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철학 고전 강의», 라티오, 2016.

철학은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자신에 관하여 가장 근본적인 것을 물음으로써 시작됩니다. – p. 9

희랍에서는 철학이라는 말로써 모든 학문을 가리켰습니다. 철학의 탐구 대상은 세상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 오늘날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없습니다. – p. 15

소피아가 지식을 뜻하든 지혜를 의미하든 그것의 대상은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필로-소피아는 타 온타, 세상의 모든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철학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탐구, 즉 존재론입니다. 철학과 존재론은 근원적으로 같은 말입니다. – p. 16

어쩌면 플라톤은 인간이 그러한 초월적인 것에 이를 가능성을 끝까지 확신하지 못하였고, 그러한 의심을 자신의 대화편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 p. 20

… 아리스토텔레스는 초월적 신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구인 존재론과 초월적 신론을 어떻게 해서든지 조화시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이성과 신앙의 조화라고 하는 중세 사상의 핵심적 논제와 연결될 수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에서 시작하여 부동의 원동자에 이르는 완결된 체계를 구축하였습니다. 그는 서구 형이상학의 실질적 정초자인 것입니다. – p. 21

데카르트는 초월적 신이 진리의 담지자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신을 아는 것은 분명 인간이라고 합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신의 보장에 힘입어 세계에 대한 확실한 앎을 구축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헤겔에서 완성되는 근대 형이상학의 시도, 즉 신적 입장으로 올라선 인간의 자기의식의 출발점일 것입니다. – p. 21

헤겔은 데카르트를 근대 철학의 시작이라고 평가하면서, 유한한 인간이 역사 속에서 모든 것을 음미하면서 신적 입장에 올라설 수 있음을 체계적으로 밝혀 보이려 합니다. …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매개로 하여 절대자, 즉 무한자의 입장에 올라선다고 하는 역사 형이상학 또는 역사 존재론을 제시합니다. – p. 22

칸트는 종래의 형이상학을 근원적으로 따져 물었습니다. … 철학적 탐구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여전히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덕입니다. …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유한자일 뿐이고, 무한자가 되려는 욕구는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플라톤은 괴로운 처지에 있는 듯합니다. 인간은 무한자와 유한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좋음을 찾아 방황하고 있으며 어느 한 쪽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중간자이기 때문입니다. – p. 22

인간은 이처럼 자신의 삶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이 지금까지 틀림없이 알고 있다고 여기던 것을 부인하고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자신의 삶과 앎에 의미를 다시 부여하겠다고 결심하는 일과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 p. 27

진화론과 창조론을 대립의 영역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창세기>는 ‘내가 믿는 신은 이러이러한 존재’라는 고백입니다. – p. 34

그러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논증을 통해 주장을 내세우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과 우주의 전 국면에는 논증을 통해서 해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으며, 그것까지도 포괄해야만 철학이 될 수 있습니다. – p. 37

희랍에서는 ‘신’이라고 하는 단어가 주어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술어로도 사용되었습니다. – p. 43

에로스는 우주의 원초적 생식력을 의미합니다. <신들의 계보>에서는 에로스가 이런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후대 플라톤의 대화편, 이를테면 <향연>을 보면 에로스는 … 단순한 생식력이 아니라 인간을 형상에 이르게 하는 추상적인 원리인 것입니다. – p.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