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이용재 옮김,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아카넷, 2018.

원제: 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

제1권

아메리카에 머무는 동안 나의 관심을 끈 생소한 것들 중에서 조건들의 평등만큼 나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 아메리카 사회를 연구하면 할수록 나는 이 조건들의 평등이 다른 개별적인 사실들의 원천이 되는 기본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11

우리 역사의 지난 장면들을 훑어보면, 지난 700년 동안 일어난 거대한 사건들 중 평등을 증진시키는 데 이바지하지 않은 사건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귀족은 사회의 사다리에서 한 걸음씩 하강하고 평민은 상승했다. – 15

창조주의 특별한 계시가 없더라도 나는 유성들이 하늘에서 창조주가 가리키는 궤도를 따라 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17

권력의 행사나 복종의 습관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기는 권력의 행사이며 찬탈당한 압제적인 권력에의 복종이다. – 21

민주정치에서는 귀족정치 아래서보다는 장대함이 덜하지만 그만큼 비참함도 덜할 것이다. 쾌락은 더 줄어들지만 행복은 더 늘어날 것이며, 학문은 덜 완벽해지지만 무지는 더 줄어들 것이다. 감정은 덜 활기찰 것이지만 습관은 더 부드러워질 것이며, 악덕은 늘어나지만 범죄는 줄어들 것이다. – 22

17세기 초에 아메리카로 옮겨온 이주민들은 민주주의 원리를 유럽의 낡은 사회들 속에서 그것이 맞싸웠던 다른 원리들로부터 용케도 떼어냈으며, 민주주의 원리만을 신세계에 옮겨 심었다. 거기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롭게 자라날 수 있었으며 사회의 습속에 스며들었고 평온하게 법제 속에 자리 잡았다. – 28

나는 민주주의가 가져오는 혜택이 무엇이며 폐단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 했다. – 30

… 토지는 귀족제의 토대이다. … 귀족제를 확립하고 유지해주는 것은 결코 특권이나 혈통이 아니라 세습적으로 물려받은 토지 재산이다. – 55

… 노예제는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고 사회 속에 게으름을 퍼트리며, 이와 함께 무지, 오만, 가난, 사치를 퍼트린다. … 영국적 특성과 결합된 노예제의 영향은 남부의 습속과 사회 상태를 설명해준다. … 북부에서는 전혀 다른 모양새가 나타났다. – 57

이주민들, 즉 그들끼리의 호칭에 따르자면 ‘순례자들’(pilgrims)은 영국의 한 교파에 속했는데, 이 교파는 엄격한 교리 덕에 청교도(putitan)라 불렸다. 청고도주의는 …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완벽한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이론들과 일치했다. 청교도주의가 가장 위험한 적들을 불러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 이들 이주민이 황량한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맨 먼저 한 일은 사회를 조직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곧 다음과 같은 언약을 맺었다. / “… 하느님의 영광과 기독교 신앙의 발전과 우리 조국의 명예를 위해 … 하느님 앞에 엄숙한 상호 동의에 의해 정치 사회를 결성하기로 합의한다. 이 계약에 의해 우리는 법률, 법령, 규약을 제정할 것이며 필요할 경우 우리 모두 마땅히 복종하고 존중해야 할 행정 관직을 임명할 것임을 합의한다.” / 이것은 1620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때부터 이민이 끊이지 않았다. – 59~64

… 형법 체계에서 입법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사회 내에 도덕적 질서와 선한 습속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 입법자들은 예전에 유럽에서 그들이 요구했던 종교적 자유의 위대한 원칙들을 까마득히 잊은 채, 예배 참석을 의무화했으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형에 처했다. 또한 자신들과 다른 형식으로 하느님을 경배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때로는 사형을 언도하기까지 했다. … 하지만 … 억압적인 법률들은 당사자 모두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투표로 결정된 것이었으며, 당시의 사회적 습속은 법제보다 더 엄격했으며 더 청교도적이었다. … 반면에 이 형법들과 어느 정도 연관을 맺으면서 일련의 정치 법률들이 제정되었는데, 이 법률들은 200년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 우리 시대의 자유의 정신보다 훨씬 앞선 듯이 보인다. … 공공 업무에 대한 인민의 관여, 과세에 대한 자유투표, 권력기관의 책임 행정, 개인적 자유, 배심원 재판 등이 여기서 논란 없이 실행되었다. / 이러한 기본 원칙들의 정착과 발전은 유럽의 어느 나라도 감히 넘보지 못할 정도로 뉴잉글랜드에서 시행되고 발전해 나갔다. – 68~71

영국계 아메리카 문명은 뚜렷이 구별되는 두 요소의 결합물이다(이 점을 늘 염두에 두도록 하자). 이 두 요소는 다른 곳에서는 서로 자주 충돌했지만 아메리카에서는 말하자면 하나가 다른 하나 속에 뒤섞여서 훌륭하게 결합되었다. 이 두 요소란 바로 ‘종교정신’과 ‘자유정신’이다. – 76

… 평등이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상대는 바로 상속법이었다. … 상속법에 의해서 인간은 자기 동료들의 미래에 대해 거의 신적인 권력을 얻게 된다. … 상속법 덕에, 소유자가 죽을 때마다 재산에서 일종의 혁명이 일어난다. 재산의 주인이 바뀔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재산 자체의 성격이 바뀌는 것이다. … 균등 분배가 입법화된 나라에서는 재산, 특히 토지 재산이 점점 작게 쪼개지는 항구적인 경향이 있는 것이다. – 85

인민이든 국왕이든, 민주정치든 귀족정치든,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어떤 권력체에 전능한 권리와 능력을 부여한다면, 나는 거기서 압제의 씨앗을 본다. … 합중국에서 시행되는 민주주의 통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 그 취약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막강한 힘에 있다. … 공권력은 무장한 다수에 다름 아니다. … 당신의 심기를 해치는 그 조치들이 아무리 부당하고 불합리하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그것에 복종해야만 한다. – 428

군주들은 말하자면 물리적인 폭력을 구사했다. 반면에 오늘날의 민주공화정들은 인간의 육체보다 인간의 의지를 통제하고자 하면서 심리적인 차원에서의 폭력을 구사했다. – 434

… 나는 인간의 품위가 저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수단밖에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을 비굴하게 만드는 최상위 권력을, 그 전능한 힘을 어느 누구에게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 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