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단행본 인용

… 이야기에 따르면, 315년 3월 30일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교황 실베스테르 1세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로마제국 서부에 대한 영구적 지배권을 주는 공식 칙령에 서명했다. 교황들은 이 귀중한 문서를 기록보관소에 넣어두고 … 저항에 부딪힐 때마다 효과적인 선전도구로 이용했다. … 발라는 … 단어와 용어들을 분석했다. … 그 문서에는 4세기 라틴어에는 없던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지 약 400년 뒤에 위조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 문서에 등장하는 날짜는 ‘콘스탄티누스 집정 4년 3월 30일이자 갈리카누스 집정 1년’이었다. … 콘스탄티누스 집정 4년은 315년인 반면, 갈리카누스는 317년에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 오늘날 모든 사학자들은 콘스탄티누스의 증여문서를 8세기 어느 시점에 교황청에서 위조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콘스탄티누스 법>이 위조문서라는 사실을 입증할 때 어쩌면 로렌초 발라는 그의 개인적인 견해, 예컨대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결코 지상권을 교황에게 양보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이끌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문헌학적 분석을 집필할 때 콘스탄티누스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았다. 로렌초는 단순히 몇몇 언어적 표현의 사용들이 기원후 4세기 초와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증여로 일컬어지는 이 문헌의 작가가 기원후 4세기의 로마인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김광현 옮김, «해석의 한계», 열린책들, 2009.


… 수사학이란 …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해서 훼틀리 대주교에서 끝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그는 “수사학이란 시대가 바뀐다고 해서 급속한 진전을 보이는 그러한 학문 분야 중의 하나가 아니다”라고 매우 타당한 주장을 합니다.

- 이보 암스트롱 리처즈(Ivor Armstrong Richards), 박우수 옮김, «수사학의 철학»,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1, p. 5


향찰 자료로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14수이다. …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해독이 시도되었으나 그 해독이 각기 다르다. 같은 작품이 여러 사람에 의하여 해독되었으면서도 해독자마다 다르다는 것은 해독이 안 되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 남풍현, <<고대 한국어 연구>>, 시간의 물레, p. 62


희토류의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한편, 산지는 중국에 편재해 있어 희토류를 둘러싼 정세는 국제적인 경제 문제로 발전했습니다. 2011년 9월, 희토류 부족이 아킬레스건이 된다는 현실을 똑똑히 보여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중국과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제도에서 위법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의 선장이 일본에서 체포되었는데, 이에 중국의 관세당국이 희토류 수출을 중단시켰습니다. 일본 정부가 선장을 신속하게 중국으로 돌려준 배경에는 희토류가 수입되지 못하면 일본 경제가 위태로워질 수 있어서라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 요시다 다카요시, <<주기율표로 세상을 읽다>>, 해나무, p. 138


“하루하루의 식사를 기록한 지 어느덧 28년이 흘렀습니다. … ‘지금도 계속 쓰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물론 지금도 매일 쓰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만둘 이유도 없고, 28년이나 해온 일을 멈추는 데에는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멈추는 것보다 계속하는 편이 편한 일도 있습니다. …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은 제 자신이 계속 건강하고, 살고 있는 지역에 전쟁이나 테러도 없었을 뿐더러 심각한 자연재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이렇게나 오랫동안 매일 그날 그날 … 적어갈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 저의 은밀한 꿈은 이 책에 나와 있는 어딘가의 식당에서, 제 책을 보고 오셨다는 분과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입니다.”

- 시노다 나오키, «시노다 부장의 식사일지»


벤지, 퀜틴, 제이슨이 화자가 되어 일인칭시점에서 서술하는 첫 세 장에서 독자는 화자가 되어 소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강요 받는다. … 백치인 벤지 섹션에서 작가의 전지적 시점으로 서술되는 딜지 섹션으로 가는 과정은 ‘닫힌 영역’에서 ‘열린 영역’으로의 이행. “어둠에서 밝음으로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 벤지 섹션에서 단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이 넘는다. 단문들은 종속절로 구성되지 않고 등위접속사 ‘and’로 병렬 배치된다. … 주절과 종속절 사이에 논리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뿐더러 그 중요성의 차별도 두지 않는 것이다. … 문장과 문법이 해체되며 걷잡을 수 없이 난해해진다. 마지막에서 두번째 단락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해체된 파편적 문장에 일인칭 주어마저 소문자로 표기되어 퀜틴이 심오한 무의식에 빠져 자아를 상실하고… – 역자 해설 중.

- 윌리엄 포크너, «소리와 분노», 문학동네, 2014.


*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김경남 옮김, «자서전 비슷한 것», 모비딕, 2014.

영화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내 삶이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나 교묘하게 준비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탐욕스럽게 미술, 문학, 연극, 음악 등의 예술에 몰두하긴 했지만, 장차 내 앞에 그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영화라는 길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우연치 않게 나에게 그런 길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 163쪽

나는 입사하자마자 조감독으로서 제일 처음 맡은 일 때문에 바로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 선배 조감독들이 그만두겠다는 나를 열심히 만류하면서, 작품도 이런 작품만 있는 게 아니고 감독도 이런 감독만 있는 게 아니라며 달래주었다. / 결국 나는 두 번째 일부터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이 이끄는 팀에 들어가게 됐고, 거기서 선배들이 말한 대로 작품도 감독도 가지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내 얼굴에 고갯마루의 바람이 불어왔다. 고갯마루의 바람이란 길고 험한 산길을 오를 때 고갯마루에 가까워지면 산 저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말한다. 그 바람이 얼굴에 닿으면 고갯마루가 가깝다는 뜻이다. 그리고 곧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탁 트인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말이다. / 나는 카메라 옆의 감독 의자에 앉아 있는 야마 상 뒤에 서서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감회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야마 상이 지금 하고 있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다. / 나는 겨우 고갯마루 위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 고개 너머로 탁 트인 전망과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보였다. – 167쪽

좋은 집을 지으려면 노송나무나 삼나무를 키워야 한다. 막대기와 판자 조각을 주워 와서 만들 수 있는 건 겨우 쓰레기통 정도다. – 171쪽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과 함께 구체적으로 정정하는 일은 웬만한 재능만 갖고는 절대로 할 수 없다. – 183쪽

내가 편집에 대해 야마 상에게서 배운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집을 할 때는 자신의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야마 상은 고생해서 찍은 자신의 필름을 마치 가학증 환자처럼 잘랐다. [···] ‘저렇게 자를 거면 뭐하러 찍었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도 같이 고생한 필름이니까 잘리는 건 가슴 아팠다. 하지만 감독이 고생을 하건 조감독이 고생을 하건, 아니면 카메라맨이나 조명 담당이 고생을 하건, 그런 일은 관객이 알 바 아니다. / 중요한 건 군더더기 없이 충실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 187쪽

야마 상은 배우들을 정중하게 대했다. 나는 가끔 엑스트라의 이름을 잊어버려서, 그들이 입고 있는 옷 색깔로 부르곤 했다.
“거기 빨간 아이”
“잠깐, 거기 파란 양복”
그러던 어느 날 야마 상에게 지적을 받았다
“구로사와 군, 그러면 안 돼. 사람에게는 이름이란 게 있다네.”
물론 나도 그 정도는 알지만 워낙 바쁘니까 이름을 알아볼 여유가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야마 상은 지시를 내리고 싶은 배우가 있으면 그 사람이 엑스트라라도 “구로사와 군, 저 사람한테 가서 이름 좀 알아봐주게”라고 했다. 내가 그 사람의 이름을 야마 상에게 알려주면, 야마 상은 그때서야 그 엑스트라에게 지시를 내렸다.
“OO씨, 두세 걸음 왼쪽으로 가주세요.”
자기 이름이 불린 무명 배우는 몸 둘 바를 모른 채 감격했다.
– 190쪽

나는 연꽃잎이 벌어질 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한 소리를 낸다고 들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시노바즈 연못에 그 소리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그리고 새벽에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그 소리를 들었다. 미미한 소리였지만, 정적에 싸인 아침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마음에 스며들 듯이 들렸다. – 222쪽

열악한 조건 속에서는 한 시간이 두세 시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열악한 조건 때문에 그렇게 느낄 뿐 한 시간의 작업은 한 시간치 작업일 뿐이다. – 227쪽

나는 내 작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작품 속에서 말했으니, 그 이상 뭔가 말하는 것은 사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간혹 내가 작품 속에서 말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관객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면, 나도 모르게 설명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참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말한 게 진실이라면, 누군가 분명히 알아주는 이가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 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