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에로스를 찾아서», 라티오, 2017.

그들은 먼 길을 간다. 아득히 먼 길, 그들이 가는 곳은 그들의 마음속에만 있는 길이다. 그 길의 끝에는 미인이 있다. – p. 7

이 모든 것을 이어 주는 끈이 무엇일까? 무엇이 이 시간과 공간과 정서를 연결할까? – p. 9

미인, 동파와 손님이 바라보는 미인, 그 미인은 하늘 한구석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속에 있는가, 아니면 애초에 미인은 없는가, 그저 동파와 손님이 마음속에 품고 있을 뿐인, 뭔가 아득한, 계수나무와 목락 상앗대에 몸을 의지할 때에야 생겨나서 아름다움이라 이름 붙여진 환영인가. – p. 7

우리 혼 안의 에로스라는 힘이 우리를 이끌고 어딘가로 데려가는데 앞의 것을 감싸안은 채 다음 것으로 이행하고, 그렇게 하는 과정의 종국에서 우리의 지성이 문득 아름다움 자체를 관상하게 되는 것이다. – p. 29

신이 되고자 애쓰는 인간, 신이 된 인간은 절대적인 것과 유한한 것, 하강과 상승의 두 계기의 변증법적 통일에 이른다. 아름다움은 절대적 일자에 대한 믿음에 의해, 신이 되려는 인간의 신비한, 이해를 넘어서려는 노고에 의해 성취된다. – p. 44

청년기에 낭만주의에 젖었던 헤겔 또한 진리와 좋음은 아름다움 안에서만 서로 연관될 수 있다는 것, 그런 까닭에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는 시인이 되어야만 하고 미감적 힘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 그로써 인류의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만년의 헤겔은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세계의 감각을 놓지 않는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며, 인간의 산물의 하나인 예술미는 역사적 공동체적 행위에 의해 산출된 것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헤겔은 그것이 그저 덧없는, 한때의 행위의 소산에 그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영원히 존재하는 절대적 정신이 구체적 현존을 얻어 지상에 현현하는 것이라 강변한다. 그렇다 하여도 우리 시대는 절대적인 것을 놓아 버렸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것 뒤에 어떤 보이지 않는 빛의 실이 연결되어 있음을, 절대적 정신이 숨어 있음을 승인하지 않는다. – p. 64

네가 바라보는 미인과 내가 바라보는 미인은 네가 가진 방식과 내가 가진 방식에 얽매여 있다. 너의 아름다움과 나의 아름다움은 다르다. 아름다움은 내 것이요, 사랑은 내 곁에 있다. – p. 73


주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사랑에 민감한 사람인 동시에 진리를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절대적 만족을 줌과 동시에 진리와도 같은 것임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윤리적 규준에도 합당한 것임을 함축할 것이다. – p.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