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 朱熹, 〈大學章句〉

大學之書는 古之大學에 所以敎人之法也라 蓋自天降生民으로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언마는 然이나 其氣質之稟이 或不能齊라 是以로 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라 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 出於其閒이면 則天必命之하사 以爲億兆之君師하여 使之治而敎之하여 以復其性케하시니 此는 伏羲神農黃帝堯舜 所以繼天立極이요 而司徒之職과 典樂之官을 所由設也라.

대학이란 책은 옛날 태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법이다. 하늘이 사람을 내림으로부터 이미 인의예지의 성품을 부여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그 기질을 받은 것이 혹 똑같지 못하다. 이 때문에 모두 그 본성의 소유함을 알아 온전히 함이 있지 못한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예지하여 능히 그 본성을 다한 자가 그 사이에 나옴이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그에게 명하시어 억조 만백성의 군주와 스승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 본성을 회복케 하시니, 이는 복희, 신농, 황제, 요, 순이 하늘의 뜻을 잇고, 극(법칙)을 세운 것이요, 사도의 직책과 전락의 벼슬을 이 때문에 설치한 것이다.

* 전통 사회에서는 <소학>의 성격을 쇄소응대 灑掃應對 라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쇄는 물뿌리는 일을, 소는 마당 쓰는 일을, 응과 대는 각각 손님을 맞이하거나 어른을 부를 때 대답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기초 과정을 다 익힌 사람들이 단계를 높여 공부하는 것이 대학이다.

* <대학>이 문장학이라고 한다면 <소학>은 문자학이다. 대학은 교육기관인 태학이고, 고전인 대학이며,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덕목인 지침이다. 중국의 어떤 학자는 <대학>은 ‘정치논문’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及周之衰하여 聖賢之君不作하고 學校之政不修하여 敎化陵夷하고 風俗頹敗하니 時則有若孔子之聖이사도 而不得君師之位하여 以行其政敎하시니

주나라의 쇠함에 미쳐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가 나오지 못하고, 학교의 정사가 닦아지지 못하여 교화가 침체되고 풍속이 무너지니, 이 때에는 공자 같은 성인이 계서도 인군과 스승의 지위를 얻어 정사와 가르침을 행할 수 없었다.

* “철학자들이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자가 되어야 국가는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 말한 플라톤이나, “철학자는 통치하려고 하지 않고, 통치자는 철학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라고 한 Kant 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天運循環하사 無往不復이라

천운이 순환하여 가고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

* 송나라에 이르러서야 학문(유학)이 다시 융성하기 시작했다. 주자의 <대학장구>도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다. 요순 시절은 다시 오기 어려울 것 같지만, 역사는 끊임없이 부침을 거듭하며, ‘부’의 시대에는 <대학장구>같은 훌륭한 편찬물도 나오고, ‘침’의 시대에는 <사기>와 같은 한 서린 저작들이 잉태되기도 한다.

讀大學法
<대학>을 읽는 방법

* <논어>와 <맹자>는 일에 따라 문답한 것이라 핵심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대학>은 옛 사람들이 학문하는 큰 방법을 기술하고 후세의 문인들이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라, 문맥의 앞뒤가 서로 잘 맞는다. 이 책을 완미한 다음 <논어>, <맹자>를 읽는 것이 좋다. <대학>을 읽으면 학문의 큰 체계가 서게 된다. <대학>을 읽어 강령을 세우고 이를 통달한 연후에 다른 경서를 읽어야, ‘격물’, ‘치지’의 일이며, ‘성의’, ‘정심’의 일이며 이것이 ‘수신’이며 이것이 ‘제가’, ‘치국’, ‘평천하’의 일임을 보게 될 것이다.

* 후세 사람들은 <대학>의 핵심 개념을 삼강령과 팔조목으로 묶어 설명하고 있다.

* 三綱領 : 明明德 / 新民 / 止於至善
* 八條目 : 格物 / 致知 / 誠意 / 正心 / 修身 / 齊家 / 治國 / 平天下
* 격물치지는 상식적 앎을 밀고 나가 금강석처럼 단단한 깨달음을 얻는 것.
* 격물 공부란 직분의 역할과 의무를 확실히 깨닫는 공부.

* <대학>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格物’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격물은 사물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작이며, 철학의 시발점이다. ‘독대학법’은 이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다음 구절이 그것이 요약으로 보인다.

今且熟讀大學하여 作間架하고 却以他書塡補去하라

이제 우선 <대학>을 익숙히 읽어 빈칸을 만들고, 다른 책으로써 메꾸어나가도록 하라.

* <대학> 구절을 읽으며, 이것은 ‘명명덕’ 인가? ‘신민’인가? ‘지어지선’인가? 끊임없이 자문해 보라.

* 참조: 한문에서의 所以의 용법 (강조한 항목들이 자주 쓰임)

1. 상황 事之狀也
2. 쓸모 所用也
3. 까닭 所由也
4. 그래서 猶言故也
5. 가능하다 可以也
6. 방법으로 猶言方法也

* 참조: 죽음을 가리키는 두 가지 방법
死 – 젊은이의 죽음 / 終 – 노인의 죽음

大學章句 / 대학장구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新)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선에 그침에 있다.

* 在: 달려 있다.

明德者는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하여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바, 허령하고 어둡지 않아서 중리를 갖추어 있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

* 허령불매 虛靈不昧: 마음이 비어 맑고 환한 상태

知止而后有定이니 定而后能靜하고 靜而后能安하고 安而后能慮하고 慮而后能得이니라

그칠 데를 안 뒤에 정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는다.

* 서양 근대 합리론의 주창자였던 데카르트는 참된 지식이란 마치 눈앞의 대상을 보는 것처럼 ‘명징한’ 특성을 지니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至善 은 여러모로 데카르트의 理性 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則近道矣리라

물건에는 본과 말이 있고, 일에는 종과 시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는 先脩其身하고 欲脩其身者는 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하고 欲誠其意者는 先致其知하니 致知는 在格物하니라.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루고, 그 마음을 바루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히 하고, 그 뜻을 성실히 하는 자는 먼저 그 지식을 지극히 하였으니, 지식을 지극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

物格而后知至하고 知至而后意誠하고 意誠而后心正하고 心正而后身脩하고 身脩而后家齊하고 家齊而后國治하고 國治而后天下平이니라.

사물의 이치가 이른 뒤에 지식이 지극해지고, 지식이 지극해진 뒤에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진 뒤에 마음이 바루어지고, 마음이 바루어진 뒤에 몸이 닦아지고, 몸이 닦아진 뒤에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한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화평해진다.

康誥曰 克明德이라하며 太甲曰 顧諟天之明命이라하며 帝典曰 克明峻德이라하니 皆自明也니라.

<서경>의 <강고>에 이르기를, ‘능히 덕을 밝힌다.’ 하였으며, <태갑>에 이르기를, ‘이 하늘의 명명을 돌아본다.’ 하였으며, <제전>에 이르기를 ‘능히 큰 덕을 밝힌다.’ 하였으니, 이는 모두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湯之盤銘曰 苟日新이어든 日日新하고 又日新이라하며 康誥曰 作新民이라하며 詩曰 周雖舊邦이나 其命維新이라하니 是故로 君子는 無所不用其極이니라.

탕왕의 반명에 이르기를, ‘진실로 어느날에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 하였으며 <강고>에 이르기를 ‘새로워지는 백성을 진작하라!’ 하였으며, <시경>에 이르기를 ‘주나라가 비록 옛 나라이나, 그 명이 새롭다.’ 하였으니, 이러므로 군자는 그 극을 쓰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다.

* 지극한 선에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지어지선

詩云 邦畿千里여 惟民所止라하니라 詩云 緡蠻黃鳥여 止于丘隅라하여늘 子曰 於止에 知其所止로소니 可以人而不如鳥乎아하시니라.

<시경>에 이르기를 ‘나라의 기내 천리여, 백성들이 멈추어 사는 곳이다.’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면만(새지저귐)히 우는 황조여, 구우에 멈춘다.’ 하거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칠 때에 그 그칠 곳을 아니, 사람으로서 새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셨다.

* 止 는 마땅히 그쳐야 할 바의 곳이니, 바로 至善이 있는 곳이다. 그침을 아는 것.

詩云 穆穆文王이여 於(오)緝熙敬止라하니 爲人君엔 止於仁하시고 爲人臣엔 止於敬하시고 爲人子엔 止於孝하시고 爲人父엔 止於慈하시고 與國人交엔 止於信이러시다.

<시경>에 이르기를 ‘목목하신(의례적인 존경의 표현) 문왕이여, 아! 계속해서 밝혀서 공경하여 그쳤다.’ 하였으니, 인군이 되어서는 인에 그치시고, 인신이 되어서는 경에 그치시고, 인자가 되어서는 효에 그치시고, 인부가 되어서는 자에 그치시고, 국인과 더불어 사귐엔 신에 그치셨다.

* 집희 緝熙: 끈기있고 스스로 밝음 ( 희 : 가리려고 해도 스스로 밝혀 빛이 남 )

詩云瞻彼淇澳한대 菉竹猗猗로다 有斐君子여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로다 瑟兮僩兮며 赫兮喧兮니 有斐君子여 終不可喧兮라하니 如切如磋者는 道學也요 如琢如磨者는 自脩也요 瑟兮僩兮者는 恂慄也요 赫兮喧兮者는 威儀也요 有斐君子終不可喧兮者는 道盛德至善을 民之不能忘也니라.

<시경>에 이르기를 ‘저 기수 모퉁이를 도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구나! 문채나는 군자여, 잘라놓은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문채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 하였으니, 여절여차는 학문을 말한 것이요, 여탁여마는 스스로 행실을 닦음이요, 슬혜한혜는 마음이 두려워함이요, 혁혜훤혜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위의요, 문채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는 것은 성덕과 지선을 백성이 능히 잊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 군자: 임금의 아들, 지위(벼슬)가 있는 사람(유위군자)의 뜻으로 쓰이다가 공자 이후 ‘유덕군자’ , 덕이 있는 사람의 의미로 쓰임

所謂誠其意者는 毋自欺也니 如惡惡臭하며 如好好色이 此之謂自謙(慊)이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니라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마는 것이니,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는 것과 같이 하며, 선을 좋아하기를 호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하니, 이것을 자겸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삼가는 것이다.

心不在焉이면 視而不見하며 聽而不聞하며 食而不知其味니라.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 蘇在振 先生의 강의 내용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