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정민영 옮김, «에라스무스 평전», 아롬미디어, 2015(2006).

… 그에겐 편협한 광신이 그저 ‘어리석음’의 수많은 형태 중 하나로만 보였으며, 그는 그 어리석음의 수많은 변종과 변형된 모습들을 자신의 <<바보 예찬>>에서 재미있게 분류하고 희화화했다. … 에라스무스의 사명과 삶의 의미는 대립하고 있는 것들을 인간애 속에서 조화롭게 통일하는 일이었다. – 16

에라스무스는 자신의 내면에 창조적인 모든 형태, 말하자면 시인, 철학자, 신학자, 그리고 교육자의 모습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서 겉으로 화합하지 못하는 것들의 결합을 가능한 것으로 간주했다. … 에라스무스에게는 예수와 소크라테스, 그리스도교 교리와 고대의 지혜, 경건성과 도덕성 사이의 대립이 존재하지 않았다. – 17

…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이었던 그는 결코 다른 나라에 대한 어느 한 나라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 그는 언어 위의 언어인 라틴어를 새로운 예술 형식과 이해의 언어로 승격시키면서 유럽의 여러 민족에게 – 이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업적이다! – 세계시간의 영속을 위해 초국가적으로 통일된 사고 형식과 표현 형식을 창조해 주었다. – 18

에라스무스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계몽을 통한 인류의 진보가 가능하다고 여겼으며, 전체적인 교육의 능력과 마찬가지로 인간 형성, 글, 연구 그리고 책의 대중화를 통한 개별 교육능력을 기대했다. 초기 이상주의자들은 이렇게 배움과 독서를 끊임없이 장려해 인간의 품성을 고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거의 종교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책에 대한 믿음이 강한 학자였던 에라스무스는 도덕이 완전하게 가르칠 수 있고, 또 배울 수 있는 영역이라는 사실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삶의 완전한 조화 문제는 그 스스로가 아주 가까이 도래한 것으로 꿈꾼 인류의 조화를 통해 이미 보장된 것으로 보았다. – 19

정신 속에서 서로 결합하라는 정신적인 사람들의 요구, 초언어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라는 언어의 요구, 초국가 속에서 궁극적으로 자유로워지라는 국가의 요구, 이러한 이성의 승리는 또한 에라스무스의 승리이기도 했으며 그의 신성한 세계시간이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짧고 덧없는 세계시간이기도 했다. 어째서 그토록 순수한 세계가 지속될 수 없었는가? 어째서 정신적 화합이라는 바로 그 지고하고 인도적인 이상이 항상 승리하지 못했는가? 어째서 그 ‘에라스무스적인 것이 모든 증오의 불합리에 대해 그토록 오래 교육받아온 인류에게 실제적인 힘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일반의 복지를 계획하고 있는 유일한 이상이 결코 폭넓은 민중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일반적인 품성에서 증오는 순수한 사랑의 권능 옆에서 어두운 제 권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개인의 사욕은 재빨리 모든 개인으로부터 이익을 원한다. – 21

마르틴 루터의 쇠주먹은, 단지 펜으로만 무장한 연약한 에라스무스의 손이 조심스럽고도 정성스럽게 조화시키고자 했던 것을 단 일격에 부숴버린다. …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그 시대의 지도자 중 유일하게 어느 편에도 가담하길 거부한다. … 헛된 일일 수도 있으나 그는 인간적인 모든 것, 공동의 문화재를 구하기 위해 중재자로서 중앙에 선다. 이로써 그는 가장 위험한 장소에 서게 된 것이다. – 25

역사는 절제의 인간을, 중재하는 자들과 화해하는 자들을, 인간적인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열광적인 자, 중용을 잃은 자, 난폭한 정신과 행동을 추구하는 탐험가들이 역사가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런 역사는 인류의 조용한 봉사자를 경멸하고 무시했다. – 30

그가 평생 동안 사용한 언어는 모국어인 네덜란드어가 아니라 배워 익힌 라틴어이다. – 41

그의 나이 오십 세까지 에라스무스는 선물받은, 말하자면 구걸해 얻는 빵으로 살아간다. 머리가 허예지는데도 그는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가 쓴 비굴한 헌사와 아첨의 편지는 수없이 많다. … 에라스무스는 작품에서 더욱 진실하기 위해 편지에서 아첨한다.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바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팔지는 않는다. – 51

그에겐 그림을 위한 눈이 없었고, 음악을 위한 귀가 없었다. … 그의 귀는 실제로 라틴어에만 열려 있다. 단지 활자를 통해서만 세상사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한 문필가의 전형인 그에겐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만이 그가 진실로 친교를 맺었던 유일한 뮤즈였다. 그는 책이라는 매체를 통하지 않고는 현실과 관련을 맺을 수 없었다. – 59

천재적인 대담성과 모방할 수 없는 능란함으로 검열관의 눈을 피해 갖가지 미묘한 문제를 다룰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학자 가운으로 자기를 방어하고, 또는 때에 따라 재빨리 장난꾼으로 변신해 자기를 보호하면서 스스로는 한 번도 위험에 빠지지 않은 위험한 반란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에라스무스가 그 시대의 뻔뻔스러움에 대해 말한 것의 십분의 일만 말해도 화형장에 끌려갔다. 너무 거칠고 시끄럽게 떠들어댔기 때문이었다. – 63

그 시대의 심장을 정통으로 꿰뚫은 이 작품은 아주 가볍고 그저 장난스러운 손에서 나왔다. … 그저 마음의 무거운 짐을 덜 요량으로 단 일주일 만에 물 흐르듯 쓴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가벼움이 그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고 그 태평스러움이 거리낌없는 감흥을 가져다주었다. – 85

루터가 저녁 때 숙면을 위해 뜨겁고 붉게 부풀어오른 자기 핏줄을 가라앉히려고 ‘진한 비텐베르크 맥주’를 매일 마셔야 하는 반면, 에라스무스의 연약한 몸은 묽고 창백한 피를 진한 부르고뉴 포도주로 데워야 한다. 이렇게 사소한 것도 뚜렷한 대비를 보인다. –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