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문학 고전 강의», 라티오, 2017.

<감상문>

이 책에서 분석한 작품들 중 아직 읽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무척 부담을 갖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책에 나온 작품들을 대부분 갖고 있습니다.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 둔 채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책들을 하나씩 책상으로 가져와 눕혀 놓고 펼쳐 읽고 있습니다. 평생 자발적으로 펼쳐 볼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욥기>도 말이죠.

책 읽는 사람에게 가장 커다란 즐거움은 정신의 경이로움을 깨닫는 순간 같습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은 물리적으로는 우주의 티끌도 안 되는 미미한 존재지만 동시에 무한한 정신을 지닌 거대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이런 정신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이 경이롭습니다. 어떤 세계인지 궁금하고 설렙니다.

<문학 고전 강의>를 펼칩니다.

강유원 선생의 다른 책들도 이미 그러하듯, 이 책의 아름다운 형식은 내용을 더 풍부하고 재미있게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미덕 같습니다. 각 장(작품)마다 첫 항목에는 작품의 주제가 제시되고, 여기에 딸린 항목들에는 인간상(주제)을 잘 드러내는 인물의 이름이 제목으로 달려 있습니다. 모든 장의 구조가 같습니다. 그리고 각 장들이 서로 보완하며 거대한 전체를 이룹니다.

11강 … 인간 도덕의 한계
12강 … 경건한 사람 욥
13강 … 죄를 짓지 않는 욥
14강 … 반항하는 욥
15강 … 무릎 꿇는 욥

26강 … 쟁투를 벌이는 인간들의 무대
27강 … 초자연적 위력을 모두 동원하여 왕이 되려는 맥베스
28강 … 초자연적 힘에 의해 살해당하는 맥베스

32강 … 갈등하는 인간
33강 … 사랑을 과시하는 오셀로
34강 … 파멸을 부르는 오셀로

35강 … 개인의 고투
36강 … 타락하게 된 인간
37강 … 속죄자 인간

제1강 “불멸을 향해 나아간 인간의 귀결”은 마지막인 제40강 “위엄 있는, 신을 믿지 않는, 신을 닮은 선장 에이해브”와 조화롭게 커다란 원환구조를 이룹니다. 각 장에서 다룬 작품들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길가메쉬’는 ‘오뒷세우스’와 연결되고 ‘오뒷세우스’는 ‘파우스트’와 연결됩니다. <팡세>에서 <욥기>는 다시 등장하며, 파스칼이 다룬 세계는 괴테나 허먼 멜빌이 다룬 세계와 통합니다.

인간 세상은 날줄과 씨줄로 촘촘히 엮인 번듯한 옷감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만, 올이 풀려 여기저기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철학과 문학의 경계는 모호하고, 역사와 문학의 경계도 모호합니다. 언제나 생생한 삶이 먼저고 표현 형식은 그 다음이니까요.

셰익스피어가 했던 일은 특정한 캐릭터들로 세상의 수많은 인간 군상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셀로>를 두어 번 읽은 적이 있는데, 이간질에 능통한 협잡꾼 이야고가 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진짜 주인공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보통은 오셀로가 주인공인줄 아는데 말야 실은…’ 하고 말이죠. 그렇지만 <문학 고전 강의>를 읽다 보니 생각이 바뀝니다. 이야고는 오셀로의 의지에 따라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캐릭터입니다. 오셀로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오셀로의 사랑이 데스데모나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데스데모나를 사랑하는 자신을 향한 것인지 파악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참신한 이해와 올바른 이해는 다른 것 같습니다.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 개성 넘치는 독서는 얼마나 섣부른 일인가요. 올바른 번역이 선행되지 않는 개성 넘치는 해석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요. 책장에 꽂힌 <오셀로>를 꺼내 책상에 다시 눕힙니다.

저는 이 책 <문학 고전 강의>가 <철학 고전 강의>의 연속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유하는 유한자 존재하는 무한자”라는 주제가 이 책에도 여러 모습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에 출간된 <숨은 신을 찾아서>가 이 두 고전 강의 시리즈를 넌지시 이어주고 있는 듯합니다. <문학 고전 강의>의 부제인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는 아마도 “내재하는 체험을 매개하는 서사”일 것입니다. 하나인 개인을 인류의 하나가 되게끔 매개하는 이야기 말이죠.

문학은 상상력의 세계입니다. 상상력은 세상을 구성하는 힘이자 공동체 구성원들과 공감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문학은 인간과 인간을 서로 연결해 주는 이야기요 상징입니다. 개인은 구체적이지만 인류는 보편적입니다. 문학적 상징은 그 구체성과 보편성을 잇는 징검다리입니다. ‘오셀로’라는 징검다리를 딛고 ‘맥베스’라는 다음 징검다리를 딛습니다. ‘욥’과 ‘에이해브’라는 징검다리들을 건너며 겪어 보지 않은 세계를 내 안에서 겪습니다.

9년여에 걸친 160주의 고전 강의 여정이 끝을 맺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강유원 선생은 <숨은 신을 찾아서>로 이미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셨음을 독자에게 알렸습니다. 독자로서, 고전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강유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