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각,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 서해문집, 2013.
료타쿠가 주도한 번역 작업은 지지부진한 가운데도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 주로 료타쿠가 조사해 추정한 단어나 문구 등에 대해 겐파쿠 등이 의견을 제시해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 그러나 료타쿠의 번역 방법엔 융통성이 없었다. … 어떤 단어나 구절에 너무 집착해 번역을 완료하지 않을 때까지는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 머리 회전이 빠르고 요령이 좋은 겐파쿠가 그같은 결점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했다. – 72
어렵지 않는 문장은 하루에 10행, 또는 그 이상도 번역이 가능해졌다. 이들이 번역 작업에 들어간 지 2-3년이 지나 어느 정도 네덜란드어를 이해하게끔 되자 ‘그 기쁨은 사탕수수를 씹는 것처럼 달콤했다’(<겐파쿠 회고록>)고 한다. – 81
<해체신서>가 몇 부나 출간됐느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 일본에 금속활자를 이용하는 인쇄기법이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간 조선 기술자들에 의해서였다. … 그러나 출판 대중화의 물결 속에 활자 인쇄는 선명하지는 못하더라도 많이 찍을 수 있는 목판 인쇄에 자리를 양보해 주고 밀려났다. –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