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 안정효 옮김,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김영사, 2011.
이것은 적어도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들의 정열적인 사랑과, 호기심과, 짜증과, 그리고 약간의 분노가 빚어내는 시각이며 아메리카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견해들이다. 그 까닭은 우리들이 지닌 과거의 갖가지 특성과 의견 충돌, 그리고 수많은 관심과 취향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었으며, 그 총체에서 무엇인가 온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것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복잡하고, 역설적이고, 고집이 세고, 소심하고, 잔인하고, 시끄럽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매우 아름다운 것. 아메리카다. – 81쪽
우리는 항상 안정을 추구하지만, 일단 안정된 경지에 이르면 그 안정을 증오한다. – 113쪽
아메리카인은 아이들을 지나칠 정도로 아끼면서도 싫어하는 반면에, 아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면서도 부모를 한없이 미워한다. (···) 아메리카인은 정말로 친절하고, 손님이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호의를 베풀지만,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눈에 띄면 멀찌감치 비켜 지나가려고 한다. 우리들은 나무에 깔린 고양이나 하수도에 빠진 개를 구하려고 막대한 돈을 뿌리지만, 어느 소녀가 길바닥에서 사람 살리라고 소리치면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을 닫고, 침묵을 지킨다. – 115쪽
어디에나 모순투성이여서, 우리는 인간보다 법을 앞세우는 국민이라고 부르짖으면서도, 빠져나갈 길만 보이면 모든 법을 어기려고 한다. 우리는 이념을 살펴 정치인을 뽑는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지만, 투표를 할 때는 후보자의 종교나 이름이나 코의 생김새에 크게 좌우된다. 아메리카인은 공적으로는 청교도적이지만 사적으로는 방탕자인 국민처럼 보일 때가 적지 않다. – 117쪽
아이를 다루는 방식에서 아메리카인처럼 세상의 어떤 다른 곳 사람들보다 유별나고 이상한 점은 또 없다. (···) 아이를 제일로 내세우는 경향은 아메리카에서 ‘아이병 paedosis’이 거의 전국적으로 만연한 상태를 빚어놓았다. – 209쪽
앞에서 한 얘기는 비방이 아니라, 아메리카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고, 그런 현상은 바람직한 성인을 키워내지 못한다고 지적하는 정확한 서술일 뿐이다. – 211쪽
그런가 하면 혼란스러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법이 허우적거리고 더듬거리며 뒤쫓아간다. 십대는 똑같은 범죄를 지어도 어른과 똑같은 잣대를 근거로 해서 처벌하지는 않는다. 젊은이의 못된 행동에 대한 탓은 부모와 학교로 돌아간다. – 215쪽
여가 선용이라는 측면에서, 자동화와 인구의 증가가 점점 우리들에게 여유를 부여함에 따라, 우리는 점점 더 압력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인간의 역사에서는 여가가 우리들을 파괴적이고 만족스럽지 못한 고뇌로 몰아넣게 되었다. – 223쪽
차이점을 분별할 능력을 점점 상실한다는 것, 우리가 봉착한 어려움은 그것일까? 원칙들은 무더기로 무너져버리고, 그 텅 빈 자리에는 “남들도 다 그러니까 괜찮다”는 일반론만 남는다. 이것은 또 다른 비겁한 외침과 균형을 이룬다. 정부의 불성실이나 불공평, 또는 노골적인 착취에 직면하면 “관청으로 쳐들어가자!”는 말이 나온다. 물론 그것은 이기지 못하리라는 암시를 담은 말이다. 하지만 전에 우리는 정말과 관청과 싸움을 벌였고, 가끔 이기기도 했었다. 아메리카의 체제가 완벽했던 적은 없었어도, 한때는 의롭다는 평을 들었는데, 내 생각에 이것은 값지고도 아름다운 자질이다. 의로움은 아직도 존재하겠지만, 자아연민이라는 먹구름에 가려 드러나지를 않는다. – 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