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가토 슈이치(加藤周一), 임성모 옮김,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 2013(2000).
가토: 아편전쟁에서 영국에게 패한 것은 중국인데, 중국인보다도 막부 말기의 일본인 쪽이 더 열심히 영국 사정을 알려고 했던 거지요. – 14
가토: 그때 서양인은 일본 해안까지 왔습니다만, 19세기 후반은 일본에게 놀라울 만큼 운이 좋은 시기였습니다. 서양이 일본을 침략할 만한 처지가 못되었던 거죠. 프랑스는 프로이센과 보불전쟁을 치렀고, 미국은 남북전쟁 와중이었으니 그럴 형편이 아니었어요. ··· 모두들 바빠서 아시아에 대한 침략은 잠시 접어 두고 있는 틈에 일본은 민첩하게 근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 15
가토: 사쓰마·영국 전쟁의 경우에도 졌다고 생각하자 한두 해 사이에 영국으로 유학생을 보냅니다. 졌다고 생각하면 바로 상대국 유학인 거죠. – 21
마루야마: 가장 빨리 근대화한 것이 군대입니다. 하카마를 입으면 볼품이 없으니까 양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정렬해서는 말입니다. 음악도 군악대에서부터 시작되지요. 행진곡이라는 건 일본 음악으로는 아무래도 안됩니다. 아악으로 행진할 수는 없는 거지요. … 최초로 서구화를 받아들인 건 군대를 포함한 기술관료였습니다. – 25
마루야마: … 실제로는 공자는 ‘인의’라는 병칭조차도 언급하지 않았고 ‘인’밖에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소라이가 장황하리만큼 말하는 부분입니다. … 후세의 언어 범주를 예전의 언설로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방법론과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인’에서부터 이번에는 ‘인의’가 되고, ‘인·의·예·지’가 되고 다시 ‘인·의·예·지·신’이 됩니다. 그리 되자 오륜오상이나 음양오행이라는 개념이 마치 처음부터 유교철학이었던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던 겁니다. –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