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마샬(Tim Marshall), 김미선 옮김, «지리의 힘», 사이, 2016.

원제: Prisoners of Geography: Ten Maps That Explain Everything about the World (2015)


드넓은 땅을 평정하느라 혼돈의 4천 년을 써버린 중국은 이제는 막강한 대양 해군력을 구축해 해양 강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남중국해를 비롯해 여러 해협에서 치르고 있는 영유권 분쟁은 <해상 수송로>에 대한 그들의 집착을 보여준다. – p. 15

아프리카와 유럽 간의 발전의 차이는 <배를 띄울 수 있는 강>들의 유무에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에는 큰 강들이 많지만 주로 고지대에서 낙하하면서 거대한 폭포를 이루고 게다가 서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이런 조건은 실제로 무언가를 운반하는 교역로로 이용하는 데는 무용지물이다. – p. 16

인도가 티베트 고원의 통제권을 얻으면 중국의 심장부로 밀고 들어갈 수 있는 전초 기지를 확보하는 셈이 되는데 이는 곧 중국의 주요 강인 황허, 양쯔, 그리고 메콩 강의 수원이 있는 티베트의 통제권을 얻는 거나 다름없다. 티베트를 <중국의 급수탑>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 리처드 기어가 됐든 오바마 대통령이 됐든, 서구인들이 티베트 문제를 거론하면 중국은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 p. 34

신장 지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까지 합해 무려 8개국에 이른다. – p. 37

… 중국은 이제는 대양 해군력을 구축하고 있다. … 미 해군에 필적할 만한 능력을 갖추려면 30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단기적으로 보면 현재 중국이 해군력을 구축하고 군사들을 훈련, 교육시키고 있는 중이니 중국 해군이 대양에서 경쟁자들과 맞닥뜨릴 일이 머지않아 있을 걸로 보인다. 특히 중국과 미 해군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충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금세기 강대국 외교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 p. 42

일본은 대만 북동쪽에 있는 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두고도 중국과 분쟁 중이다. … 중국 선박들이 위에서 언급한 항로들을 피해 상하이에서 출발해서 태평양으로 곧장 나가려고 한다면 오키나와가 포함된 류큐 열도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대규모 미군 기지가 있을 뿐 아니라 섬 끝단에 일본이 다수의 함안 이동 미사일들을 쌓아두고 있다. – p. 45

영유권 다툼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중국은 준설과 간척 사업을 병행하면서 분쟁 대상인 일련의 암초들과 산호섬들을 인공섬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한 예로, 파이어리 크로스 리프는 이름 그대로 단순한 암초였는데 중국이 항만과 활주로를 건설해서 버젓이 난사 군도의 한 섬으로 만들어 버렸다. – p. 49

미국은 자국의 육상 영토를 공고히 통합하고 나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아우르는 대양 강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쿠바에서 스페인을 몰아내면서 주변의 해양을 평정했다. 중국 역시 태평양과 인도양을 아우르는 대양 강국이 되고자 한다. 이 목표를 위해 중국은 미얀마,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지의 심해 항구에 투자하고 있다. – p. 51

1803년, 미합중국은 프랑스로부터 뉴올리언스가 있는 루이지애나 지역 전체의 지배권을 사들였다. … 신생 미합중국은 이 땅을 흐르는 미시시피 강의 유역을 기반으로 번영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 – p. 63

… 1819년에 맺은 대륙횡단조약도 거의 이에 버금가는 가치를 안겼다. … 대다수 미국인들은 1819년에 플로리다를 얻은 것을 가장 큰 승리로 여겼지만 당시 국무장관인 존 퀸시 애덤스는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 “결정적으로 태평양 방향의 경계선을 획득한 것이 우리 역사에 위대한 시대를 열게 한다.” – p. 65

미국은 기존 미국인들과 새 이주민들에게 은근히 멕시코 접경지대 정착을 장려했다. … 한편 미국은 텍사스 지역에는 지속적으로 침투해 들어가면서도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이 독트린을 발표한 것은 서반구에서 더 이상 땅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경고를 유럽 세력에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유럽인들이 기존 영토 일부를 잃더라도 돌려받을 수 없을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 p. 66

1세기 전에 영국은 해군력을 행사하고 수호하기 위한 전진 기지와 석탄 공급소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이제는 저물어가는 대영제국과 함께하는 그들의 자산을 음흉스레 바라보면서 미국은 이렇게 말했다. / “훌륭한 기지들이군. 이제 우리가 가져야겠어.” / 가격은 적절했다. … 서반구의 영국 해군 기지 대부분이 미국의 손에 넘어갔다. … 1949년 워싱턴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NATO의 창설을 주도했다. 이로써 미국은 독일에 잔류하는 서방 군사력의 지휘권을 효과적으로 넘겨받았다. 나토의 민간인 수장은 일년은 벨기에가, 다음해엔 영국이 맡게 되지만 군 사령관은 늘 미국인이 맡는다. 지금까지도 나토의 가장 큰 화력 부대는 미국이다. … 나토 가입 국가들은 우선 워싱턴에 묻지 않고서는 해군 전략을 수립,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나토 창립 멤버인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영국, 이탈리아도 자국의 기지에 대한 미국의 권한과 접근을 보장해 줌으로써 미국은 태평양뿐 아니라 북대서양과 지중해의 패권까지 쥐게 되었다. 1951년,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와 동맹을 맺고 남반구에도 세력을 확장했다. – p. 73

미국은 2014년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 배후에 부분적으로 관여했다. …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끌어내고자 했다. – p. 75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정책은 파나마 운하의 개방을 연장하고, 파나마 운하의 대안으로 떠오른 니카라과 운하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브라질이 세력을 키워 카리브 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를 대비해 지속적으로 주시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 p. 83

걸프 만이 키워준 <기후의 축복>을 받은 이 지역은 대규모 경작에 적합한 강수량과 생육에 좋은 토양을 지녔다. … 한여름은 물론이고 사시사철 일할 수 있으니 인구가 느는 건 당연하다. 겨울 또한 실질적으로 덤을 제공했다. 기온은 실내에서 일할 수 있을 만큼 온화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골칫거리 오염원인 세균들이 살 수 없을 만큼 춥기 때문이다. … 하천들은 길고 평탄해서 선박을 띄워 교역하기가 좋았다. … 이러한 조건은 최초로 산업화된 민족 국가들이 세워지고 이어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전쟁을 수행케 한 요인들이 되었다. – p. 90

… 프랑스는 유럽의 기후와 교역로 그리고 천연 국경선의 수혜를 가장 많이 누리는 최적의 위치를 점한 나라다. … 독일의 승전부대가 파리를 점령하면서 보불전쟁이 끝나자 1871년 마침내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지리적으로는 자신보다 몸집이 크고 인구는 같은, 그러나 산업화에서 훨씬 앞서서 더 높은 성장을 자랑하는 이웃을 곁에 두게 되었다. – p. 104

유럽연합의 설립에는 프랑스와 독일이 더 이상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지 못하도록 서로를 꼭 끌어안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 생각은 멋지게 들어맞았고 이윽고 세계 최대의 경제권을 아우르는 드넓은 지리적 공간이 태어났다. – p. 106

이러한 지리적 입지는 영국에게 여전히 일정한 전략적 이점을 보장해 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그린란드-아이슬란드-영국을 잇는 해상 항로의 요충지인 이른바 GIUK갭이다. 물론 이곳이 호르무즈 해협이나 말라카 해협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를 통해 전통적으로 북대서양에서 영국이 덕을 본 것은 사실이다. … 러시아 해군 함동도 이 GIUK갭을 통과하지 않고는 대서양으로 나갈 수가 없다. … 2014년 실시된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투표에서 결과가 찬성으로 나올 가능성을 두고 영국 정부가 공포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들 가운데 하나도 이 GIUK갭이었다. – p. 112

… 북유럽평원은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의 북서 지역을 아우르는 한편 폴란드 국토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는 <양날의 칼>이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군대를 이동시켜야 할 때는 상대적으로 좁은 통로지만, 반대로 적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것을 저지시킨다. … 러시아는 어찌 보면 이 전략적 깊이 덕분에 이 방향으로부터 정복당해본 적이 없다. … 1812년에 나폴레옹이 그랬고 1941년에는 히틀러가 이 실수를 되풀이했다. – p. 126

… <따뜻한 물이 흐르는 해상 교통로>를 여는 숙원은 2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러시아가 완전히 이루지 못한, 그래서 여전히 버릴 수 없는 열망이다. … 대양으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부동항의 부재>는 늘 러시아에게는 아킬레스건이었다. … 러시아는 지리적 약점을 지녔지만 그나마 석유와 천연가스 덕분에 더 약한 나라로의 추락만은 모면했다. 일찍이 1725년에 표트르 1세가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남긴 이유도 납득이 간다. / “할 수 있다면 콘스탄티노플과 인도로 가까이 접근하라. 누가 되든 그곳을 통치하는 자야말로 세계의 진정한 통치자가 되리라. …” – p. 134

러시아에게 세바스토폴은 단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부동항이다. 그렇지만 흑해를 나서서 지중해로 진출하려면 1936년 몽트뢰 협정으로 보스포루스 해협의 관리를 위임받은 나토 회원국 터키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다. … 보스포루스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지중해에 도달하려면 에게 해도 건너야 한다. … 대서양에 도달하려면 지브롤토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거나 인도양으로 나가려면 수에즈 운하로 내려가는 것까지 허락받아야 하는 규정이 여전히 유효하다. / 러시아는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인 타르투스에 소규모 함대를 배치해 두고 있다. 이것은 2011년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했을 때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고 있음을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 p. 139

유럽 내의 가스와 원유 수요의 평균 25퍼센트를 러시아가 공급하는데 대개는 러시아와 친한 나라들의 의존도가 더 높다. 이는 곧 그 나라의 대외정책 선택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라트비아, 슬로바키아, 핀란드, 에스토니아는 가스 수요의 100퍼센트를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체코공화국, 불가리아, 리투아니아는 80퍼센트, 그리스, 오스트리아, 헝가리는 60퍼센트에 이른다. 독일의 경우도 대략 50퍼센트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 의존도가 13퍼센트에 불과한 데다가 9개월치 비축량까지 포함하여 자체 생산시설을 확보한 영국과 비교해 보면 독일 정치인들이 크렘린의 공세에도 왜 비판의 수위를 점점 낮추어 가는지 부분적으로나마 이해가 간다. – p. 152

1999년 이후 파나마가 운하의 관리권을 양도받았지만 아직까지도 이곳은 미군과 파나마 해군이 관리하는 중립적인 국제 수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게는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 니카라과 대운하 사업에 자금을 댄 인물은 왕 징이라는 홍콩 사업가인데 전기통신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건설 분야 경험은 없는 이 인물이 인류 역사상 가장 원대한 건설 사업의 지위를 맡은 것이다. … 2020년에 개통 예정인 5백억 달러짜리 이 사업은 니카라과 전체 경제 규모의 네 배에 달한다. … 느리지만 확고하게 미국의 자리를 대신해서 이 지역의 주요 교역국 지위를 차지하려는 중국의 대 라틴 아메리카 투자의 핵심이랄 수 있다. … 파나마 운하보다 더 길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폭도 더 넓고 수심도 깊어서 아주 덩치가 큰 유조선과 컨테이너 운반선들도 통과할 수 있다. 중국 해군 함정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 p. 202

아프리카가 얼마나 큰 대륙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는 우리 대부분이 메르카토르 방식의 지도를 쓰는 데서 비롯됐다. 이 도법은 평평한 면에 지구를 그리다 보니 고위도로 갈수록 면적과 형상이 왜곡된다. 따라서 실제로 아프리카는 일반적으로 지도에 그려진 것보다 훨씬 길다. 이는 희망봉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또 교역에서 수에즈 운하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 실제 아프리카는 미국보다 3배는 크다. – p.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