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한성순보>, <한성주보>, <서유견문>에 나타난 ‘철학’ 개념에 대한 연구”, <개념과 소통> 제9호, 한림과학원.

‘哲學’이라는 번역어는 니시 아마네(西周)가 처음 만들었는데, 메이지유신 전후의 일본과 중국에서 사용되던 philosophy에 대한 번역어로 窮理, 學問, 理學, 道理, 玄學, 物理, 理科, 格致學, 愛智學, 聖學, 希哲學, 求聖學, 哲理 등 다양한 개념이 있었다. 哲學은 메이지사회에서 여러 개념들과 경합을 거치면서 정착된다. 이 과정에서 메이지 10년(1877) 도쿄대학 문학부에 철학과가 창설되어 ‘철학’이 한 학과의 명칭으로 제도화되어 사용된 것과 철학사전인 <哲學字彙>(철학자휘, 1881)의 간행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 – 149

서양에서 유래된 ‘philosophia, philosophy’를 처음에는 음역하여 斐祿所費亞, 菲洛素菲, 非羅沙非 등으로 사용하다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哲學’이라는 용어로 번역하고 이 번역어가 동아시아 삼국에 정착하게 된다. – 151

philosophia, philosophos라는 용어가 최초로 일본에 등장하는 곳은 16세기의 기독교 문서이다. 1591년 나가사키(長崎)의 예수회 콜레지오(Collegio)에서 간행된 〈Sanctos Nogosaggveono Vchinvqi〉(산토스의 작업 중의 拔書)에 ‘philosopho’, ‘フィロゾホ’라는 용어가 보이는데 그 의미는 ‘사물의 근원을 아는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그후에 philosopho의 번역으로 음역인 ‘フィロゾホ’ 외에도 格物窮理, 窮理學, 理學 등의 개념이 사용되었다. 이 당시에는 philosophy를 자연학 또는 학문 일반과 엄밀히 구분하지 않은 채 혼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英和對譯袖珍辭書>(영화대역수진사서, 1862)는 철학을 ‘理學’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때 ‘이학’이라는 용어는 17세기의 중국어의 용법을 이어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 philosophy를 哲學으로 처음 번역한 사람은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이다. 그는 쓰다 마미치(津田眞道, 1825~1903)의 <性理論>(성리론, 1861)에 대한 발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西土의 학이 전래된 지 이미 백여 년. 格物, 舍密(화학), 地理, 器械 등 여러 科에 대해서는 그것을 궁구하는 자가 있지만 오직 希哲學(ヒロソヒ)一科에 대해서는 아직 그런 사람을 볼 수 없다. 마침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西人이 論氣는 구비했지만, 論理는 아직 없다고 한다…

여기서 니시가 philosophy에 대한 음역 ヒロソヒ를 希哲學으로 번역하면서 철학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데… 니시는 philosophy를 전통 유학과 구별하기 위해 철학이라는 개념으로 처음 번역하고 그 과정을 <生性發蘊>(생성발온, 1873)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哲學의 원어는 영어로 philosophy, 불어로 philosophie이다. 희랍어의 philo는 사랑[愛]하는 사람이고 sophos는 현명하다는 의미이다. 賢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 學을 philosophy라고 한다. 周茂叔의 소위 士希賢의 뜻이다. 후세에 관용적으로 쓰이게 된 理를 한결같이 강구하는 學을 가리킨다. 理學, 理論으로 번역하는 것이 직역이지만 다른 것과 혼동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哲學이라고 번역하여 東州의 儒學과 구별하고자 한다.

니시는 philosophia를 처음에는 philo의 뜻을 살리면서 한자역어를 고르는 과정에서 애(愛)의 의미를 갖는 ‘希求’, ‘希’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니시는 주돈이의 聖希天, 賢希聖, 士希賢을 모방해서 ‘希求賢學’이라는 의미에서 ‘希賢學’이라고 번역했다가 ‘希求哲智’라는 의미에서 ‘希哲學’이라 했는데, 네덜란드 유학 후 ‘희’를 빼고 ‘철학’이라고 번역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사상사의 맥락에서 보면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만물의 생성발전을 명확히 한 주돈이의 태극도설이 주희의 이기이원론에 의해 더욱 심화되어 합리론적 우주론, 존재론, 실천론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이 송학 또는 주자학으로 명명되었지만, 내용적으로는 性理學으로도 불리어 여기서 理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당시 일본에서 理學은 物理學의 의미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니시는 이 혼동을 피하고 전통 유학의 理 개념을 비판하고 유학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철학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 154

그런데 니시가 활동한 메이지유신 전후의 일본과 중국에서 사용되던 philosophy에 대한 번역어로는 窮理, 學問, 理學, 天道之說, 道理, 道, 義理之學, 學, 玄學, 物理, 理論, 理科, 格致學, 愛智學, 智學, 聖學, 希哲學, 求聖學, 哲理 등 매우 다양한 개념이 있었다. … 그러므로 니시가 1870년 전후에 만든 번역어인 哲學이 메이지사회에 정착하기까지에는 위의 다양한 개념들과 치열한 경합을 거쳤으며, 마침내 두 가지 사건에 의해 제도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 사건 중 특히 중요한 것은 메이지 10년(1877) 도쿄대학이 법학부·이학부·문학부의 세 학부로 창립되면서 문학부에 두 개의 학과가 개설되었는데, 제1과는 사학·철학·정치학과로, 제2과는 화한문학(和漢文學)과로 명명된 것이다. 철학이 도쿄대학의 한 학과의 명칭으로 제도화되어 사용되면서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학이 정착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는 1881년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郞, 1856~1944) 등이 간행한 <哲學字彙>(철학자휘)였다. 이것은 philosophy의 번역어로 철학을 채택한 최초의 사전… – 155

당시에 서구의 science 개념은 아직 ‘과학’으로 번역되지 않았고 實理·學·學術·窮理·理學 등의 번역어가 사용되었는데, science를 ‘과학’이라는 용어로 처음 번역한 사람도 니시 아마네이다. 그는 1874년에 <明六雜誌>(명육잡지) 제22호에 실린 「知說(지설)」이라는 글에서 科學을 제시했고 그 의미는 분과학문이었다. – 157

중국어로 哲學[저쉐]은 바로 philosophy의 번역이었고 이 일본어 번역이 중국에 등장하기 전에는 서양의 철학과 버금가는 중국의 학술 또는 학문에 대해 자학(子學)이나 경학(經學), 이학(理學)이나 성리학(性理學) 등의 용어로 불렀다. – 158

선교사 알레니(Giulio Alleni, 중국 이름은 艾儒略, 1582~1646)의 저술 <직방외기>(1623)는 세계 각지의 지리와 문물을 기록한 책인데, 알레니는 이 책에서 유럽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문과와 이과를 나누어 소개한다. 문과는 소학(小學)으로 기초적 교양을 습득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이과는 철학일반의 교과과정을 의미한다.

중학(中學)은 이과(理科) 과정이며 세 과목이 있다. 일년째는 落日加(로기카,logica), 즉 시비를 변론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년째는 費西加(피지카, physica),즉 성리(性理)를 관찰하는 방법을 배운다. 삼년째는 黙達費西加(메타피지카,metaphysica), 즉 성리를 넘어서는 학문 性理以上之學을 배운다. 이 과정을 통틀어서 斐祿所費亞(philosophia)라고 한다. – 159

차용어는 다음 세 가지에 해당한다. ①근대 이전의 일본어에서만 발견되고 전통적인 중국어에는 없는 한자복합어, ②서구의 용어를 번역하기 위해 일본인이 사용한 고전 중국어 표현으로, 이들은 의미상 현격한 변화를 거친 상태로 중국으로 역수입, ③근대 일본어 복합어들로 고전 중국어에는 같은 표현이 없는 것들이다. 철학은 ③의 경우에 해당하는데 이 개념과 함께 중국에서는 격물, 궁리, 성리, 이학, 현학 등의 개념이 같이 사용되었다. 또한 서구 science의 음역으로 塞因斯로 또는 격치로 사용되다 과학(科學)으로 수용된 경우는 ②에 해당되는데, 과학은 중국에서 과거(科擧)와 관련된 학문으로 사용되다가 의미상 완전한 변화를 겪게 된다. … 그런데 결정적으로 1905년에 과거제가 폐지되면서 과학이 격치를 대체하게 된다.

과학이 격치를 대신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사회제도와 사상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원인이 있었음을 증명해 준다. 언어상으로 볼 때 이것은 역시 ‘과학’이 중국어에서 ‘과거(科擧)’와 ‘분과학문’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중국인이 ‘과학’으로 science를 지칭하는 것을 방해하는 주된 원인이 있었음을 증명해 준다. 이러한 혼용은 과거제의 폐지에 의해 사라졌고, 이때부터 ‘과학’이라는 용어가 단일한 의미로 널리 사용될 수 있었다. - 161

조선에서 서구철학사상이 알려지는 것은 천주학의 전래에서 시작한다. <직방외기>나 <천주실의> 등의 책 속에는 서양신학이나 철학에 관계된 것이 가끔 나온다. ‘철학’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이기 이전에는 philosophy가 斐祿所費亞 또는 費祿蘇非亞로 음역되어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천주교를 통해 전해진 서양철학사상은 주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한 스콜라철학이었으며, 따라서 그외의 것은 아주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다. – 163

索格底(소크라테스)·布拉多(플라톤)·額利斯多(아리스토텔레스) 3인이 聖賢이라 일컬어졌다. 소크라테스는 格致·誠正·修齊·治平을 급선무로 삼았고, 플라톤은 원래 소크라테스에게서 나와 스승의 학문을 확충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게서 배워 별도의 학파를 세웠다. 플라톤은 性道之學을 宗旨로 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格致之學을 요지로 삼았다… (<한성순보> 1884. 3. 18.)

태서의 文學은 비록 分派되어 여러 가지가 많지만 요점은 모두 天(천문학)·算(算學)·格(物物學?)·化(화학) 등이다. 대저 그 근원은 동방에서 나왔는데 다만 서양인들이 推廣하여 流傳한 것이다. …牛頓(뉴턴, Newton)이 天文과 格致 등 학문에 옛것을 개척하고 새로운 것을 연구한 것이 많지만 인력(吸力相引之理)을 발견한 공로가 제일 크다… (<한성순보> 1884. 3. 8.)

인용문에서 사용되는 文學은 19세기 말 literature의 번역어로 채택된 文學과는 다른 것으로 학문, 학예와 같은 포괄적 의미를 갖고 있다. – 166

1889년 집필이 완료된 <서유견문>은 우여곡절 끝에 1895년 일본 도쿄에서 간행된다. 유길준은 이 책의 제13편에서 ‘泰西學術의 來歷’, ‘태서군제의 내력’, ‘태서종교의 내력’, ‘학업하는 조목’을 소개한다.

이천칠백여 년 전 시대로부터 希臘國에 學士가 배출하니 詩에는 胡邁(호머)와 喜時傲(히시옷)와 扁道(핀더)의 諸人이오. 文에는 喜老道(히로도타스)와 秋時伊(츄싯이듸스)와 杜娛道(듸오도라스)와 弼婁台(플누타치)의 諸人이며 生物學에는 脫累秀(텔늬스)와 皮宅高(피퇴코라스)의 諸人이오. 道德學에는 思嗜賴(스크렛즈)와 弼賴土(플네토)의 諸人이며 窮理學에는 阿利秀(아뤼스토털)라.

유길준은 ‘태서학술의 내력’에서 서구학술의 역사를 개관한다. 그는 지명과 인명을 번역하면서 중국과 일본의 번역이 있으나 자신이 듣고 본 것은 비록 한글음[我音]에 맞지 않아도 채용했는데 英吉利나 墺地利가 그러한 예이며, 듣지 못한 것은 한자로 한글음에 가깝도록 번역했는데 喜時傲와 秋時伊 등의 예가 그렇다고 말한다. –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