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황제 기증서>가 위조임을 입증한 로렌초 발라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 1406~1457)는 그리스도 이후, 1,400년 동안 가장 유명했을 문서에 대해 역사상 가장 유명할 문서 분석을 내놓았다. 그 문서는 4세기에 로마 황제가 기독교 교회에 선물과 교리를 증여했음을 기록하고 있다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장’이었다. 이 ‘기증장’은 중세 내내 교회의 무기고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발라는 이것이 위조문서임을 입증했다. … 문헌학을 역사적 연구에 적용한 결과, 과거를 다루는 방법에 두 가지 새로운 생각이 추가되었다. 첫째 생각은 문서 자체의 특징에 근거해 문서를 비판할 수 있고, 따라서 무엇이 역사적 기록의 ‘진실’을 구성하느냐는 문제에 대한 기준을 몇 가지 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둘째 생각은 언어가(따라서 문화가) 역사적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는 것,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통치 엘리트층의 운명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말하고 생활하는 방식 또한 변했다는 것이었다.

- 존 H. 아널드(John H. Arnold), 이재만 옮김, «역사», 교유서가, 2015.

… 이야기에 따르면, 315년 3월 30일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교황 실베스테르 1세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로마제국 서부에 대한 영구적 지배권을 주는 공식 칙령에 서명했다. 교황들은 이 귀중한 문서를 기록보관소에 넣어두고 … 저항에 부딪힐 때마다 효과적인 선전도구로 이용했다. … 발라는 … 단어와 용어들을 분석했다. … 그 문서에는 4세기 라틴어에는 없던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지 약 400년 뒤에 위조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 문서에 등장하는 날짜는 ‘콘스탄티누스 집정 4년 3월 30일이자 갈리카누스 집정 1년’이었다. … 콘스탄티누스 집정 4년은 315년인 반면, 갈리카누스는 317년에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 오늘날 모든 사학자들은 콘스탄티누스의 증여문서를 8세기 어느 시점에 교황청에서 위조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콘스탄티누스 법>이 위조문서라는 사실을 입증할 때 어쩌면 로렌초 발라는 그의 개인적인 견해, 예컨대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결코 지상권을 교황에게 양보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이끌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문헌학적 분석을 집필할 때 콘스탄티누스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았다. 로렌초는 단순히 몇몇 언어적 표현의 사용들이 기원후 4세기 초와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증여로 일컬어지는 이 문헌의 작가가 기원후 4세기의 로마인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김광현 옮김, «해석의 한계», 열린책들,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