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환재 박규수 연구», 창비, 2008.

… 박규수는 서학중원설과 그에 근거하여 중국 고대 천문학과 지리학의 부활을 주장했다. 이와 함께,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의 천문연구 전통을 계승하려는 의식도 드러내었다. 나아가 유교와 중화주의에 입각해서,서양 종교와 학술에 대한 배외적 태도와 아울러 중화문명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표명했다. – 594

고염무는 “근대 문장의 병은 전적으로 모방에 있다”고 하면서, 명대 전후칠자의 복고주의를 배격하고 창신을 강조했다. … 문학이란 시대에 따라 불가피하게 변화하며 각 시대마다 그 시대에 적합한 문학이 출현하게 마련이라는 점을 들었다. … “문장에는 정격이 없다”고 하면서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개성을 표현할 것을 역설했다. – 609

고염무의 문학관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철두철미 경세치용에 기여하는 문학을 강조한 점에 있다. … “문학은 반드시 천하에 유익해야 한다”고 하면서, 유교 도덕을 밝히고, 당대의 정치를 논하며, 민중의 고충을 살피고, 선행을 표창하는 문학을 주장했다. … 따라서 고염무는 문인에게 문예적인 기량보다 덕행과 학문을 먼저 갖추도록 촉구했다. – 609

… 그는 그림이란 오직 ‘진경실사’를 그림으로써 실용을 지녀야 한다는 화론을 피력하면서, “무릇 이른바 학이란 모두 실사이다. 천하에 어찌 무실한데도 학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있을까보냐!’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학문이란 모름지기 ‘실사’를 연구함으로써 경세제민에 기여하는 ‘실용’을 지녀야 한다고 본 것은, ‘유용지학’ ‘수기치인의 실학’을 강조한 고염무의 학문관과 직결되는 견해라 하겠다. – 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