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 윤용택 옮김, «과학 철학 입문», 서광사, 2012(1993).
An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Science (1966)
만일 어떤 규칙이 언제 어디서나 예외 없이 관찰된다면, 그 규칙은 “보편적 법칙”의 형식으로 표현된다. … 불행하게도 우리의 언어는 이처럼 애매하고, 따라서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 17
… 법칙들은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설명해 주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예측하게 해준다. … 좀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사실에 의한 설명은 어떤 법칙들을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는 불완전하면서 동시에 많은 것이 생략된 진술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그러한 법칙들은 너무나 친숙해서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설명을 할 때 쓰이는 법칙이 보편적 법칙이 아니고 통계적 법칙일 경우도 때때로 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통계적 설명으로 만족해야 한다. … 양자 이론에서도 우리는 통계적 법칙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의 무지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기본 구조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잘 알려진 예이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의 모든 법칙이 궁극적으로는 통계적인 근본 법칙에 의존한다고 본다. – 21
… 논리학의 기본 법칙은 어떠한가? … 논리학과 순수 수학의 법칙들은 보편적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세계에 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특정한 개념들 사이에 타당한 관계들을 진술할 뿐이다. … 우리는 “셋에다 하나를 더하면 넷이다”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가능 세계에서도 타당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떻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 경험적 법칙은 논리학과 수학의 법칙처럼 확실성을 띠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세계의 구조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 25
우리가 불변하는 물리학적 상수라고 믿는 것들도 우리가 아직 관찰하지 못한 광대한 주기적 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 27
… 논리학과 수학에서의 진술들은 세계에 대해서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셋에다 하나를 더하면 넷이다”라는 것을 확신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가능 세계에서도 타당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떻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 “가능 세계”라는 어떤 세계인가? … 모순 없이 기술될 수 있는 세계이다. – 27
… 피히테, 셸링, 헤겔의 전통 속에서 … 독일 관념론자들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기술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 현상 뒤에 숨겨져서 과학적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원인들을 탐구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믿고 있었다. – 29
예측은 숙고된 선택에 의한 인간의 어떤 행위 속에도 다 들어 있다. 만일 예측이 없다고 한다면, 과학도 일상 생활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 38
연역에는 일반적인 것으로부터 특수한 것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도 다른 종류의 추리들이 있다. 그리고 귀납에도 여러 종류의 추리가 있는 것이다. – 39
나는 여기서 다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두 종류의 확률, 즉 통계적 확률과 논리적 확률은 동일한 추리의 고리 속에서 함께할 수 있다. 통계적 확률은 과학에 있어서의 대상 언어의 일부이다. 우리는 과학에 있어서의 메타 언어의 일부인 논리적 확률을 통계적 확률에 관한 진술에 적용할 수 있다. – 63
수를 센다는 것은 음이 아닌 정수를 센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양의 정수”보다는 “음이 아닌 정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 넓은 의미에서 센다는 말을 쓸 때 0이라는 것도 세는 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 87
앞으로 언젠가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비롯한 다른 물리량들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와 같은 모든 물리량들이 불연속적임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물리학의 법칙도 정수만을 가지고 다룰 수 있을 것이다. – 122
유클리드의 평행선의 공리를 대신할 공리에 대한 연구에는 정반대되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1) 하나의 평면 위에서, 한 선 밖에 있는 어느 한 점을 통과하는, 어떤 평행선도 있을 수 없다. (유클리드는 정확히 하나 있다고 말했다.)
(2) 평행한 선은 하나 이상이다. (만일 하나 이상이라면, 무한히 많을 것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부터의 이러한 일탈들 가운데 첫번째 것은 러시아의 수학자 로바체프스키에 의해 이루어졌고, 두번째 것은 독일의 수학자 리만에 의해 이루어졌다. – 174
칸트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의 기하학, 즉 수학적 기하학과 물리학적 기하학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 “기하학은 확실히 선험적이다. 따라서 그 정리들의 진리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수학적 기하학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세계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해 준다. 그것의 도움으로 우리는 실제의 기하학적 구조에 대한 측정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고 해보자. 그 경우에 우리는 다른 의미의 기하학으로 무심코 슬쩍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물리학적 기하학에 대해서, 그리고 실제의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수학적 기하학은 선험적이다. 그리고 물리학적 기하학은 종합적이다. 어떤 기하학도 선험적이면서 종합적일 수는 없다. … 경험주의를 받아들인다면, 선험적이면서 종합적인 지식은 결코 있을 수 없다. – 235~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