 가팔라서 놀랐던 게 기억난다.
2023. 4. 16. 문제 설정
톰슨이 원자는 ‘건포도 박힌 푸딩’ 같다고 설명하자, 여기저기서 원자 모델에 대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새로운 글을 쓰는 것보다는 리뷰가 쉽고 그보다는 댓글 다는 게 훨씬 쉽다! 톰슨 모델은 곧 반박되었는데 그가 ‘아젠다 설정’을 애초에 잘 했기 때문에 동료 연구자들의 협업이 이루어져서 더 나은 이론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23. 4. 15. 삽화
책을 읽다가 삽화가 나오면 주의 깊게 본다. 좋은 삽화가는 텍스트 내용을 그대로 재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 알파를 표현해내는 것 같다. 텍스트로 이미 충분히 표현된 것을 굳이 그림으로 다시 보여줄 필요가 있겠는가. 그림은 텍스트로는 도무지 전달하기 어려운 시각적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한다.
2023. 4. 14. 고치고 다듬기, 그리고 ‘유튜브’의 효용
나는 일단 작성한 문서를 다듬고 고치는 것을 좋아한다. 10년 전에 처음 작성한 문서를 지금도 고친다. 물론 어느 부분이 고쳐졌는지는 나밖에 모른다. 내가 문서를 고치는 것은 내가 다시 나중에 참조하려는 목적이 커서 나를 위해서라도 공들여 정확성 높은 더 좋은 정보로 업데이트를 한다. 유튜브 계정을 만들어서 강의나 해설 자료를 올릴 때 무척 당황스러웠던 건 일단 업로드한 영상을 고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오류가 발견되거나 더 나은 내용으로 고쳐서 보완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게 불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요즘에는 신중하게 영상 자료를 올린 다음에 웹 문서 하나를 하나 따로 만들고 링크를 ‘더 보기’ 항목에 넣어둔다. 그리고 고치고 보완할 점은 웹 문서에 반영한다. 시청자에게는 영상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서가 제공되는 것이므로 두루 유익한 것 같다.
2023. 4. 13. 썬킴
재미있는 EBS 영어 강사로만 알고 있던 썬킴은 세계사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그의 공부법을 라디오로 들으며 그 ‘설명력’에 감탄했는데 그가 쓴 역사 에세이라면 안 봐도 미리 재밌을 것 같다.
2023. 4. 12. 축구 해설
한준희 해설위원이 다른 해설자들과 무척 다른 것은, 다른 사람들(진행자/해설자)이 한창 이야기할 때 잘 들어줄 뿐 자기 말을 할 준비를 미리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해설자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온전히 경청은 하지 못하고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말할 준비를 한다. 자기가 열심히 준비한 것을 다 말하고자 하는 의욕이 표정에 다 보인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잘 듣고 있다가 자기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이미 다른 해설자들이 말한 내용은 모두 덜어내고 추가로 꼭 필요한 말만 얹는다. 아는 건 누구보다 많지만 가장 적게 말한다.
2023. 4. 11. 파이널컷프로
영상 편집 기법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서 유튜브 강의 영상들을 보며 파이널컷프로 사용법을 차근차근 배우고 있다. 내 유튜브는 텍스트 기반이니까 굳이 영상 편집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달리 생각해보면 영상 편집을 할 줄 모르고 귀찮으니까 적당히 타협하고 체념한 건지도 모른다. 당장 필요가 없으니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보다, 새로운 기법과 기술을 경험하고 나면 새로운 차원의 필요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배움과 앎은 그렇게 새로운 차원과 영역으로 확장되는 거지.
2023. 4. 9. 외국어 공부
어느 순간 외국어 공부의 올바른 방법을 깨달았는데, 실체를 보려고 하지 말고 ‘실루엣’을 보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읽기와 듣기 모두, 외국어든 모국어든 모든 언어 표현은 ‘실루엣’을 주고받는 일이다. 동그라미 하나와 작대기 5개로 ‘사람’을 표현하듯 언어도 그렇다. 의미 교환에 필요한 최소 사항이 이를테면 의사소통의 실루엣인데 철자나 단어 단위로 보려고 하지 말고 어렴풋한 문장 전체, 어렴풋한 단락 전체를 희미하게 보는 게 중요하다.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도 상대방이 열 마디 말을 할 때 두어 마디만 듣고도 어떤 뜻일지 언어의 실루엣을 그릴 수 있다면 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프랑스어 대화에서 ‘떵’ 비스무리한 발음이 들리면 그 대화는 날씨 또는 시간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을 넘겨짚을 수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는데 95퍼센트 정도는 맞다. 실루엣을 통한 의사소통이 원활해진 상태에서 실체를 향한 접근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것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해석학.
2023. 4. 9. 프로페셔널
프로페셔널을 규정하는 여러 조건이 있을 텐데, 의욕이 떨어지고 무기력에 빠졌을 때 벗어날 수 있는 자기만의 루틴이 있는 사람은 진정한 프로다. 전문가나 장인, 프로선수들도 사람인지라 항상 최고 컨디션을 유지하긴 어렵고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훌륭한 프로페셔널은 그 기간이 짧다. 금세 자신의 루틴을 회복하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어떤 일을 완수하는 데 최대 걸림돌은 시간 부족이 아니라 갑자기 찾아오는 무기력이다. 무기력 벗어나기 매뉴얼이 있고 그 매뉴얼이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여러 번 검증된 것이라면 그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집행 직전에 유배 명령이 떨어져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졌던 도스토옙스키에게 가혹한 4년간의 유배 시간은 엄청난 창작열이 지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원고지와 펜으로 창작을 할 만한 조건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고된 일과 중에 오로지 머릿속으로 창작을 했다. 무기력을 느끼는 것조차 사치인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을 테지만, 그가 절망에 빠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온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를 일으켜세웠을 것이다.
2023. 4. 8. 편집
“처음 영화음악을 맡은 건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영화야 어떻게 되든 내 음악만 눈에 띄면 된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마지막 황제’에서 어린 황제가 수천 명 앞에서 즉위식을 하는 장면에 저는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 올리는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시사회 때 가보니 음악이 전부 빠져 있더군요. 그때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다시는 영화음악을 안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지금은 왜 베르톨루치 감독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다”며 “때론 음악보다 정적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정말 훌륭한 영화는 음악이 없다는 걸 인식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 사카모토 류이치 “영화에 음악 꼭 필요하다 생각지 않아”(한국일보)
봉준호 감독도 그렇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그렇고… 예술가들은 애써 공들여 만든 것을 마지막 단계에서 잘 버릴 줄 아는 사람들 같다.
2023. 4. 7. 영화 음악
존 윌리엄스 영화 음악: 크리스토 리브(슈퍼맨 역)는 인터뷰에서 “존 윌리엄스 음악이 없다면 저도 날다가 추락을 하고 말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 음악 만드는 음악가들에 관한 영화 <스코어>에서 봤는데 영상 클립은 못찾겠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 한 편만 고르라고 하면 <스코어>를 택하겠다. 10번 정도 본 것 같은데 또 보고 싶다. <스코어>에 한스 짐머가 나왔는데, 덜컥 계약을 하고 나서 데드라인이 딱 정해지면 자기가 왜 그 일을 맡았는지 바로 후회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감에 쫓기면서도 수많은 명작들은 만들어진다. 특히 영화 사운드트랙 작업은 개봉 시기가 정해진 다음에 시작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어느 인터뷰에서 자기 이름은 독일계라서 ‘한스 치머’라고 부르는 게 원래는 맞지만 아무렴 어떠냐고 말한 적 있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뮤직 비디오에 한스 짐머가 나온다. 영화 음악 중에 요즘에는 존 배리가 만든 곡들을 자주 듣는다.
2023. 4. 6. 공부의 목적과 목표
목적에 대한 자부심, 단계별 목표 달성의 보람, 일상적인 공부 과정 자체의 즐거움. 이 셋을 합치면 공부의 행복이 될 텐데 대략 1:2:7 정도 비율인 것 같다. 이 중에서 ‘목표’를 강조하고 싶은데, ‘달성 가능한’ 목표들을 잘 설정하면 지치지 않고 공부를 더 활기차게 해나가는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예컨대 일본어 공부를 막 시작한다고 하면 막연한 목표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목표를 정하는 게 필요하다. ‘라쿠텐 사이트에서 혼자 힘으로 세일러 만년필 주문하기’ 같은 현실적 목표가 외국어 공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1차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는 조금 더 어렵지만 충분히 도달 가능한 “NHK 트위터 헤드라인 구독하기” 같은 현실적 목표를 설정하면 그다음 수준으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후쿠자와 유키치나 니시 아마네가 쓴 일본 근대의 학술 문헌을 검토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2023. 4. 5. 음악과 시간여행
첸, “우리 어떻게 할까요”를 듣는 감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곡을 들으면 2000년대 초반 홍대 주차장 거리에서 내가 살던 상수동 당인리발전소 근처 산책로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이 곡은 2010년대 후반에 나온 노래인데도 말이다. 음악은 우리의 어떤 특별한 정서를 호출하여 과거의 어느 시간대로 순간 이동을 시켜준다.
2023. 4. 5. 고독
창작자는 고독한 시간을 잘 확보해야 한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 조르주 무스타키의 노래 “나의 고독”(Ma Solitude)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 “고독과 함께라면 전혀 외롭지 않다.” Je ne suis jamais seul avec ma solitude. 외로움과 고독은 동의어가 아니다. 고독은 예술가와 창작자에게 영감이 불어넣어지는 시간이다. 외로울 때는 그러하지 못하지만 고독할 때는 종종 위대한 영혼들과 교감할 수 있다.
2023. 4. 4. 답변의 적절함
필즈상 수상자인 수학자 스티븐 스메일에게 물었다. “페렐만의 필즈상 수상 거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메일이 답했다. “그 결정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나였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입니다.” 이 정도로 절제하여 적절하게 답변하는 것도 뛰어난 능력이다. “모릅니다.” 하고 매정하게 답하여 질문자를 난처하게 만든 것도 아니다. 잘 모르는 타인에 관해 물었을 때는 자기 이야기를 하면 된다. 꼭 거창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남에 대해 묻는 비슷한 상황에서 나도 적절하게 답변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3. 4. 3. 호기심
어릴 때는 누구나 호기심이 많다. 그렇지만 어릴 때의 왕성한 호기심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줄어든다. 관심사는 달라져도 호기심의 총량만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언제나 젊게 살아갈 수 있다. 호기심이 없어지고 다 덧없게 느껴지고, 만사가 귀찮아지기 시작하면 늙는 것이다.
2023. 4. 2. 방어운전
방어운전의 최종 판단은 ‘양보’ 또는 ‘매너’라는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다. 그렇지만 양보와 매너가 방어운전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어제밤 다른 지방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이패스 진입로와 현금결제 진입로 사이에 서 있는 트럭을 100미터 뒤에서 보고 빠아앙- 하고 오랫동안 크게 경적을 울렸다. 트럭은 경적음을 듣더니 톨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아내가 옆에서 왜 그렇게 과하게 경적을 울리냐고 채근했지만 그렇게 안 하면 추돌 사고가 생길 것 같아서 그랬다. 자기가 가려던 통로로 진입을 못한 차량이 요금소 통로에서 그렇게 서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기서 배려를 한다고 우리도 멈추면 내 뒤차는 위험에 대처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2023. 4. 1. 프렌치팝
Oscar Anton[오스카 앙똥]과 Clémentine[끌레망띤]이 함께 만든 곡인”Nuits d’été“[뉘제떼](여름밤). 웃음소리도 음악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2023. 3. 31. 틀린 문구 바로잡기
더 나은 표현법을 찾는 일이 내 직업이라서 그런지 공적인 표현에 잘못된 구절이나 오탈자, 또는 틀린 건 아니지만 고치면 더 나을 듯한 표현이 떠오르면 담당자에게 알려주거나 제안을 한다. 모바일로 교보문고 도서 검색을 하던 중에 재고부수를 ‘2개’처럼 표시하길래 담당자 연락처를 찾아서 ‘2권’ 또는 ‘2부’라고 고치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더니 1시간 만에 수정이 된 놀라운 일화도 있다. 최근에는 예술작가DB 사이트인 ‘뮤움’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오늘은 작가 ~이 태어난 날입니다.” 같은 형식으로 자동으로 뿌려주는 게시물을 본 적이 있는데, 코딩을 할 때 앞글자가 받침이 있든 없든 무조건 ‘-이’로 설정을 한 때문인지 ‘오늘은 작가 고흐이 태어난 날입니다”처럼 표시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신고를 했고 3일 정도 후에 고쳐졌다. 애써 제안을 했는데도 아무 연락이나 반응이 없을 때도 물론 많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생에는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
2023. 3. 31. 이어짐, 연결
인터넷 문서를 인터넷 문서답게 만드는 최대 장점은 역시 하이퍼링크다. 콘텐츠들이 쌓이면서 어떤 새로운 글을 쓸 때 예전에 만들어둔 자료를 링크하는 일이 잦아졌다. 내부 링크와 외부 링크 비율이 반반 정도인 것 같다. 서로 이어지고 연결돼 있다는 것은 인간 삶과 세계의 신비요, 존재 이유다. 평균적으로 6단계만 거치면 세상 누구와도 다 연결된다. 누구한테서 배웠고 누구를 가르쳤는지 알려주는 수학계보 사이트가 있는데, 레온하르트 오일러에서 쭉 내려오면 2006년 필즈상 수상자 테런스 타오와 연결된다. 지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 삶도 그러한데 성공이나 어떤 성취들은 단독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2023. 3. 30. 활자화
내가 쓴 글이 활자화된다는 것은 언제 봐도 신기하고 신비롭다. 중1 때 수업 시간에 실습 과제로 썼던 시 “진달래“가 국어 선생님 추천으로 교육청 문집에 실렸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그 문집을 집에 가져오셨을 때, 내 글이 책에 활자화된 것을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의 보람과 기쁨이 나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던 것 같다. 책 한 권은 많은 이들의 노고가 들어가는 종합 예술이다. <과학의 위로>가 출간되었다. 편집부에 축하와 감사 인사를 전한다. 독자를 위한 출간 기념 게시물은 “원소 주기표 쉽게 외우는 요령“이다. 내가 예전에 외운 방식대로 그대로 표현하자니 ‘자체 검열’에 걸리는 게 너무 많아서 그걸 ‘공개용’으로 다듬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을 다시 깨달았다.
2023. 3. 30. 기억
영화 <코코>의 주된 모티프는 ‘사망 = 죽음’ 이런 등식이 아니라, ‘망각 = 죽음’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저승에 있다가 세상에서 기억해주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면 비로소 사멸한다. 완전한 죽음이 된다. 나는 늘 기억에 관심이 많다. 기억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고 기억을 다룬 책은 웬만하면 다 산다. 오늘 ‘기억‘이라는 새 홈페이지 메뉴를 열었다. 일단 기존에 만들어두었던 유튜브 ‘암기의 기술‘ 자료들을 문서로 재구성했고 새로 쓴 글도 있다.
2023. 3. 29. 행동유도성
네이버 메일에서 메일을 보내고 나면 날아가는 종이비행기 아이콘이 나오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날아가는 모양이라서 얼핏 보면 메일을 아직 ‘보내고 있는 중’인 것처럼 느껴진다. 전송이 끝난건가? 하고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한두 번 그런 게 아니라서, 별로 좋지 못한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거야 사소한 거니까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우리 주변에는 해로운 디자인들과 사용자 환경들도 많다. 저건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촬영을 해두거나 간단히 메모를 해둔다. “에스컬레이터는 정지해도 계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사용자 환경을 떠올릴 때 이 문구를 함께 기억한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내용만큼은 각인돼 있다. 가장 안 좋은 경우를 먼저 생각해두어야 편리하고 멋진 사용자 환경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에스컬레이터 한쪽을 비워두는 건 처음에 매너와 배려 목적으로 시작했겠지만 안 좋다. 한쪽 비워두고 한 줄로 타려고 대기줄이 생기는 어처구니없는 광경…
2023. 3. 29. 음악
앤드류 버드, “Sisyphus”(시시포스): 휘파람 소리가 멋지게 잘 어울린다. 링크한 영상 댓글 중에 “Ironically, I’ve been listening to his song on repeat.”라고 적은 것이 재미있다. 유튜브 댓글은 온라인 백일장이다.
2023. 3. 29. 축구
득점왕 시즌의 손흥민 선수 퍼포먼스는 대단했다. 마지막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는 건 엄청난 즐거움이자 기쁨이었다. 모우라 고마워! 이번 시즌의 토트넘 경기들을 보자면 인생 낭비 같은 생각이 들어서 차츰 경기를 멀리하게 됐다. SPOTV 월 구독료가 절약되었다. 앙리 시절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축구를 좋아했는데 요즘 아르테타의 아스널 축구도 꽤 멋있다. 전략가 감독이 이끄는 팀의 패기 넘치는 젊은 선수들이 일단 합을 맞추면, 세계 최고 명성을 누리는 팀들도 쉽게 이긴다. UEFA 챔피언스리그는 여전히 관심이 많다. 선수, 감독, 팀, 협회, 전세계 축구 팬들이 함께 만드는 거대한 서사시. 2009년 일본 오사카 어느 호텔방에서 보았던 바르사 vs. 맨유 결승전이 기억난다. 간절히 바라던 박지성의 출전이 무산됐던 경기 … 내가 소장했던 유니폼이 두 벌 있다. 아스널의 앙리 유니폼, 그리고 바르사의 푸욜 유니폼. 바르사 유니폼은 아내와 스페인 여행을 할 때 바르셀로나 홈구장에 가서 샀는데, 다음날 아내와 둘이 바르사 유니폼을 입고 바르셀로나를 돌아다녔다. 저녁에 시내에서 맥주를 취하도록 마셨는데 카드 결제 오류가 나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현금을 모두 모아보니 술값의 반이 조금 넘었는데 주인이 그 돈만 받았다. 우리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주인장이 우리 유니폼을 가리키면서 우렁차게 외쳤다, ‘바르사!’
2023. 3. 28. 검색어
구글에서 뭔가 검색을 할 때 원하는 결과가 없으면 비로소 호기심이 깨어나고 내 취미 활동이 시작되는데, 없으면 내가 만든다. 책이나 다른 자료를 찾아서 잘 이해한 다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웹에 올려두면,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미래의 어떤 이에게 내가 만든 문서가 검색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둘 새로 만들어 정리해둔 문서들 중에, 이제는 검색하면 검색 결과 제일 처음에 나오는 것들이 있다. 구글 검색 결과는 조회수에 따라 상위에 배치되므로, 검색 결과 페이지 최상단에 내 문서들이 나오면 책임감을 갖고 더 좋은 정보로 보완하고자 노력한다.
2023. 3. 27. 수학 공부
플라톤의 대화편 <티마이오스>, <테아이테토스>, <메논> 편을 잘 이해하기 위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수학 공부가 무척 재미있다. 어떤 수학 개념이 왜 생겼고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게 되니까 철학 책도 이해가 더 잘 되네. 더 근본적인 것을 탐구하는 수학과 철학의 연관성도 조금 보이고. 서동엽, “현대수학의 이해” 영상을 여러 번 보았다. 이해는 안 되지만 흥미롭고 재미있다. ‘위상수학’이 어떤 학문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수학자 숄체는 16세 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스의 이론이 하나도 이해가 안 됐지만 깊이 매혹당했다고 한다. 자신이 매혹된 그 증명을 이해하려고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니 수학자가 됐다. 어떤 사람을 잘 이해해서 그이와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다. 강하게 이끌리는 감정이 먼저 온다면, 차근차근 합리적으로 납득하는 건 나중에 해도 되는 것이다.
2023. 3. 26. 외국어 공부
올해 들어 가장 잘 한 일은 프랑스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다. ‘아니끄의 샹송이 좋아!’ 채널이 프랑스어 읽기 공부에 큰 도움을 주었다. 노랫말 원문과 한국어 번역문이 나란히 제공되어 고마운 마음으로 공부했다. 처음에는 익숙한 옛날 샹송 듣는 게 편하고 좋았는데, 자연스럽게 프렌치팝도 좋아하게 되었다. 프랑스어 공부를 하면서 애초 공부의 목표점을 너무 높게 잡지 않고 <어린 왕자> 원서 낭독과 번역 문장 대조 가능 수준… 정도로 잡았는데 50여일 만에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했다. [마담 클라라 문학쌀롱] 어린왕자 원서 읽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릴카’라는 유튜버가 낭독한 버전도 있는데, 나는 마담 클라라 버전이 훨씬 편하고 좋았다. 인문학 책에 등장하는 프랑스어 인용문을 읽을 수 있고 단어를 대조하여 번역 가능한 정도가 되니까 전에 비해 뭔가 자유로움을 느낀다. 현재 공부 중인 외국어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헬라어,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등이다. 능통한 언어는 하나도 없지만… 뭐 어때, 재밌으면 됐지. 7월에 일본어능력시험 3급에 응시한다. 올해 합격, 내년에 2급, 내후년 1급이 목표다. 일본 학자들이 쓴 인문학 저술을 검토할 실력을 기르기 위함이다.
2023. 3. 26 지휘자
같은 악보인데도 누가 지휘하느냐에 따라 음악은 천차만별이 된다. 아직 그 차이는 잘 모른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 연주자들이 지휘자를 거의 안 보는데 그 이유를 문득 알게 되었다. 지휘자가 지도하는 대로 평소에 수백번 수천번을 연습했기 때문에 공연 당일에는 굳이 지휘자를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한 대로.
2023. 3. 26. 수학/물리
** 이 블로그의 “노말 벡터의 쓰임새” 해설이 큰 영감을 주었다. 아, 설명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설명하는 방법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이 마음에 든다.
정보통신기술용어: 차재복님이 운영하는 과학 용어 개념 사전, 그저 빛!
DMT Park: 과학/수학 개념 시각화의 절정.
피직쇼: 물리학 기본 개념들 해설 채널. 설명이 기가 막히게 쉽고 친절하다.
차교수와 물리산책: 물리학 공부할 때 가장 많이 도움을 받는 차동우 교수의 강의 채널, 난 주니어멤버십 회원.
다크 프로그래머: 수학 공부도 결국 개념 공부다.
2023. 3. 25. 고등과학원 웹진
고등과학원 웹사이트에 게재되는 글은 말만 일반 독자 대상이지 너무 어렵다. 이 글들을 읽으면 이해는 안 되지만 많은 영감을 받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해가 안 되는데도 이해가 될 듯하다. 가끔 신청을 받아서 종이 잡지를 보내주는데 몇 권 받아본 적이 있다.
- “당시 만 16세의 학생이었던 숄체는 와일즈의 증명을 전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깊이 매혹되었고, 와일즈의 증명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 이 영화가 감동적인 점은 불행한 결말로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사랑을 위해서, 예견된 길을 처연히 자유의지로 선택한다는 점이다.
- “비유하자면 아르키메데스가 예쁜 돌을 찾아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면, 유클리드는 평범한 돌들을 쌓아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할까요?”
2023. 3. 22. 오타니 쇼헤이
오타니 쇼헤이는 완벽한 선수다. ‘멋지다’는 말은 그를 형언하기에 너무 부족함. 축구에서는 혼자 골을 넣을 순 없지만, 야구에서는 혼자 퍼펙트게임을 만들 수도 있고 혼자서 홈런도 칠 수 있음.
2023. 3. 22. 영화 <스코어>
내가 가장 많이 본 영화는 영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맷 슈레이더 감독의 다큐멘터리 《스코어-영화음악의 모든 것》(2017)이다. 뭔가 작업의 영감이 필요할 때 교재 보듯이 펼쳐본다. 감상은 늘 ‘역시 최고군’ 하면서 마무리된다.
2023. 3. 21. 시
문현식 시인의 시 “비밀번호”는 시집 <팝콘교실>에 실려 있다. 크게 감동하여 이번에 원고 쓰면서 두 곳에서 오마주하거나 인용했다. 그 중 하나는 출판사에서 창비와 따로 저작권 계약을 해서 시 전문을 실었다. 다른 시들도 좋다. “체육 시간에 비가 내리면 / 교실은 감옥이 된다.” 호메로스,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 이런 시인들을 보노라면 새로운 모국어 어휘를 창조하는 것이 시인 본연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시인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말을 조탁하고 가장 알맞은 쓰임새를 보여준다. 표현을 고안하는 일과 쓰임을 고안하는 일은 서로 상보적이다.
2023. 3. 21. 봉준호 감독
비닐봉지에서 ‘꽃게랑’ 과자봉지를 꺼내어 뜯는 기정. 성업 중인 ‘영덕대게’ 식당이 남매옆으로 지나쳐간다. 길고 커다란 어항 속에 주황색 대게들 수십 마리가 긴 다리를 버둥거린다.
기정: 와 대게! 맛있겠다.
- <기생충 각본집>, p. 17
청소년 글쓰기 만화책 <글쓰기는 한 문장부터>의 대본을 쓰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각본집>이다. 따라할 수는 없지만, 콘티 짜는 올바른 방향은 대강 이해했다.
2023. 3. 20. 스티브 바라캇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명도 자르지 않고 함께 힘을 모아 극적으로 기사 회생한 어느 중견기업 회사 사람들이 출근 시간에 하나둘 모이고 있다. 서로 가벼운 눈인사만 하고 자기 자리에 앉는다. 특별한 말을 나누지는 않지만 다들 미소를 머금고 있다. ‘새출발’, ‘희망’ 같은 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면 어떤 모습일까. 스티브 바라캇, “Flying”을 들으면 된다. 음악으로 희망의 모습을 그리는 초상화가. KTX 종착역이 가까워지면 나오는 곡 “California vibes”도 스티브 바라캇이 만든 것이다. 한국에 방문했을 때 기차에서 자기 음악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본인 피셜)
2023. 3. 19. 신카이 마코토 감독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왔다.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영화 보면서 몇 번 울었다. 자신의 작품들과의 연관성, 그리고 사람들 누구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지브리 영화들 오마주까지… 분석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분석하면서 보고 싶진 않았고 그냥 마음으로 만끽했다. 지진을 운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각별하게 다가왔을 작품일 듯하다. 배가 옆으로 누워있는 장면에서는 세월호가 잠깐 떠오르기도 했다. 80년대 노래가 몇 곡 나오는 장면에서 ‘딱 내 취향인데…’ 하면서 좋아했는데, 아내가 영화 다 보고 나서 감독님 음악 취향이 너무 올드해서 아쉽다고 하는데 나한테 뭐라 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번역가는 강민하, 그저 감사할 뿐.
“나는 있었던 감정이 어느 날 잊혀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 당시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도 느낄 때 나는 두렵다. 감정이 사라져간다는 일은 인간인 이상 피할 수 없겠지만,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수수께끼 같다고 생각하며 그런 것들을 항상 영화 속 테마로 삼고 있다.” “날마다 걷거나 보는 장소들을 주로 그리는데 매일 보는 장소는 나만이 아는 풍경이 있다. 가령 ‘이 장소는 아침에 보는 것이 좋다’, ‘저녁에 해가 질 때 가장 아름답다’라든지 나만의 발견이 있다. 이렇듯 나만의 발견이 있는 장소들을 영상으로 이어가고 싶다.” – 영화감독 신카이 마코토, GGV 인터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2016)을 다시 보았다. 또 봐도 감동적이네. 마지막 부분 재회 시점이 2023년 봄 어느날인데 <스즈메의 문단속> 한국 개봉 시기가 2023년 봄이네… 내일 모레 보러 간다.
다시 깨닫는다. 이런저런 작품들을 다양하게 보는 것보다 훌륭한 작품을 여러 번 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영감을 준다. 영화의 디테일을 분석한 글을 일부러 찾아보진 않는다. 앞으로도 또 볼 영화이므로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미츠하와 타키가 처음 만나는 배경이 ‘요츠야 역’인데, 미츠하 동생 이름이 ‘요츠하’다. 이때 타키는 중학생이라 미츠하에게는 동생처럼 느껴진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그렇고 봉준호 감독도 그렇고 다 디테일의 장인들인데, 이들이 예술가로서 대단한 것은 디테일에 집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피땀으로 구성한 디테일들이라도, 커다란 완결성과 유기적 흐름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될 때는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2023. 3. 17. 동물
시고르자브종은 사랑이다. 결혼 직후 아내와 평창 알펜시아 스키장에 가면서 진부령 입구 식당에서 보았던 강아지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아내 역시 종종 그 이야기를 한다. 아이를 간절히 바라던 시기라서 강아지들이 더 사랑스럽게 여겨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