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채(朴宗采), 박희병 옮김, «나의 아버지 박지원», 돌베개, 2018(2005).
이 책의 원래 제목은 <과정록>(過庭錄)이다. ‘과정록’은, 자식이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을 기록한 글이라는 뜻이다. 박종채는 4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이 책의 초고를 집필했으며, 그 후 몇 년에 걸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이 책을 완성하였다. – 역자
“… 사주는 마갈궁에 속한다. 한유와 소식이 바로 이 사주였기 때문에 고난을 겪었다. 반고와 사마천과 같은 문장을 타고났지만 까닭없이 비방을 당한다.” – 16
참봉 이광려는 문장이 빼어나고 인품이 훌륭한 선비다. 아버지께서 평계에 거처하실 때다. 하루는 지계공과 함께 인근 거리를 지나다가 어느 집 사립문 안에 조그만 수레가 있는 것을 발견하셨다. 만든 솜씨가 자못 정교하여 다가가서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그 집 주인이 마루에서 내려와 웃으며 맞이하면서, “그대는 혹 박연암 아니시오? 나는 이광려외다.”라고 했다. 대청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두 분은 문장에 대해 토론하셨다. 아버지는 이공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평생 독서했는데 아는 글자가 몇 자가 되지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며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이공이 글을 잘하고 박식한 선비라는 걸 누가 모른단 말야!’ 이공은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겨우 서른 자 남짓 아는 것 같군요.” 좌중의 사람들이 또 한번 깜짝 놀랐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공은 이 한마디 말로 단박에 아버지와 지기가 되어 이후 자주 찾아왔다. 그리고 새로 지은 시문이 있으면 반드시 소매에 넣어 가지고 와서 아버지의 평을 청하였다. … 두 분은 하루종일 담소하고 변론해도 당론이 다른 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