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 사계절, 2017.

조재수(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장): 제대혈(臍帶血) 말이에요. 탯줄피잖아. 제대혈이 얼마나 어려운 말이야. 우리 때는 사각형 대신 네모꼴, 정사각형 대신 바른네모꼴을 썼지. … 전부 한자어로 되돌아가 버렸어. – 46

조재수: 이효석이 <조광> 잡지에 처음 발표했을 때는 <모밀꽃 필 무렵>이었거든. 모밀밭으로 썼고, 그런데 어느 시점에 ‘메밀’이 표준어가 된 거지. … 그것이 강원도, 함경도 말이라 하더라도 사전에 담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 49

조재수: 그렇게 안 쓰던 말도 텔레비전에서 누가 써버리면 또 금방 유행이 되지요. ‘엽기적’이라는 말이 그렇게 됐잖아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말인데. – 61

장경식(한국브리태니커 대표): 예전에 포클랜드 제도를 영국의 입장에서 기술하느냐, 아르헨티나의 입장에서 기술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죠. 지금은 중국이나 일본과의 영토 분쟁 등이 있고요. …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도 무너졌잖아요. 체코는 체크가 맞는지, 체코가 맞는지 관련 기관에 물어봤는데 아직 기준이 없대요. 우리는 ‘체크 + 오 + 슬로바키아’니까 체크로 했어요. 그랬는데 나중에 체코로 정했다더군요. … 관행이라는 이유로 ‘체코’로 정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어긋나는 것들이 많아요. 이 문제에서는 결국 체크로 정했습니다. – 105

나는 ‘타케시마’라는 표기를 선호하지만, 편집자는 분명 이를 ‘다케시마’라고 고칠 것이다. 그것이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출판사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창비로, 이 출판사는 고유의 외국어 인명/지명 표기 원칙을 가지고 있다. 열린책들도 마찬가지다. … 도스토옙스키(국어원), 도스또예프스끼(열린책들), 도스또옙스끼(창비)라는 … 한글 표기를 가지게 되었다. とうめ けい라는 일본 작가는 게이 도메(국어원), 케이 토우메(일본 만화 출판사들)라는 2개의 표기가 있다. … 영어식으로 성과 이름을 뒤바꿔 표기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성이 도메, 이름이 게이) … 띄어쓰기도 이상한 말이에요. ‘붙여쓰기’ 원칙이죠. 조사를 제외한 모든 단어는 띄어 쓴다고 해놓고 이후 예외적으로 붙여 쓸 것들을 나열하고 있으니까요. 그럴 거면 붙여쓰기라고 부르는 게 맞죠. – 109

도원영(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사전편찬부 부장): … DB는 제한이 없으니까 용량은 무한대가 됐지만, 한 화면에서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은 오히려 옛날보다 적어졌죠. 이제는 어떻게 하면 그 작은 화면 안에서 중요한 것 위주로 잘 보여줄 수 있을까가 문제가 된 거예요. – 189

안상순(금성출판사 사전팀장): 저는 빈도주의자예요. 대부분의 언어 현상은 빈도와 분포가 설명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뜻풀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뜻풀이만 보면 이해 안 되는 것도 많지만 예문은 모든 것을 설명해주거든요. 사람은 어떤 문장을 마주했을 때 단어 하나하나를 분석해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문장을 통째로, 각 단어들이 어우러진 관계 전체를 입체적으로 받아들이잖아요. … 그 단어가 실제 사용된 예문과 사용된 횟수, 즉 빈도가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연세한국어사전>이 그런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이 사전은 말뭉치를 구축해놓고 현대 한국어를 모아 담은 공시사전이거든요. 표제어가 5만 어휘에 불과하지만 제가 볼 때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시사전이에요. 다른 국어사전은 … 현재 쓰이지 않는 단어가 너무 많아요. <연세한국어사전>은 뜻풀이가 너무 간결하고 표제어 규모도 작은 편이지만, 현대 한국어의 모습을 담으려고 애쓴 최초의 공시사전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 261

안상순: … 언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더 알고 싶어서 찾아본단 말이에요. 가령 ‘두렵다’와 ‘무섭다’, ‘즐겁다’와 ‘기쁘다’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사전을 통해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단 말이죠. 현재의 사전들은 그런 욕구를 해결해주기에 미흡한 점이 많아요. … 순환 풀이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 국어사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고급 수요에 부응하는 일이라고 봐요. … 그래야 사전을 찾는 사람이 ‘아, 그렇구나! 이런 게 있었구나!’ 하고 지적 만족을 얻죠. – 267

안상순: 작성례와 인용례는 역할이 서로 다르다고 봅니다. 작성례를 통해서는 표제어의 가장 전형적이고 표준적인 예를 보여주고, 인용례로는 그 말이 작품 속에서 얼마나 맛깔스럽게 쓰였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270

말 다듬기 결과물 가운데 비웃음을 샀던 사례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반응이 괜찮았던 결과물을 소개하겠다. 선집(컴필레이션)이나 보상 환급(페이백) 등은 단시간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말들이다. 뽁뽁이(에어캡)처럼 현재 언중의 다수가 사용하는 표현을 다시 한 번 인정해준 경우도 있다. – 283

외래어를 배격하고 자국어의 가치를 높이려는 정책은 대부분 민족주의와 연결된다. 유대인이 시오니즘을 통해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방법으로 추진한 일이 사어였던 히브리어를 살려 쓰는 것이었고, 터키도 민족정신 운운하면서 아랍어 계통의 외래어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에게는 조선어를 지키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기도 했다. … 언어 통제의 드라마틱한 예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잘 묘사되어 있다. –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