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전구 색깔을 구분하는 ‘주광색’과 ‘주황색’. ‘주’의 뜻이 달라 혼란을 일으킴.

공중에 뜬 것처럼 보이는 횡단보도‘는 참신하긴 하지만 좋은 디자인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운전자라면 놀라서 급정거 할 것 같다.

不文律 / 備忘錄 / 有名稅
책장을 색깔별로 정리하기

모르겠어서, 피곤해 죽겠어서 / 아니었어서 / 알겠는 / 전화 오셔서
한국어에서 ‘아줌마’라는 말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자신을 가리킬 때 빼고는 쓸 수 없게 됨.

원제와 달라야 한다는, 출판사의 쓸데없는 강박.
육시(戮屍): 이미 죽은 사람의 시체에 다시 목을 베는 형벌
도처(到處): 이르는 곳. ‘도처에’라는 말을 ‘사방에’라는 뜻으로 잘못 쓸 때가 많음.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샘솟는 타인의 여행기.
“이디야커피는 절대로 / 일회용 컵을 / 재사용하지 않습니다.”

‘베이스 온 볼스’보다는 ‘포볼’이 낫고 ‘히트 바이 피치’보다는 ‘데드볼’이 나음.
리포트:보고서/레포트:과제물, 보틀-물병 / 빌런-악당 / 애티튜드-태도 / 스탬프-도장
워딩 / 커플 / 팔로잉업 / 디테일한 / 대쉬하다 / 터치하다 / 터치가 안 돼서 / 타이밍 / 화이팅하세요 / 티저 광고

<예스24> 팝업: “오늘만 다시 보지 않기” / 취소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만 단위 표기와 천 단위 표기를 섞어 쓰면 안 된다. 1만6천 명(O), 16,000명(O), 1만6,000명(X)
띄어쓰기 = 띄어 쓰기 + 붙여 쓰기 / 높임법 = 높이는 법 + 낮추는 법(상황에 맞게 대우하는 법을 규정함)
나 대신 시원시원한 말 내뱉어 주어서 following, 말투가 너무 거칠어서 unfollow. 트위터 구독의 이율배반.

“통화 괜찮으세요?” / “계산 도와드릴까요?” /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 가면 나오는 안내 ‘띵똥-, 음식 나왔습니다.” 시끄럽기만 하고 쓸모는 없다.

* 삶을 움직이는 것은 진상이 아니라 이야기 같다.
* 사람들은 쓰디쓴 진실보다 달콤한 허구를 좋아한다.
* 진실은 침묵 속에 있다가 욱 하는 감정과 함께 표출된다.
*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상징 세계 안에 산다. 실재 세계다.
*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을 찾기보다 아이와 잘 지내는 방법을 찾는 게 낫다.
* 고급 정보도 주제와 무관하면 무익하고, 농담이라도 주제와 연관되면 유익하다.
* 독서가 좋은 반성 도구인 까닭은 사용자가 알아서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다는 점.
* 강의 시간 중에 내가 한 말이 맞는지 스마트폰으로 바로 찾아 보는 사람들이 있다.
* 인터뷰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을 들었을 때,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해 볼 것.
* 낯선 사람들에게서보다는 아는 사람에게서 취향 차이를 느꼈을 때 거부감이 훨씬 크다.
*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구절이 독자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 번역서의 편집 수준을 가늠하려면 삽화 설명을 보면 된다. 번역자가 얼마나 관여했는지.
* 같은 이모티콘이라도 세대별로 이해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ㅎㅎ’나 ‘ㅋㅋ’도 마찬가지.
*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즐거움을 찾고 싶다. 경기 응원보다 영화 감상이 더 적합함.
* 부영건설은 유독 한국어다운 아파트 이름을 고수하는데, 디자인이 구려서 옹호하기가 싫다.
* 영화 “arrival”은 한국 개봉 제목이 <컨택트>라고 번역됐다. 선입관을 심어주는 제목이다.
* 이메일의 수신 확인 기능, 편리하지만 얽매인다. 잘 받았다는 회신 안 하는 사람들도 늘어남.
*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에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로 답하는 것이 가능한 삶의 역설.
* 음식물 섭취의 새 기준을 마련해 준 베어 그릴스. 맛 없는 음식을 먹을 때면 사슴벌레 먹방을 떠올린다.
* 청소년이나 어린이 대상 글이라 하여 내용의 수준까지 낮추면 안 된다. 조정해야 할 것은 전달 방식뿐이다.
* 자기가 쓴 책을 홍보하는 쑥스러움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널리 알려져도 부끄럽지 않은 책을 쓰는 것이다.
* 한 번 읽는 독자를 위해 쓸지, 두 번 읽는 독자를 위해 쓸지, 여러 번 읽을 독자를 위해 쓸지 결정해야 한다.
* 한국어 우파는 ‘모라토리움’을 ‘지급유예’라고 옮기고, 한국어 좌파는 ‘누리그물’ 대신 ‘인터넷’이라고 쓴다.
*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한 다음,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태도. 솔직한 마음을 숨기고 관용하는 것보다 나음.
* “<법률> 편에는 소크라테스가 나오지 않는다”보다 “<법률> 편에만 소크라테스가 나오지 않는다”가 고급 정보.
* 작품을 감상하며 한번 생각해 본다. 내가 저걸 만든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시간이 많다고 만들 수 있는 걸까.
*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미안하다고 자주 말하는 것은, 원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 ‘세상에서 가장 슬픈’이라고 시작하는 글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비교 가능하지 않은 슬픔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글감으로 쓸 정보를 얻는 곳의 수준이 글의 수준을 결정한다. 소문인지, 인터넷 뉴스인지, 외신인지, 전문 블로그인지…
*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칭찬하는 것은 훌륭한 표현 기술이다. 구체적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훌륭한 대화 기술이다.
* 빔프로젝터 광고의 “캠핑장을 영화관으로”는 낮엔 안 보인다는 뜻, 아파트 분양 광고의 “공기 좋고 물 맑은”은 입지가 매우 안 좋다는 뜻.
* 학생 질문: 구체적인 표현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명언’은 구체적이지 않은데도 공감이 가고 마음이 움직이는 까닭은? 답변: ‘명언’은 ‘뭔가 해야겠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그렇지만 구체적이지 않아서 실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지는 않는다.
* 책상에 물을 쏟아서 서랍 안 물건들이 흠뻑 젖었다. 젖고 나니, 버려도 되는 것과 버려야 하는 것과 버리면 안 되는 것이 구분된다. 예컨대 명함, 통장, 여권. 젖기 전에는 다 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엎지르기 전에 그걸 뚜렷이 구분하여 사는 것이 실천적 지혜겠지.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임진모와,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배철수. 둘 다 가치 있다. 둘 다 어렵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같은 표현을 쓰지 말자. 언제든 연락 받을 준비가 된 인생으로 굳이 자신을 전락시킬 필요가 없다.


“1976년~2015년: 우체국 근무, 우체국장으로 정년 퇴임” – 우리 아파트 동 대표 후보자의 한 줄뿐인 이력. 아름다운 한 줄 이력.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나오는 김정호(차승헌)의 대사, “나도 한 요리 하는데, 삼시세끼 내가 다 해줄 수도 있어.” 영화 수준이 잘 드러난다.


구전 민요나 노랫가락을 발굴해 소개하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아니라 “환인제약 협찬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입니다.


“너 그러는 게 제일 싫어”, “그게 세상에서 젤 싫어”, “이것만 안 하면 원이 없겠다.”처럼 극단적 표현을 쓰면 그 표현들끼리 서로 다투며 자신을 모순에 빠뜨린다.


‘[오피셜]‘이라는 말머리를 붙인 기사는 ‘[완역]‘이라는 문구를 넣은 번역서 표지와 비슷함. 굳이 하려면 ‘[비공식]‘이나 ‘[편역]‘이라고 붙여야지. 기본값 설정 문제.


이태원 살인 사건의 용의자 패터슨은 2017년 1월 25일 대법원에서 징역20년을 선고받았다. <이태원 살인사건>을 만든 홍기선 감독은 이 판결을 보지 못하고 2016년 12월 15일에 별세했다.


미터법이 표준이 되면서 평형 표시를 금지했지만, 공간 개념을 이해하기에 제곱미터보다는 평이 더 쉽다. 1평은 사람이 누워 잘 수 있는 자리 면적이다. 9900제곱미터보다 ‘축구장 10개’가 이해하기 좋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조금이라도 ‘생산적’이라면 그 일을 계속하면 된다. 시간 절약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걱정해야 할 것은 시간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무기력이다.


낮은 품질을 높게 바꾼 전문가의 능력은 쉽게 드러나지만, 이미 높은 품질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전문가의 노고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훌륭한 안목을 갖춘 감상자가 되지 못하면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가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쉽고 재미있는 글’은 저자가 아니라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저자는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하기보다는 정확하고 충실하게 쓰고자 노력해야 한다. 정확하고 충실한 정보는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한다. 그러면 쉽고 재미있다.


“이 제품은 환불이 어려우세요.” 손님을 공손하게 대하려는 판매자의 좋은 목적이, 환불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어 구매자의 판단을 흐리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 같다. 대화 상대나 독자에게 올바른 판단 근거를 제공하는 말과 글이 좋은 표현이다.


TV와 동시로 방송되는 라디오 뉴스는, TV의 자막 역할을 보완하느라 인터뷰가 나오면 지금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설명을 해준다. 소리가 겹치므로 인터뷰 앞 부분이 안 들린다. 외국말이라면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대부분은 이해를 가로막는 과한 친절.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의 첫 섹션은 백치인 벤지가 보는 현상 묘사인데, 합리적 판단과 추론을 하지 못하는 벤지는 어떤 경우든 접속사는 ‘and’만 사용하고, 원근법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멀리 떨어져 있어 작게 보이는 것을 그대로 작은 것이라고 인식한다.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 돕는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만이 아니라 공부하는 이에게 필요한 자기분열 과정의 상징 같다. 자기 안에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를 함께 두면 공부 수준이 높아진다. 이해하는 것과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