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옹(해제), «훈민정음 해례본», 교보문고, 2015.

제자해

하나의 책이면서 마치 두 권의 책(정음 편, 정음 해례 편)처럼 짜여 있고, 이 두 권의 책이 또다시 각각 두 장의 책으로 나뉜 것 같은 구성이다. 네 부분은 서로의 꼬리를 잡고 순환한다. 세종 서문은 정인지 서문과 맞물려 돌아가고, 예의는 해례와 맞물려 돌아간다. 다시 말해 세종 서문을 자세히 풀어 쓴 것이 정인지 서문이며, 예의를 자세히 풀어 쓴 것이 해례라는 것이다. … 임금이 시작하고 신하가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 108

옛사람이 말하기를, ‘산스크리트어가 중국에 행해지고 있지만, 공자의 경전이 인도로 가지 못한 것은 문자 때문이지, 소리 때문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대개 소리가 있으면 글자가 있는 법이니 어찌 소리 없는 글자가 있겠는가. – <동국정운> 서문 – 130

** <동국정운>에는 위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홍무정운역훈> 서문을 <동국정운> 서문이라고 잘못 표기한 듯하다. 古人謂梵音行於中國 而吾夫子之經 不能過跋提河者 而字不以聲也 夫有聲 乃有字 寧有無聲之字耶 – 『洪武正韻譯訓』 序文

천지자연의 이치는 오로지 음양오행뿐이다. 곤괘와 복괘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이고 멎고 한 뒤에 음양이 된다. … 정음이 만들어지게 된 것도 애초부터 지혜를 굴리고 힘들여 찾은 것이 아니고, 단지 말소리의 이치를 끝까지 연구한 것이다. – 140

무릇 사람의 말소리는 오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 … 목구멍은 깊숙하고 젖어 있으니 오행으로는 물이다. … ‘어금니’는 어긋나고 기니 오행으로는 나무이다. … 혀는 재빠르게 움직이니 오행으로는 불이다. … 이는 강하고 단호하니 오행으로는 쇠이다. … 입술은 모난 것이 나란히 합해지니, 오행으로는 땅이다. – 141

종성에 초성을 다시 쓰는 것은, 움직여서 양인 것도 하늘이요, 멈추어서 음인 것도 하늘이니, 하늘은 실제로는 음과 양을 구분한다 하더라도 임금이 주관하고 다스리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한 기운이 두루 흘러서 다하지 않고, 사계절이 돌고 돌아 끝이 없으니 만물의 거둠(정)에서 다시 만물의 시초(원)가 되고, 겨울에서 다시 봄이 되는 것이다. 초성이 다시 종성이 되고 종성이 다시 초성이 되는 것도 역시 이와 같은 뜻이다. – 145

** 여기서 ‘임금’은 ‘하늘’이므로 君宰를 ‘임금이 주관하고’가 아니라 ‘임금으로서 주관하고’라고 해석하면 더 자연스러울 듯하다. 終聲 復用初聲者 以其動而陽者乾也 靜而陰者亦乾也 乾實分陰陽而無不君宰也.

… 사방의 풍토가 구별되므로 말소리의 기운 또한 다르다. … 중국의 글자를 빌려 소통하도록 쓰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모난 자루를 둥근 구멍에 끼우는 것과 같으니, 어찌 제대로 소통하는 데 막힘이 없겠는가? … 옛날 신라의 설총이 이두를 처음 만들어서 관청과 민간에서 지금도 쓰고 있으니, 모두 한자를 빌려 쓰는 것이어서 매끄럽지도 못하고 막혀서 답답하다. … 근거가 일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 언어사용에서는 그 만분의 일도 소통하지 못한다. …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슬기롭지 못한 이라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 … 어디서든 뜻을 두루 통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소리, 개 짖는 소리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 중국 정통 11년(1446년) 9월 상순에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한 지춘추관사 세자우빈객 정인지는 두 손 모아 머리 숙여 삼가 쓰옵니다.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