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George Orwell), 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2015(2010).
* 조지 오웰의 에세이 중 일부를 선별하여 번역한 책임.
헌책방에서 일하던 때 주로 느낀 것은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이었다. ··· 초판 밝히는 속물들이 문학 애호가들보다 훨씬 흔했고, 싼 교과서 값을 더 깎으려는 동양 학생들이 그보다 더 흔했으며, 막연히 조카 생일 선물이라도 구하러 들르는 여성들이 제일 흔했다. – 43쪽, “서점의 추억”
언어를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한 저항은 옛것을 선호하는 감상적 취향으로, 전깃불보다 촛불을 좋아하고 비행기보다 마차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런 주장의 근저에는 언어란 자연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며 우리 나름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나갈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는, 반쯤은 의식적인 믿음이 깔려있다. – 255쪽, “정치와 영어”
자신이 실패자라는 기분에 술 마시는 버릇을 들인 사람이 술을 마시는 바람에 더더욱 실패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영어의 경우에도 그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어리석어 영어가 고약하고 부정확해지지만, 언어가 단정하지 못해 생각이 더 어리석어지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이런 과정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 그런 습관을 제거한다면 생각을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으며, 생각을 명료하게 한다는 건 정치적 개혁에 필요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 256쪽, “정치와 영어”
우리 시대에 정치적인 말과 글은 주로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데 쓰인다. – 270쪽, “나는 왜 쓰는가”
과장된 문체는 그 자체로 일종의 완곡어법이다. ··· 명료한 언어의 대적(大敵)은 위선이다. ···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또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 – 271쪽, “나는 왜 쓰는가”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 297쪽, “나는 왜 쓰는가”
성인과 범인의 차이는 정도가 아닌 부류의 차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달리 말해 범인을 성인의 불완전한 형태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하지만 ··· 그는 성인도 아니었고 성인이 되고자 하는 이도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었으며, 어떤 의미에서 썩 훌륭한 인간은 아니었다. ··· 셰익스피어는 철학자도 과학자도 아니었지만 호기심만은 대단했다. 그는 지상을, 인생의 과정을 사랑했다. – 365-367쪽,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톨스토이는 부와 명예와 특권을 버렸다. 그는 모든 형태의 폭력도 포기했으며, 그로 인한 손해를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강제의 원리를, 혹은 적어도 남에게 강제를 행사하고픈 ‘욕구’를 버렸다고 믿기는 쉽지 않다. – 369쪽,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