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투 문장 다듬기

* 소크라테스의 언어에 대한 견해는 Plato의 대화편 Craytylus에 단편적으로 나타나 있다. 먼저 대화편에서 그는 Hermogenes와 Craytylus의 논쟁을 중재시키도록 요청을 받는다.

(고유 명칭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한글로 표기해 주는 게 좋음)

→ 소크라테스의 언어관은 플라톤의 대화편 <크라틸로스>에 띄엄띄엄 나타난다. <크라틸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헤르모게네스와 크라틸로스의 논쟁을 중재하도록 요청받는다.

* 프라톤은 Theatetus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언어란 onomata와 rhemata에 의하여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것, 말하자면 입을 통하여 배출되는 [공기의] 흐름 속에 어떤 사람의 관념을 비추는 거울·반영이다”라고 하였다.

(‘빌다’가 아니라 ‘빌리다’가 기본형이므로 ‘빌어서’가 아니라 ‘빌려서’가 맞음)

→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 편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언어를 이렇게 규정했다. “언어란 이름에 해당하는 말(onomata)과 술어에 해당하는 말(rhemata)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 말하자면 입으로 내뱉는 공기 흐름으로 어떤 이의 관념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프라톤의 연구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으나 그의 스승의 개념을 대부분 받아들였고 자신의 깊은 통찰력을 통하여 더욱 발전시켰다. 다음은 가장 난해하고 중요하며 실험을 필요로 한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미개념을 간략히 살펴보자.

→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연구 방향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긴 했어도, 스승이 규정한 개념들은 대부분 받아들였으며 통찰력을 발휘해 그 개념을 더 발전시켰다···

* logos의 경우도 프라톤의 경우처럼 다의적으로 해석되지 않고 onoma와 rhema를 직접구성성분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구문형식으로, 진·위(眞·僞)의 판단이 되는 명제로 성립되는 것이 그 본령임을 알 수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로고스 역시 플라톤처럼 다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명사(onoma)와 동사(rhema)로 직접 이루어지는 구문 형식으로 해석했다. 진위 판단을 할 수 있는 명제로···

* 아리스토텔레스는 의미와 이미지와의 연관을 고찰하는 이미지 이론을 전개시켰다.

(‘-시키다’는 동사를 사동으로 만드는 접사)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지가 의미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고찰하는 이론을 전개했다.

* 진·위(眞·僞)에 관한 진술은 현재적 경험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실질(real)동사”를 중시한 것이다.

→ 진위 진술은 현재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실질 동사’를 중시했다.

* 마찬가지로 명사의 경우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만 주격 명사가 있는 문장만을 다루었다.

→ 그와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사가 주격으로 쓰인 문장만 다루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Categories에 나타난 문법적인 요소를 살펴보기로 하자.

양(quantity): 2규의 길이
질(quality): 흰, 문법적
관계(relation): 半, 二重
장소(place): 시장에서, Lyceum에서
상태(state): 신켜진, 무진장

이들 술어 자체로는 어떤 적극적 또는 소극적 진술도 포함하지 못할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나타난 문법 요소를 살펴보자.

(‘규’에 대한 설명 필요, ‘半, 二重’을 ‘반, 이중’이라고 한글 표기, ‘Lyceum’을 ‘리케움’이라고 한글 표기, ‘신켜진’이란 표현은 없음)
(맥락상 ‘적극적 또는 소극적’이 아니라 ‘긍정적 또는 부정적’이 적절할 듯함)

*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언어적 사실의 제시에도 불구하고 Categories는 문법학자들에게는 불행하게도 문법서가 아니라는 결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후계자들에 의하여 결론이 내려졌다.

→ 문법학자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이렇게 여러 언어적 사실이 제시됐음에도 후대의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들은 <범주론>을 문법서로 규정하지 않는다.

* 단어의 변형을 구분하는데 있어서도 바꿔쓰기(paraphrase)의 종류에 따른 의미로 구분하였고, 형태론적 특성이 모호한 형태는 원형과 파생형을 구분 기준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그는 언어기술에 있어서 마지막 철자의 큰 비중을 두어서 성이나 문법적 특징을 기술하였는데,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형태론적 구조에 대한 명확한 사실을 인식하는데 저해하는 요인이 되어왔다.

→ 단어의 변형도 바꿔쓰기(paraphrase)의 종류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을 기준으로 구분했고, 형태론적 특성이 모호하면 원형과 파생형을 기준으로 구분했다. 또 그는 언어를 기술하며 마지막 철자에 큰 비중을 두어 성이나 문법 특징을 설명했는데, 이 점이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형태론적 구조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 2.5. 스토아 학파(Stoa, B.C. 308 아테네에서 성립)
약 B.C 4세기 초에 꽃 피웠던 일군의 철학자와 논리학자들의 집단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후계자 이른바 소요학파들과는 대립적인 처지에 있었다. 언어에 대한 스토아학파의 공헌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첫 번째 단계로 구분·실험한 언어의 세 가지 양상(aspects)에 대하여 살펴보자. 스토아학파들은 언어연구에서 진전된 일면을 보이고 있다. 이들 두 학파간의 차이는 그들이 빈번하게 다루었던 삼단논법에서도 차이가 난다.

→ (‘스토아 학파’와 ‘스토아학파’와 ‘스토아학파들’을 한 가지 표기로 맞추어야 함)
→ (‘B.C.’와 ‘B.C’를 섞어 쓰면 안 됨. 올바른 표기는 ‘B.C.’ 또는 ‘BC.’)
→ (‘4세기 초’는 특정 시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므로 그 시기 앞에 ‘약’을 쓸 까닭이 없음)

* 결과적으로 이런 이유로 해서 스토아학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혼란 되었던 격의 개념에 일정한 차례를 가져오게 했고 의미와 형태사이에 혼란을 정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토아학파들은 처음으로 격(Ptosis)의 개념을 격어미를 형성하는 것으로 제한시켰다.

→ 이런 이유로 스토아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모호하게 다룬 격이라는 개념에 일정한 순서를 부여하여 의미와 형태 사이에 일어났던 혼란도 정리했다. 스토아 학파는 격이라는 개념을 어미 형성에 관한 것으로 제한했다.

* 그러므로 명사, 형용사, 관사(비록 그들은 어근과 굴절형태소의 경계를 한정하지 않더라도)와 같이 굴절에 바탕을 둔 품사에만 한정시켰다. Stoa학파들은 부정사 형태를 명명하는 데에만 국한시켰고 반면에 한정사 형태는 kategorhemata라고 불렀다.

→ 스토아 학파는 어근과 굴절형태소를 뚜렷이 나누지는 않았지만···

* 격변화가 없다는 점은 전자의 정의와 동일하나 “구성(construction) 속에서”라는 것과 “사람에 관한” 것이란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격 변화가 없다는 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정과 같지만 ‘구성 안에서’라는 것과 ‘사람에 관한 것’이라는 부분은 그 규정에서 벗어났다.

* 스토아 학자들은 통사적 작용과 형태론적 구성에 따라서 동사의 형태를 구별할 수 있으면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시제를 구별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다.

→ 스토아 학자들이 통사적 작용과 형태적 구성으로 동사의 형태를 구별했으면서도 그 방법으로 시제를 구별하지 않은 점은 의아하다.

* 그들의 기본적 견해의 하나는 “한 사람이 태어났을 때, 그의 영혼은 기록하기 좋도록 마련된 백지와 같다”는 입장이었다. 발음을 내는 기관이 성대가 아니고 혀라고 생각하였으므로 그들의 음성연구는 오랫동안 많은 방해를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그들의 기본 견해 중 하나는 ‘한 사람이 태어나면 그 영혼은 기록되기 좋게 마련된 백지 같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성대가 아닌 혀를 발음 기관이라고 여겼으므로 음성 연구는 오랫동안 지체되었다.

* 알렉산드리아학파 성립의 주요한 이유의 하나는 아테네의 정치적 몰락과 국외에서의 그리스 세력의 증대였다. 알렉산더는 다른 나라를 점령한 후 몇몇 식민지에 그의 부관들을 영지의 왕으로 삼았는데 대표적인 영지가 Ptolomy에 의하여 통치된 Alexandria였다. 여러 방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는 저서는 Euclid의 Elements다.

→ 아테네가 몰락한 반면 헬라스 세계는 확장된 것이 알렉산드리아 학파 성립의 주요 원인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른 나라를 점령한 다음 자기 부하를 식민지의 왕으로 임명했다. 그 대표적인 곳이 프톨레마이오스가 통치한 알렉산드리아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여러 분야를 연구했는데, 가장 영향력이 컸던 저서는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 원론>이다.

* 성에는 3가지가 있다 : 남성, 여성, 중성이고 개중에는 통성을 가진 것이 있다.

→ 성에는 남성, 여성, 중성, 이렇게 3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는 통성을 띠는 것도 있다.

* 접속사는 일정한 순서에 따라 우리들의 사상을 통합적으로 연결시키고 담화의 공백을 채우는 단어의 종류다. 접속사는 계합접사(繫合接詞), 이접적접사로 분류된다.

→ 접속사는 일정한 순서로 우리의 사상을 통합적으로 연결하고 담화의 공백을 채우는 단어다. 접속사는 계합(繫合)접사와 이접(離接)접사로 분류된다.

* 그의 문법서에는 시작(詩作)에 대한 논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법서는 정교한 것으로 문법과 언어학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 그의 문법서에는 시 창작에 관한 논의가 없다. 그럼에도 그의 문법서는 매우 정교해서 문법과 언어학 분야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 트락스는 “단어”는 통사론의 기초가 되며 형태상으로는 “문장의 최소”라고 정의하였다. 한편 “완전한 이상(A complete thought)”이라고 정의하였다. “완전한 이상”이란 정의 자체에 형태적 조건도 갖추어진 언어단위로 생각된다.

→ 트락스는 ‘단어’가 통사론의 기초이며 형태상 ‘문장의 최소’라고 규정하였다. 한편 ‘완전한 생각’(a complete thought)이라고도 규정했다···

* 대명사는 단지 예정된 사람과 그리스어의 명확한 용법과는 상반되는 상황(situation)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대명사는 예정된 사람과 상황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뚜렷한 정황을 대신하는 그리스어의 대명사 용법과 상반된다.

* 트락스의 문법은 간결하고 짧은 것이기는 하나 문법학사에 있어서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 트락스의 문법은 간략하고 소박하지만 문법학사에 중대하게 영향을 미쳤다.

* 바로는 트락스와 동시대의 사람으로 그의 시대에 가장 박식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문법 일반에 대하여 다룬 것이 그의 <라틴어론(De Lingua Latin)> 25권이다. 이 중에서 Ⅴ~ Ⅹ권만이 남아 있다. 그는 “언어에 있어서 규칙성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언어의 본질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세계의 본질도 보지 못한다”고 주석을 붙였다.

→ 바로는 트락스와 동시대 사람으로서 그 시대에 가장 박식했다고 알려져 있다. 문법 일반을 다룬 <라틴어론> 25권을 지었는데 현재 제5권부터 제10권까지만 남아 있다. 그는 “언어의 규칙성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언어의 본질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세계의 본질도 보지 못한다”라고 주석을 붙였다.

* 팔레몬은 로마의 문법학자로 트락스의 문법을 라틴어로 번역한 사람이고 다음 시대의 문법의 술어와 규칙을 세운 사람이다. 그는 라틴어에서 관사를 제외시키고 대신 감탄사를 추가시켜 라틴어 8품사 체계의 기초를 마련했다. 트락스보다 진전한 것의 하나는 전치사는 동사만으로 또는 대격이나 탈격 명사와 구문을 이루는 형태를 포함하고 있다는 팔레몬의 제약이다.

→ 팔레몬은 로마의 문법학자로 트락스의 문법 이론을 라틴어로 번역했을 뿐 아니라 다음 시대의 문법 체계도 마련했다. 그는 라틴어에서 관사를 제외하고 그 대신 감탄사를 추가하여 라틴어 8품사 체계의 기초를 마련했다. 팔레몬이 트락스보다 진전한 것 중 하나는···

* 이들 문법이 본격적인 의미의 문법학자가 아닌 선교사의 문법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미개척분야인 국문법 품사분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역사적 의의가 함께 언어 분석적인 면에 공로를 가진다.

→ 이들 문법이 문법학자가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이 아닌 선교사가 정리한 것임에도, 미개척 분야인 국문법 품사 분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언어 분석 역사에 공로를 세웠다.

* 이들에 대한 비교 검토는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되는 김규식 문법에서 뿐만 아니라 유길준, 김희상의 문법 등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김규식의 문법 이론뿐만 아니라···

* 이들 연구는 그 발전단계로 보아 3개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는 독일인 의사 지볼트와 화란 선교사이며 중국 학자인 귀츨라프와 불란서의 동양학자인 로니의 연구가 대표된다.

→ 이들 연구의 발전 과정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단계에는 독일인 의사 지볼트와 네덜란드 선교사인 중국학자 귀츨파프, 그리고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로니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 최현배 문법의 정의에서 보이듯 “생각을 나타내는 법”이라고 하여 문장표현법에 중심을 두었고 문장론이란 용어로 통칭되었다. 박종우 문법의 경우 ‘문장의 실제’라고 하여 ‘편지, 시, 시조, 콩뜨’ 등의 예문을 들고 문장 일반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 최현배는 문법을 “생각을 나타내는 법”이라고 규정하며 ‘문장론’이라는 용어로 통칭된 문장 표현법에 중심을 두었다. 박종우는 문법을 “문장의 실제”라고 규정하여 편지, 시, 시조, 콩트 등에서 따온 예문을 들어 문장 일반을 언급했다.

* 학교문법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어떠한 규범(prescriptive, mormative)을 만들어 이 틀에 맞도록 지시하고 명령하는 문법이다. 이에 반하여 학문문법(scholarly)은 문법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규명하여 체계화하는 이론문법(theoretical)적 성격을 가진다.

→ 학교문법이란 어떠한 규범을 만들어 놓고 그 틀에 맞춰 쓰도록 지시하고 명령하는 문법이다. 이에 반하여 학문문법은 문법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규명하고 체계화하는 이론 문법의 성격을 띤다.

* 그러면 우리 국어에 맞는 보편적인 품사체계는 어떻게 도출해야 하나. 또 그것은 어떠한 체계인가가 본 논문의 주요 관심사이고 또한 결론이 된다.

→ 한국어에 맞는 보편적인 품사 체계가 어떠해야 하며, 또 어떻게 도출해야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본 논문의 핵심이다.

* 우리말에 있어서 토의 처리문제는 초창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쟁점으로 부각되어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 한국어의 토씨 처리 문제는 문법 연구 초창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쟁점이었지만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 그러면 우리말에는 접속사에 속하는 어휘군들이 없다는 것인가? 그러나 분명히 그렇지 않다.

(전체 부정인지 부분 부정인지 뚜렷하지 않음)

→ 그러면 한국어에는 접속사에 해당하는 어휘군이 없다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꼭 그렇지는 않다.

* 국어문법연구의 역사는 유길준 이후 현재까지 약 1세기에 가까운 기간이 된다.

(‘약’과 ‘가까운’은 동어반복)

→ 국어 문법 연구의 역사는 유길준 이후 지금까지 1세기 정도 된다.

** 검토 대본: <국어문법연구>, 역락,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