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쉬(William Henry Walsh), 이한우 옮김, «형이상학», 문예출판사, 1996.

형이상학자들은 ‘단순한 현상’(mere appearance)과 대립되는 ‘실재’(reality)의 탐구에 전념하는 사람들이라고 간주되었으며–플라톤의 표현대로 하자면–일체의 존재와 지식을 그들의 영역으로 삼는 사람들로 불려지기도 했다. – 9쪽

논리실증주의의 운동을 따르는 철학자들은 의식적인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철학자임과 동시에 과학자들이었으며, ‘통일과학’(Unified Science)은 그들의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던 주요 모토였다. – 16쪽

무어(G. E. Moore)에서 비롯된 상식의 존중은 그 자체만으로도 실증주의자들 못지 않게 형이상학에 대하여 적대적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이들은 형이상학에서 즐겨 사용되는 개념들인 ‘사물과 속성’, ‘관계’, ‘원인과 결과’, ‘시간’, ‘공간’, ‘현실태’, ‘변화’ 등이 우리의 일상적 용법과 배치되거나 모순된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 17쪽

우리가 한 형이상학자의 사상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풍부한 문학작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문학세계 못지 않게 형이상학적 세계로부터 풍부한 학식과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형이상학자의 사상을 성공적으로 통달하는 사람은 아주 새로운 시야에서 세계를 보게 된다. 그가 형이상학자가 주장하는 관점이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지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를 통해 얻게 되는 가능적 경험들은 그를 풍요롭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 21쪽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실체론을 4원인설과 같은 선상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의 4원인설은 가능태/현실태, 질료/형상 등의 구별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 이 4원인설은 사물들이 왜 현재와 같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또 왜 지금과 같이 변화하는가에 대하여 상당히 의의 있는 설명방식을 제공해 준다. 질료인과 형상인의 개념을 통해 우리는 사물들을 정태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