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崔益鉉) 등, 이주명 편역, «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필맥, 2014.

1880, 황준헌, <사의 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

지구상에 비할 데 없이 큰 나라가 있는데 러시아라고 한다. … 북쪽에 위치해 있어 기후가 춥고 땅이 척박하기 때문에 … 영토를 넓혀 사직을 이롭게 하려고 생각했다. … 표트르 왕 때부터 강토를 새로이 개척하기 시작해 이미 전보다 10배 이상으로 영토를 넓혔다. … 서방을 공략할 수 없게 되자 … 계획을 바꾸어 동쪽 강토를 공략하기로 했다. … 조선이라는 땅덩어리는 실로 아시아의 요충을 차지하고 있어 그 형세가 반드시 다툼을 가져오게 돼있다. … 러시아가 아시아의 강토를 공략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조선부터 공략할 것이다. … 조선의 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다. … 그것은 중국과 친하고(親中國), 일본과 맺고(結日本), 미국과 이음(聯美國)으로써 자강을 도모하는 길뿐이다. – 23

1883, 홍영식, 미국 방문 보고

고종: … 민주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몇 나라나 되며 구주에도 민주국가가 있는가?
홍영식: 구주에는 서사(瑞士), 불란서 등의 나라가 있고 남이미리가주에는 묵서가(墨西哥), 비로(秘魯), 지리(智利) 등의 나라가 모두 민주국가입니다. – 62

1923, 신채호, <조선혁명선언>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 – 287

경제의 생명인 산림, 천택, 철도, 광산, 어장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 가옥세, 인구세, 가축세, 백일세, 지방세, 주초세, 비료세, 종자세, 영업세, 청결세, 소득세, … 기타 각종 잡세가 날을 쫓아 증가하여 혈액은 있는 대로 다 빨아 가고, 여간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집중의 원칙 하에서 멸망할 뿐이요, 대다수 인민, 곧 일반 농민들은 피땀을 흘리며 토지를 갈아 그 종년 소득으로 일신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진공하여 그 살을 찌워 주는 영세의 우마가 될 뿐이요, 내종에는 그 우마의 생활도 못 하게 일본 이민의 수입이 연년 고도의 속률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서비리아의 황야로 물리어 가 아귀부터 유귀가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 경찰정치를 여행하여 우리 민족이 촌보의 행동도 임의로 못 하고 언론, 출판, 결사, 집회의 일절 자유가 없어 고통과 분한이 있으며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요,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뜬 소경이 되고, 자녀가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 하는 노예양성 소-학교-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무하여 소잔명존의 형제’라 하며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 영지’라 한 일본놈들의 적은 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하면 강도정치를 찬미하는 반일본화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염세, 절망의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 하에 감옥에 구류되어 주뢰(주리), 가쇄, 단근질, 채찍질, 전기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매는, 콧구멍에 물 붓는,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사전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서 옥문을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질자가 될 뿐이라. – 287

이상의 사실에 거하여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통치가 우리 조선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 289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휴수하여 부절하는 폭력 – 암살, 파괴, 폭동 – 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초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 1923년 1월, 의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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