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 휴버먼(Leo Huberman), 장상환 옮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책벌레, 2007(2000).

원제: Man’s worldly Goods: The Story of the Wealth of Nations(1936)

베네치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기꺼이 십자군을 도왔어도 결코 그 큰 사랑에 눈이 멀어 전리품의 기름진 몫을 놓친 일은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이 협정을 통해 알 수 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위대한 장사꾼들이었다. - 37쪽

길드의 1346년도 회칙에서 우리는 당시 수공업자 길드의 성격을 몇 가지 엿볼 수 있다. // [1] 만약 조합원 중 어떤 사람이 나이가 들거나 다른 이유로 일을 할 수 없어서 가난해진다면 … 그가 평판이 좋은 사람이면 생계를 위해 매주 7페니의 돈을 받는다. … [3] 그리고 누구도 장인의 허락 없이는 함께 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조수를 계약 기간 중에 데려가서는 안 된다. // … 조합원 규약 제1조는 길드가 조합원의 복지를 고려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길드는 몰락한 조합원들을 돌봐 준 일종의 우애 단체였다. – 78쪽

푸거 가의 시대는 거지의 시대이기도 했다. … 1630년대 파리 인구의 4분의 1이 거지였다. – 126쪽

두 사람이 연주회 표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각각 3.3달러짜리 일등석 3장을 사고 9.9달러를 지불한다. 그 중 한 사람이 매표소를 벗어나자 두 명의 친구가 그에게 합류한다. 그들은 극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막이 오르기를 기다린다. 다른 한 사람은 매표소를 벗어나 극장 앞 인도로 걸어가서 입장권을 손에 쥔 채 행인에게 다가선다. 그는 “오늘밤 중앙 좌석 3장이 있는데 사시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마침내 그는 한 장에 4.4달러를 받고 입장권을 파는 데 성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중요한한 문제가 아니다. 처음 사람의 9.9달러와 나중 사람의 9.9달러는 차이가 있을까? 있다. 암표상 씨의 돈은 자본이지만, 입장객 씨의 돈은 자본이 아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돈은 이윤을 남기며 되팔기 위해 상품이나 노동을 사는 데 사용할 때만 자본이 된다. 암표상 씨는 연주회가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 건물, 기계류, 원자재 등이 그것이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산다. 자본주의 생산은 이것들이 결합됨으로써 이루어진다. 화폐가 자본의 유일한 형태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하자. 오늘날 산업자본가는 현금을 거의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런데도 거액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 197쪽

1613년부터 1653년까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이윤은 해마다 약 64만 길더에 달했다. … “네덜란드인들은 말라카를 확보하기 위해 포르투갈 총독을 매수했다. 1641년에 총독은 네덜란드인들을 말라카에 들였다. 네덜란드인들은 그 즉시 총독의 저택으로 서둘러 몰려가서 총독이 [자기 조국에] 반역한 대가인 21만 875파운드를 주지 ‘않기’ 위해 그를 암살했다. 네덜란드인들이 발을 들여놓는 곳마다 파괴와 학살이 뒤따랐다. 1750년에 자바의 바뉴왕기 주에는 8만 명 이상의 주민이 있었는데, 1811년에는 겨우 1만 8000명밖에 안 남았다. 얼마나 달콤한 상업인가!” – 201쪽

자본주의 정신에 가장 알맞게 활동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기독교인이었다. … 벤저민 프랭클린은 그러한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 213쪽

직조공 토머스 히스의 증언을 통해 그들의 상태가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 질문: 자녀가 있나요? / 답: 아니오. 둘이 있었지만 모두 죽었어요. 하느님께 감사하게도요. / 질문: 당신은 자녀의 죽음에 만족을 나타내는 겁니까? / 답: 그렇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 애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짐에서 벗어났고, 그 불쌍하고 귀여운 아이들은 이 죽음 같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났으니까요. – 222쪽

스미스의 말 가운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인용하고 자신들의 행위에 반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무시해 버리는 이런 습관은 지배 계급에게는 유용했고 노동 계급에게는 해로웠다. 이런 습관은 100년이 넘도록 계속됐다. – 233쪽

1812년에 의회는 기계 파괴 행위를 사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 234쪽

보호 무역을 지지하는 지주들과 자유 무역을 지지하는 제조업자들은 맹렬한 싸움을 벌였다. 리카도는 이런 싸움의 한복판에 있었다. 리카도는 제조업자들에게 공감했다. 그 자신이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 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