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 이길우 등 옮김, «진리와 방법1», 문학동네, 2012(2010).

원제: Wahrheit und Methode

- 존 스튜어트 밀은 귀납법을 인간학에 적용했다.
- 개별을 보편으로 귀속하는 방법은 역사 인식에는 부적합하다.
- 드로이젠은 ‘역사의 정언명법’을 요구한다.
- 딜타이는 ‘정신과학의 독립성’을 주장한다.
- 헤르더에 이르러 ‘인간 형성’(Bildung) 개념이 정립되었다. 생성(werden)에서 존재(Sein)으로 향하는 것은 physis의 지속적 형성과 유사하다. 교양은 곧 역사 보존이 된다.

* 체험 예술의 한계, 알레고리의 권리 회복

이른바 ‘괴테의 세기’(1750~1830)는 체험 예술에 한계를 거의 두지 않았던 천재들의 시대다. 그렇지만 예술과 문학의 전체 역사로 보면 이 시기는 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예술 작품을 진정한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체험의 천재성이 아니라 [괴테의 세기 다음에 이어진, 가령 인상주의처럼] 확고한 형식과 표현 방식의 정교한 구성이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문학과 수사학이 공존했는데 19세기로 접어들며 수사학의 지위가 전락해 버렸다. 천재적 창작 이론이 적용된 필연적 결과다.

상징과 알레고리의 개념사를 추적하며 둘 간의 관계 변화를 살펴 보자. 알레고리는 원래 담화나 ‘로고스’의 영역에 속한다. 그 자체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구체적인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한다. 상징은 로고스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 자체 고유한 의미를 지니는데 재회 때 상대를 알아보기 위한 정표 같은 것이 그 예다. 이 둘은 상이한 영역에 있지만 종교 영역에서 둘 다 애용되면서 의미가 서로 가까워졌다. 알레고리는 배후의 진리를 인식시키려는 신학적 필요에서 생겼다. 신플라톤주의는 상징 개념을 알레고리처럼 사용했다. 감각적인 것은 신적인 것, 즉 참된 것이 유출된 것이라서 위로 고양될 가능성이 있다.

볼 수 있는 대상과 볼 수 없는 의미 사이의 불가분성과, 두 영역의 합치 가능성은 종교 의식의 형식적 기초다. 상징이 감각적인 것과 비감각적인 것의 합치라면, 알레고리는 비감각적인 것에 대한 감각적인 것의 의미 있는 연관이다. 의미가 모호한 상징과 의미를 다 드러내는 알레고리는 대비된다. 상징이 지닌 의미의 무규정성은 계몽 시대 합리주의적 미학이 천재 미학에 굴복된 이유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 59절에서 상징 개념을 논리적으로 분석했다. ‘상징적 표현’이라는 개념을 새로 정립한 것은 칸트 사상의 훌륭한 성과다. [상징은 시공간이라는 직관 형식으로 파악 못하는 이성 영역의 이념을 어느 정도 감성화하여 보여준다. 경험적 사유는 유비적으로 확장되며, 판단력과 이성은 형식상 합치한다. 신에 대한 인식은 상징적일 뿐이다.] 인간적 개념을 신에게서 분리했다. 상징의 이런 역할은 미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의 관계를 기술하는 데도 유효하다. “아름다움은 도덕적 선의 상징이다.” [신의 사랑이다.] 감성적 판단력의 완전한 반성의 자유에 대한 요구, 감상적 판단력의 인간적 의미, 이 둘의 일치는 후대에 크게 영향을 끼친 사상이다.

실러와 괴테가 주고받은 편지에 ‘상징’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보편자의 총체성을 자기 안에 포함한 특수자를 가리킨다. 상징은 감각적 현상과 초감각적 의미의 합일이다. 상징은 이념 세계와 감각 세계의 불일치를 쉽게 지양하지 못한다. 상징의 종교적 기능은 이 불일치에 의존하는데, 상징의 의미가 깊을수록 이 불일치는 심화된다. 알레고리는 천재의 일이 아니다. 확고한 전통에 근거하며 오성적 파악에 거슬리지 않는 일정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교리의 통일성이나 성서의 기독교적 해석과 결부되었다. 철학적 미학에서 상징은 인간 정신의 창조물로서 고유한 실증성을 지닌다. 체험 미학의 편견 탓에 절대적 대립처럼 보였던 상징과 알레고리의 관계는 다시 상대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