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Karl Marx)·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자본», 제1권 제1편 제1장.
** 요약
상품의 두 요소 : 사용가치와 가치
상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는 물건이다. 한 물건의 유용성은 그 물건을 사용가치로 만든다. 사용가치는 오직 사용 또는 소비의 과정에서만 실현된다. 하나의 상품은 수많은 교환가치를 가진다. 상품의 교환관계는 상품의 사용가치를 도외시한다. 즉, 상품의 교환관계에서는 어떤 하나의 사용가치는 다른 어떤 사용가치와도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사용가치로서 상품은 질적으로 구별되지만, 교환가치로서 상품은 오직 양적 차이만을 가진다.
노동생산물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이제 노동생산물은 어떤 유용물도 아닐 것이고, 노동생산물의 유용성이 사라짐과 동시에 노동의 구체적 형태도 사라지며, 그러면 노동생산물은 모두 동일한 하나의 노동, 즉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환원될 것이다. 노동생산물의 생산에는 인간의 노동력이 지출되었고 인간노동이 체화되었다. 노동생산물의 사용가치를 무시해 버린다면 남는 것은 이러한 가치 뿐이다. 상품의 교환관계는 사용가치를 도외시하므로 교환가치에서 나타나는 공통인자는 바로 상품의 가치다. 사용가치 또는 유용물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다만 거기에 인간노동이 체화되거나 대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치의 크기는 노동의 양에 의해 측정된다. 노동의 양은 노동의 계속시간으로 측정된다. 그 노동시간은 시간, 일, 주 등을 기준으로 측정된다. 동일한 크기의 노동량이 들어 있는 상품들은 동일한 크기의 가치량을 가진다. 가치로서 모든 상품은 일정한 크기의 응고된 노동시간에 불과하다.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불변이면 상품 가치의 크기도 불변이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노동의 생산력이 변할 때마다 변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생산력이 크면 클수록 어떤 한 물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그만큼 적다. 따라서 그 물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양도 그만큼 적고, 그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작다. 상품의 가치의 크기는 노동의 양에 정비례하고 생산력에는 반비례해서 변동한다.
어떤 물건 – 상품이 아닌 – 은 가치가 아니면서도 사용가치일 수 있다. 노동에 의해 중개되지 않는 공기, 초원, 야생 수목 등이 그러하다.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써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사람은 사용가치를 만들기는 하지만 상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사용가치를 사용하는 사람의 손으로 교환을 통해 그것이 이전되어야 한다. 어떤 물건도 그것이 사용대상이 아니고서는 가치일 수 없다.
* 참조: 칼 마르크스(지음), 김수행(옮김), <<자본론1(상)>>, 비봉출판사, 1991, 제1장1절 – “상품의 두 요소 :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의 실체, 가치의 크기)”
** 각기 다른 노동 생산물이 양적으로 서로 비교될 수 있으려면 그것들 속에 서로 동질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치다.
** 가치 : 노동량으로 측정되는 상품의 공통 요소
** 가치는 교환 관계에서만 드러난다.
** 교환가치: 양적으로 비교 가능한 가치, 가격으로 표현된다.
** 사용가치 :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유용한 물건, 혹은 물건의 유용성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상품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나타나듯, 노동도 이중적 성격을 띤다. 즉, 노동이 가치로 표현되는 경우에는 사용가치의 창조자로서 특징은 갖지 않는다. 노동의 유용성이 생산물의 사용가치로 표현될 때 그 노동을 유용노동이라고 한다. 저고리와 아마포의 사용가치가 다른 것처럼, 그것들을 만드는 노동도 서로 다르다. 이러한 노동의 차이는 사회적 분업으로 발전한다.
사용가치의 창조자로서 노동은 인간생존의 조건이다. 아무리 복잡한 노동도 그 가치 자체는 단순 노동의 일정한 양으로 표시될 뿐이다. 사용가치로서 저고리와 아마포는 특정 생산 활동이 직물이나 실과 결합된 것이지만, 가치로서 저고리와 아마포는 동질의 노동이 응고된 것일 따름이다. 이때 노동은 아무런 질도 갖지 않는 인간노동으로 환원되며, 곧 노동의 시간만이 문제시 된다.
1개의 저고리의 생산에 필요한, 일체의 유용노동의 생산력이 변하지 않는다면, 저고리들의 가치량은 저고리의 양에 비례하여 증대할 것이다. 더 많은 양의 사용가치는 그 자체로서 더 많은 물적 부를 형성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가치량은 감소할 수도 있는데 이는 노동의 이중적 성격 때문이다.
생산력이란 주어진 시간 안에 주어진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하는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유용노동은 생산력을 늘리거나 줄인다. 생산력이 변동할 때 노동은 동일한 길이의 시간에 상이한 양의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생산력의 변동은 유용노동에만 관계될 뿐, 가치로 표현되는 노동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생산력은 노동의 구체적 유용 형태에 속하는 것이므로 노동의 구체적 유용형태가 무시된다면 그것은 이미 노동에 영향을 줄 수 없다. 따라서 동일한 노동은 동일한 길이의 시간에는 그 생산력의 변동과는 관계없이 항상 동일한 크기의 가치량을 창조한다.
* 칼 마르크스(지음), 김수행(옮김),《자본론1(상)》, 비봉출판사, 1991, 제1장2절 –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 1장1절에 서는 상품의 두 요소인 사용가치와 가치를 구분했다. 사용가치란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는 물건 또는 그 유용성이다. 이 물건이 [시장에서] 교환 가치를 갖는 것은 교환 대상이 되는 다른 물건과 비교 가능한 어떠한 동질의 요소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가치다. 가치는 노동량으로 측정되는 사용 대상인 상품 요소다. 상품 안에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이중의 요소가 있는 것처럼 노동에도 이중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사용가치를 만드는 노동이 있고, 가치를 만드는 노동이 있다. 후자의 노동에서는 노동의 질적 차이가 배제되고, 노동은 추상화된다.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상품은 사용가치의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이러한 평범한 현물형태가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의 이중적 성격, 곧 사용의 대상인 동시에 가치의 담당자이기 때문이다. 상품은 현물형태와 가치형태를 가진다. 가치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상품이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실체의 표현일 경우에만 가치를 갖게 된다는 점을 상기하면, 가치는 상품과 상품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상품들은 하나의 공통적인 가치형태, 즉 화폐형태를 갖고 있다. 이 화폐형태의 발생기원을 낱낱이 밝히면 우리가 갖고 있던 화폐의 신비도 소멸할 것이다. 저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마포가 필요하다. “20미터의 아마포는 1개의 저고리와 가치가 같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가치표현인데, 모든 가치형태의 비밀은 이 단순한 가치형태 속에 숨어 있다. “20미터의 아마포 = 20미터의 아마포”는 가치표현이 아니다. 아마포의 가치는 다른 상품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상품은 등가형태를 띠며 가치형태는 이렇게 대립하는 개념이다. 가치형태는 상대적이다.
가치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상품에 공통으로 내재하는 단위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저고리를 만드는 노동(재봉)과 아마포를 만드는 노동(직조)은 질적으로 다른 구체적 노동이다. 그러나 이 둘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양자가 모두 인간노동이라는 점 때문이다. 즉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환원 가능하다는 뜻이다. 가치형태는 가치량으로 표현된다. 20미터의 아마포와 1개의 저고리의 가치가 같은 것은 거기에 동일한 노동시간이 들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노동시간은 생산력이 변동할 때마다 변한다. 만일 토지가 전보다 황폐해져서 20미터의 아마포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전에 비해 2배가 필요했다면 가치는 ‘20미터의 아마포 = 2개의 저고리’로 표현될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만일 두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이 같은 비율로 증감한다면 두 상품의 상대적 가치는 당연히 불변할 것이다.
어떤 상품의 등가형태는 곧 직접 교환 가능하다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제5편5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환은 동등성 없이는 있을 수 없고, 동등성은 측량의 공통성 없이는 있을 수 없다.” 그는, 현실적 동등물은 바로 인간 노동이라는 가치 개념을 결여했기에 더 이상 진전하지 못했다. 언뜻 보면 교환이 상품의 가치량을 규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상품의 수많은 사회관계, 가치량들이 그 교환비율을 규제한다. 상품의 상대적 가치표현은 상품의 종류 만큼이나 끝이 없다. 새로운 상품이 등장할 때마다 연장되기 때문이다.
만일 아마포의 가치량이 모든 상품의 양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나아가 아마포에 대응하는 다른 두 상품도 서로 비교될 수 있다. 즉 ‘10그램의 차 = 20미터의 아마포’, ‘40그램의 커피 = 20미터의 아마포’라면 ‘1그램의 차 = 4그램의 커피’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1그램의 커피에는 가치의 실체인 노동이 1그램의 차에 들어있는 노동의 1/4만 들어 있다. 아마포가 했던 역할을 어느 순간 어떤 특정한 상품이 대신하게 된다. 즉, 금이 이 특권적 지위를 역사적으로 획득하게 되었다. 아마포의 자리에 금이 들어가면서 다음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1개의 저고리 = 2온스의 금’, ‘10그램의 차 = 2온스의 금’, ‘40그램의 커피 = 2온스의 금’. 이제부터 금이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수행한다. 일반적 등가형태와 금이라는 상품의 특수한 현물형태가 완전히 일체화한다. 금의 독점적 지위는 금을 화폐상품으로 만들었다. 일반적 가치형태가 화폐형태로 전환된 것이다.
** 가치형태는 늘 상대적이며, 노동량으로 측정되는 교환 대상으로서 공통된 상품 요소 즉 가치가 존재하기에 그 크기를 서로 비교할 수 있다. 역사를 통해 어느 때부터 가치는 화폐형태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 참조: 칼 마르크스(지음), 김수행(옮김), <<자본론1(상)>>, 비봉출판사, 1991, 제1권1편1장3절 –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상품의 물신숭배적 성격과 그 비밀
사용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상품은 조금도 신비한 요소가 없다. 상품의 신비한 성격은 사용가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노동생산물이 상품형태를 취하자마자 발생하는 이 신비한 성격은 어디에서 오는가? 분명히 상품형태 자체에서 오는 것이다. 상품형태의 신비성은 상품형태가 인간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들 자체의 물적 성격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치환에 의하여 노동생산물은 상품으로 되며, 감각적임과 동시에 초감각적 사회적 물건으로 된다.
사회적 노동력은 사적 노동의 총체다. 사적 노동은 교환 관계에서만 드러나는데, 노동하는 개인들 사이의 직접적 사회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눈에 보이는 물건을 통한 사회적 관계로 나타난다. 사적 노동은 한편으로는 일정한 유용노동으로서 일정한 사회적 욕망을 충족한다. 반면 모든 노동은 인간노동력의 지출, 곧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공통된 성격으로 환원된다. 그 공통의 성질이 가치다. 모든 상품들이 공통적으로 화폐로 표현된다는 사실이 상품은 가치라는 성격을 확정한다. 그런데 화폐 형태는 사적 노동의 사회적 성격, 사적 생산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폐한다. [현재와 달리] 중세에는 노동과 생산물이 현실적인 사회적 관계를 나타냈다.
이제까지의 경제학은, 어째서 노동이 가치로 노동시간이 가치량으로 표현되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한 번도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다. 늘 논란이 돼 온 것은, 교환가치의 형성에 있어서의 자연의 역할에 관한 무의미한 논쟁 뿐이었다. 교환가치는 어떤 물건에 투하된 노동을 표현하는 일정한 사회적 방식이므로, 예컨대 환율 등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자연물질도 포함할 수 없다. 물건의 사용가치는 교환없이, 물건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 관계 속에서 실현되지만, 물건의 가치는 오직 교환관계에서만, 하나의 사회적 과정에서만 실현된다.
* 참조: 칼 마르크스(지음), 김수행(옮김), <<자본론1(상)>>, 비봉출판사, 1991, 제1권1편1장4절 – “상품의 물신숭배적 성격과 그 비밀”.
교환과정
상품소유자에게 상품은 교환가치를 담당하고 있는 존재일 뿐이다. 상품소유자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사용가치를 가진 다른 상품을 얻기 위해 자기의 상품을 양도하려고 한다. [어떤 물건이 상품이 되었다면] 모든 상품은 그 소유자에게는 비사용가치이고 비소유자에게는 사용가치다. 교환이란 소유자가 바뀌는 것이다. 교환을 통해 상품은 가치로서 실현된다. 그러므로 상품은 [새 소유자에게] 사용가치로서 실현될 수 있기 전에 먼저 [교환 관계에서] 가치로서 실현되어야 한다. 한편 상품은 가치로서 실현될 수 있기 전에 먼저 자신이 사용가치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환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상품소유자에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교환은 단지 개인적 과정일 뿐이다. 한편 자신의 상품을 동일한 가치의 다른 상품으로 전환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보면 교환은 또한 사회적 과정이다. 상품들은 가치로서 서로 등치되며, 가치량으로서 서로 비교된다. 상품들은 [결국] 사용가치로서만 서로 상대한다. [자기의 물건 하나는 타인의 어떠한 상품과도 맞바꿀 수 있는 것이기에] 상품소유자는 타인의 상품을 자기 상품에 대한 특수한 등가물로 간주하고, 따라서 자신의 상품을 다른 모든 상품의 일반적 등가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상품소유자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사실상 어떤 상품도 일반적 등가물이 되진 못한다. 예외로, 하나의 상품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등가형태가 되었고 이 상품은 화폐가 되었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자기들의 능력과 권세를 그 짐승에게 주더라.” (요한계시록, 제17장13절)
화폐는 종류가 다른 노동생산물이 실제로 서로 등치되고, 따라서 실제로 상품으로 전환되는 교환과정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교환의 반복은 일상적 사회 과정이 되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노동생산물의 일부는 아예 처음부터 교환을 목적으로 생산되었다. 필요를 위한 물건의 유용성과 교환을 위한 물건의 유용성이 분리되었다. 물건의 사용가치는 물건의 교환가치로부터 분리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물건의 교환 비율이 물건들의 생산 그 자체에 의해 정해지고, 관습은 이 물건들의 가치를 일정한 크기로 고정한다. 화폐가 상품가치의 표현형태로서, 즉 가치량의 사회적 표현의 재료로서 쓰인다는 것을 알았다. 가치의 적당한 현상형태, 즉 추상적인, 따라서 동등한 인간노동의 체화물로 될 수 있는 것은, 어느 한 부분을 떼어내어 보아도 동일하고 균등한 질로 되어 있는 물질뿐이다. 화폐상품은 순전히 양적인 구별만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금과 은은 태어날 때부터 이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화폐상품은 이중의 사용가치를 가진다. 예컨대 금은 이빨의 대용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특수한 사용가치 외에 사회적 기능에서 나오는 형태적 사용가치도 지닌다. 다른 모든 상품은 화폐의 특수한 등가물일 뿐이지만 화폐는 다른 모든 상품의 일반적 등가물이다. 한 상품의 등가형태는 그 상품의 가치의 크기에 대한 양적 규정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다른 상품처럼 화폐 자신의 가치는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며, 그것과 같은 양만큼의 노동시간이 응고되어 있는 다른 각 상품의 양으로 표현된다.
화폐가 상품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어떻게, 어째서, 무엇에 의해 상품이 화폐로 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한 상품은 다른 상품들이 자기들의 가치를 이 하나의 상품에 표현하기 때문에 비로소 화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마치 이 한 상품이 화폐이기 때문에 다른 상품들이 일반적으로 자기들의 가치를 이 한 상품에 표현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는 그와 반대다] 화폐의 물신숭배성은 상품의 물신숭배성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화폐에서 그것이 더 강하게 드러나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고 있을 따름이다.
* 참조: 칼 마르크스(지음), 김수행(옮김), <<자본론1(상)>>, 비봉출판사, 1991, 제1권1편2장 – “교환과정”.
가치척도
가격표를 거꾸로 읽으면 화폐의 가치크기가 모든 가능한 상품으로 표시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가치척도라는 기능에서 화폐는 오직 표상화된 화폐, 관념적인 화폐의 역할 만을 맡는다. 화폐는 가치척도 및 가격의 도량기준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기능을 맡고 있다. 화폐는 인간노동의 사회적 화신이라는 면에서는 가치척도이고 또 고정된 금속 중량으로서는 가격의 도량기준이다. 화폐명칭인 파운드와, 금의 통상적인 중량명칭인 파운드는 이제 분리되었다. 역사적 과정에서 금속 중량의 화폐명칭이 보통의 중량명칭으로 분리되는 것이 국민적 관습이 된다.
어떤 물품의 명칭은 그 물품의 성질에 대해 외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야곱이란 것을 알더라도 그 사람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화폐명칭에도 가치관계의 모든 흔적이 소멸되어 있다. 가격은 상품 속에 대상화되어 있는 노동의 화폐명칭이다.
상품의 가치크기는 사회적 노동시간에 대한 어떤 필연적인 관계, 그 상품의 형성과정에 내재해 있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가치크기가 가격으로 전화함에 따라 이 필연적인 관계는 어느 한 상품과 그 외부에 존재하는 화폐상품의 교환비율로 나타난다. 가격형태는 상품을 화폐에 대해 양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양도해야 할 필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금은 이미 화폐상품으로서 교환 과정을 누비고 다녔다는 이유로 인해 관념적인 가치척도로서 기능한다. 관념적인 가치척도 속에는 경화(硬貨)가 숨어 있다.
* 참조: 칼 마르크스(지음), 김영민(옮김), <<자본1-1>>, 이론과실천, 1990, 제1편3장1절 “가치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