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이애숙(옮김), «히로시마 노트», 삼천리, 2012.

나는 히로시마 적십사병원으로 가서 병원장을 겸직하는 시게토 후미오 원폭병원 원장과 마주했다. … 그는 전철을 기다리던 대열 끝자락에서 피폭하여 부상을 입었다. … 지금껏 원장은 이 히로시마에서 여전히 진료를 하면서 체험을 쌓고 관찰해 가면서 새로운 발견을 계속하고 있다. … 이윽고 발견한 것은 백혈병이었다. 여하튼 인류에게 처음 찾아온 대재앙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현장에서 일하면서 발견할 수밖에 없다. 끈질긴 통계에 힘입어 원장이 원폭과 백혈병을 확고하게 연결시킨 것은 그날로부터 7년이 지나서였다. – pp. 39~41

사산된 기형아를 산모에게 보여 주지 않는 병원의 태도는 분명히 인간적이다. 인간이 인간적이려면 인간다운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아야 하는 것의 한계를 지키는 자제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극한의 상황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젊은 엄마가 스스로 용기를 얻기 위해 사산한 기형의 자식을 보고 싶다고 희망한다면, 그것은 통속적인 휴머니즘을 넘어선 새로운 휴머니즘, 바로 히로시마의 비참함 속에서 피어난 강인한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너무나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다. – p. 82

내가 다른 사람의 자살을 만류할 자격이 있는 인간인지 스스로 항상 되묻곤 한다. – p. 84

나에게 찾아온 위엄, 굴욕, 수치라는 말은 지금도 변함없이 내 윤리관에서 가장 기본적인 용어이다. 나는 히로시마에서 최악의 인간적 굴욕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고, 거기서 처음으로 가장 위엄 있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만났던 것이다. … 히로시마의 인간 세상에서는 위엄이라는 말도, 굴욕 또는 수치라는 말도 단순하게 쓸 수 없다. 적어도 그런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항상 가지고 나타난다. – p. 106

1964년 10월,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올림픽 성화 최종 주자로, 원폭이 투하된 날에 태어난 히로시마 청년(중거리 육상 선수 사카이 요시노리-옮긴이)이 결정되었다. … 미국인 저널리스트가, 미국인들에게 원폭을 상기시키는 결정이라며 불쾌하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 올림픽 성화 주자가 원폭을 상기시켜 불쾌하다고 당당하게 항의할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피폭자들밖에 없을 것이다. – pp. 110~111

정치적 강자가, 인간은 최악의 상황에 떨어져도 어떻게든 스스로를 구제한다는 식의 ‘거만한’ 생각을 가지는 것만큼 무섭고 기괴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이토록 처절한 비열함으로 치장된 휴머니즘 신앙이란 게 달리 있을 수 있을까? – p. 122

굴복하지 않는 그들을 도와줄 유리한 전망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그들은 굴복하는 것을 거부했을 뿐이다. – p. 137

병사의 집에는 어린 아내가 아기를 안은 채 큰 나무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옆집 아저씨가 빼내려 했지만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기만이라도, 어서! 어서! 아뇨, 같이 죽을래요. 남편도 어차피 죽었을 거예요. – p. 184

나는 시게토 원폭병원장을 비롯한 진정 히로시마의 사상을 체현한 사람들, 결코 절망하지 않고, 또한 결코 과도한 희망을 가지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일상의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 원폭 이후 가장 정통적인 일본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과 연대하고 싶다. – p.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