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 히데키(野間秀樹), 김진아 등 옮김, «한글의 탄생», 돌베개, 2011.

일본어 모어화자에게 한국어의 문법적인 재미를 들자면 책 한두 권은 쓰고도 남을 것이다. – p. 57

종성자모로 초성자모를 사용한다는 이러한 생각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정음>의 창제자들은 이론 무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초성이 종성이 되고 종성이 초성이 되는 것은, 음이 양이 되고 양이 다시 음이 되는 이치에 근거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 p. 168

* 참조

종성에 초성을 다시 쓰는 것은, 움직여서 양인 것도 하늘이요, 멈추어서 음인 것도 하늘이니, 하늘은 실제로는 음과 양을 구분한다 하더라도 임금이 주관하고 다스리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한 기운이 두루 흘러서 다하지 않고, 사계절이 돌고 돌아 끝이 없으니 만물의 거둠(정)에서 다시 만물의 시초(원)가 되고, 겨울에서 다시 봄이 되는 것이다. 초성이 다시 종성이 되고 종성이 다시 초성이 되는 것도 역시 이와 같은 뜻이다.

– 김슬옹(해제), «훈민정음 해례본», 교보문고, 2015, 145쪽.


살아 있는 유기체인 한 글자 한 글자의 한자, 한 글자 한 글자가 의미를 이루는 한자가 <지>를 만든다. 그러나 <정음>은 세포여야 하는 문자를 분자 단위로 해체해 버린다. … 최만리를 비롯한 사람들은 이렇게도 생각했을 것이다. … <사고>란 그러한 세포를 단위로 생각하는 것이고, <쓰는 것>이란 그러한 세포를 살아 움직이는 몸으로 키우는 것이다. – p.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