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에로스를 찾아서», 라티오, 2017.

그들은 먼 길을 간다. 아득히 먼 길, 그들이 가는 곳은 그들의 마음속에만 있는 길이다. 그 길의 끝에는 미인이 있다. – 7

이 모든 것을 이어 주는 끈이 무엇일까? 무엇이 이 시간과 공간과 정서를 연결할까? – 9

미인, 동파와 손님이 바라보는 미인, 그 미인은 하늘 한구석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속에 있는가, 아니면 애초에 미인은 없는가, 그저 동파와 손님이 마음속에 품고 있을 뿐인, 뭔가 아득한, 계수나무와 목락 상앗대에 몸을 의지할 때에야 생겨나서 아름다움이라 이름 붙여진 환영인가. – 7

우리 혼 안의 에로스라는 힘이 우리를 이끌고 어딘가로 데려가는데 앞의 것을 감싸안은 채 다음 것으로 이행하고, 그렇게 하는 과정의 종국에서 우리의 지성이 문득 아름다움 자체를 관상하게 되는 것이다. – 29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폴로도로스의 부지런함을 보라! – 36

저편의 아름다움은 눈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다. 본래 저편의 아름다움은 빛을 비춤으로써 이편에 아름다움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원형과 모상이 빛의 비춤으로 연결되었으니 우리가 모상에서 시선을 거두어 원형을 보려 한다면, 눈을 감고 영혼을 작동시켜야만 한다. …

지금까지 아름답다 여겼던 것들은 불현듯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저편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흘려 내려서 지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었다. 우리는 그렇게 흘러내린 길을 영혼으로써 따라 올라간다. 이렇게 올라가는 길에는 수에 의한 척도, 비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비례는 감각적 사물의 조화를 파악하는 데에나 쓸모 있을 뿐이다. … 신을 닮고자 하는 인간만이 참다운 아름다움을, 저 너머에 있는 초미를 알아차릴 수 있다. 신이 되고자 애쓰는 인간, 신이 된 인간은 절대적인 것과 유한한 것, 하강과 상승의 두 계기의 변증법적 통일에 이른다. 아름다움은 절대적 일자에 대한 믿음에 의해, 신이 되려는 인간의 신비한, 이해를 넘어서려는 노고에 의해 성취된다.

- 쿠자누스는 신이 세계를 창조할 때… “닮은 것은 닮은 것에서 태어나니, 그로 인해 본성의 어울림을 좇아 낳아진 것을 낳는 것에서 생겨난 것이다.”

신은 무한자요, 인간과 세계는 유한자이다. 유한자인 인간은 같은 유한자인 세계를 알려 한다. 인간이 세계를 알려고 할 때 그의 머리 속에서는 오성이 움직인다. 인간은 오성으로써 세계를 탐구하여 박식한 경지에 오른다. … 세계는 신의 드러남이다. 이 세계 안에는 신의 무한함이 묻어 있다. 인간과 세계는 신의 현현이다. … 오성을 가진 인간이라 해도 이성이 없다면 신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신이 되고자 애쓰는 인간, 신이 된 인간은 절대적인 것과 유한한 것, 하강과 상승의 두 계기의 변증법적 통일에 이른다. 아름다움은 절대적 일자에 대한 믿음에 의해, 신이 되려는 인간의 신비한, 이해를 넘어서려는 노고에 의해 성취된다. – 43~44

르네상스는 분명히 중세에 속한다. 인간의 이성을 소리 높여 외치고, 고대 희랍과 로마의 정신을 되살린다고 하지만 이것은 겉모습일 뿐이며, 그들은 뼛속까지 기독교인들이다. 그들은 신을 두려워하면서도 신을 본받고자 한다. – 47

피치노는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를 수학으로써 논증하려던 쿠자누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 50

‘르네상스’는 신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가톨릭의 교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격렬한 시대의 파도를 이겨내고자 신의 세계지배를 눈으로 확인하려는 조바심이 합리주의라는 객관성으로 표출된 시대였다. – 63

청년기에 낭만주의에 젖었던 헤겔 또한 진리와 좋음은 아름다움 안에서만 서로 연관될 수 있다는 것, 그런 까닭에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는 시인이 되어야만 하고 미감적 힘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 그로써 인류의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만년의 헤겔은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세계의 감각을 놓지 않는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며, 인간의 산물의 하나인 예술미는 역사적 공동체적 행위에 의해 산출된 것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헤겔은 그것이 그저 덧없는, 한때의 행위의 소산에 그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영원히 존재하는 절대적 정신이 구체적 현존을 얻어 지상에 현현하는 것이라 강변한다. 그렇다 하여도 우리 시대는 절대적인 것을 놓아 버렸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것 뒤에 어떤 보이지 않는 빛의 실이 연결되어 있음을, 절대적 정신이 숨어 있음을 승인하지 않는다. – 64

네가 바라보는 미인과 내가 바라보는 미인은 네가 가진 방식과 내가 가진 방식에 얽매여 있다. 너의 아름다움과 나의 아름다움은 다르다. 아름다움은 내 것이요, 사랑은 내 곁에 있다. – 73


주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사랑에 민감한 사람인 동시에 진리를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절대적 만족을 줌과 동시에 진리와도 같은 것임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윤리적 규준에도 합당한 것임을 함축할 것이다. –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