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카와 고지로(吉川幸次郞), 조영렬 옮김, «독서의 학», 글항아리, 2015(2014).

본래 책의 언어는 잊히고 버려진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그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저 이 자연스러움에 따르기만 하는 것이 인식의 방법으로, 따라서 또한 학문의 방법으로 충분하고 완전할까. – 16

<<장자>> <소요유>에 보이는 ‘명자실지빈야名者實之賓也’라는 구절은 ‘언어’란 사실의 빈객, 사실의 종자이다, 따라서 일단 사실을 획득하면 언어의 표현형태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언어경시’ 사상을 드러내는 아포리즘으로 인용이 가능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인용된다. … 그런 목적으로 종종 인용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명’이라는 단어가 중국어, 적어도 고대중국어에서는 ‘언어’라는 뜻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 19~

유가의 고전 <<역>>에 보이는 언어불신 사상이란 <계사전> 상편에 보이는 두 구절이다.

서부진언書不盡言, 언부진의言不盡意
(글은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말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이 구절 또한 <<장자>>의 ‘명자실지빈야’ 혹은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得意忘言’처럼 아포리즘으로 인용·이용된다. – 28

“이른바 근대적 학문의 존립 근거 자체에 대한 반성, 혹은 적어도 그러한 학문에 의해 배척당하고 있는 듯한 ‘다른 학문’을 복권시키자는 요청임을 쉽게 알 수 있을 터인데, 하여튼 그러한 요청을 하기 위한 고찰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 ‘언어’와 ‘사실’의 관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 내 의도가 정확하게 소개되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다. … 나는 역사학이 범람하면서 학문의 방법에 또 다른 맹점이나 결함이 생기지 않았을까 우려한다. 책의 언어는 … 사실을 획득하는 수단이자 과정이라고만 의식되고, … 언어 그 자체는 망각되고 버려지기 십상이다. – 95~

“고조는 패의 풍읍 중양리 사람이다.”

… 중요한 문제는 제국을 창업한 군주의 전기를, 사마천이 이렇게 그 출생지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 사마천은 모든 전기를 이렇게 출생지를 기술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 출생지로 기술을 시작하는 서술방법은 사마천이 다른 모든 인물을 대하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 100~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요컨대 책을 읽으려면 ‘저자를 읽자’는 것이다. … ‘사실’은 무조건 독자에게 밀려든다. 그러나 사실을 언어를 통해 전달하는 주체는 저자, 혹은 화자다. 저자 내지 화자가 어떠한 형태의 언어를 통해, 어떠한 태도를 바탕에 두고 사실을 전달하려 하고 있는가를 추구하는 작업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113

사실을 전달하는 첫 번째 기초가 단어에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단어에만 주의를 집중해서는 진짜로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다. 단어가 거듭 쌓여 음성의 흐름이 되고, 음성의 흐름이 낳은 리듬에 반영된 사실의 모습을 읽어내지 않는 한, 진정으로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이 내가 주장하고 싶은 핵심이다. – 206

‘구지 니주욘푼(9시 24분)’의 경우, 그 리듬은 좀 더 경쾌하고, ‘구지 고주욘푼(9시 54분)’의 리듬은 좀 더 무겁다. … 후자는 9시라는 좌표가 나타내는 범위의 시간, 그것이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은 인상은 리듬을 전자보다 무겁게 만드는 것이다. – 208


* 저자의 의도를 온전히 파악하려고 해야 한다. ‘무엇’을 말하는지만 알려하지 말고, 그것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읽어내야 한다.
* 사마천은 황제의 전기를 쓰면서 출생지를 적는 것부터 시작했다. 다른 인물을 기술할 때와 같은 형식을 취했다.
* 모어 화자만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고유한 리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