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준(兪吉濬, 원저자), 장인성, «서유견문», 아카넷, 2017.

… 유교패러다임과 근대패러다임이 중첩된 시기였다. … 유학적 언설과 언어는 현실에 대한 해석력이 떨어지고, 막 들어오기 시작한 근대언어들은 아직 현실을 규정하는 힘을 갖지 못하였다. … 현실과 언어가 분리되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유학자들은 집요하게 기존의 유학 언어로 현실을 설명하고자 했다. … 유길준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거나 언어의 의미를 변용시켜 현실에 대응하였다. – 18

… 유길준은 ‘제도’, ‘규모’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이 말은 현재 통용되는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제도’는 제도(institution)의 뜻도 있지만 규범(norm)이란 뜻에 더 가까웠다. ‘규모’도 지금은 크기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주로 국가의 운용과 관련하여 규범, 제도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하였다. – 20

유길준은 ‘인세’(人世)라는 말로 사회를 묘사하였다. 일본에서는 ’society’의 번역어로 ‘인간교제’, ‘동료집단’ 등 여러 말이 쓰이다가 1870년대 말부터 번역어 ‘사회’가 통용되었다. 유길준도 일본을 통해 ‘사회’ 개념을 인지했을 터다. 하지만 ‘교제’, 특히 ‘인세’(人世)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였다. ‘인세’는 인민이 사회적 관계를 영위하는 세상을 뜻한다. ‘인세’는 사회를 연상시키기에는 충분한 말이었다. 근대적 사회현상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이 말이 더 유용했을 것이다. – 46

… 언문을 아문(我文)이라 부르고 식자층이 사용한 진문을 한자(漢字)라는 중립적 호칭을 사용한 대목에서도, 유길준의 자주적 언어관과 주체성을 엿볼 수 있다. – 114

<비고> – 지명과 인명은 중국과 일본의 번역어가 이미 있다. 하지만 나의 견문이 미친 것은 우리 음에 맞지 않아도 채용하였다. 영길리(英吉利), 오지리(墺地利)의 부류다. 견문이 미치지 못한 것은 한자로 우리 음에 가깝게 역출하였다. 희시오(喜時遨), 추시이(秋時伊)의 부류다. –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