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서병훈 옮김, 《공리주의》, 책세상, 2010(2007).

** 요약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자유와 권력의 대립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지배자의 이익이 대립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으며, 인민의 의지에 따라 지배자를 바꿀 수 있는 민주공화정이 들어섰다. 그런데 권력을 행사하는 인민은 그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과 늘 같진 않다. 엄밀히 말하면 인민의 의지란 다수파의 의지로, 정치 영역에서 ‘다수의 횡포’는 가장 경계해야 할 해악이다. 법률적 제재 이외의 사회적 통념 역시 다수와 일치하지 않는 개별성을 억압한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자기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그 외에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무슨 일을 시키거나 금지해선 안 된다. 효용(공리)은 모든 윤리적 문제의 궁극적 기준인데, 다른 사람의 이익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에 대해서만 외부의 힘이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할 수 있다.

자유의 세 가지 기본 영역은 1) 양심, 생각과 토론 같은 내면적 의식 영역 2) 기호의 영역 3) 결사의 자유 영역이다. 이 세 가지 자유가 존중되지 않으면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다.

여론을 빌려 자유를 구속하는 건 해악이다. 전체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지녔다고 그에게 침묵을 강요해선 안 된다. 진리를 더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설사 통설이 전적으로 옳을지라도 진지하게 검증하고 시험해야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각자 개성을 꽃피울 수 있어야 한다. 적당히 나이가 들어 경험을 자기 방식대로 이용하고 해석하는 건 인간의 특권이자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조건이다. 아무리 악명 높은 폭정이라도 개별성이 발휘될 여지가 있는 한 아직 최악은 아니다.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선의 상태에 최대한 가깝게 끌어올리는 것이 우리의 이상이며, 누구든 어느정도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자유가 허용되는 곳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독립적 개선 요소가 뿌리내린다. 발전 원리는 자유를 사랑하든, 개선을 사랑하든, 그 형태에 관계없이 관습의 횡포에 대해 적대적이다. 상업과 제조업의 발달은 사람들 사이의 유사성을 촉진하므로 개별성에 대해 대단히 적대적인 환경이 만들어진다.

개인은 사회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노동과 희생 가운데서 자기몫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 덕목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을 굳이 찾는다면 사회적 덕목을 꼽는다. 사회는 전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개인의 행동에 대해 처벌을 가할 수 있다.


쾌락의 질적 차이가 무슨 뜻이냐… 어떤 쾌락을 다른 쾌락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대답은 하나뿐이다. … 둘을 모두 경험해본 사람 거의 전부가 … 하나를 더 뚜렷하게 선호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더욱 바람직한 쾌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27

…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가장 적합한 개념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다. … 혹시 이런 인간적 품위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행복을 잃게 된다고… 우월한 사람이 자기보다 열등한 사람에 비해 행복을 덜 느끼게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과 만족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개념을 혼동한 결과다. 즐거움을 향유하는 능력이 낮은 사람일수록 손쉽게 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반면에 그런 수준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은, 세상이 늘 그렇듯,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완전한 것을 감내할 만하다면, 그는 그것을 참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 결국 만족해하는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워하는 인간이 되는 편이 더 낫다. 만족해하는 바보보다 불만을 느끼는 소크라테스가 더 나은 것이다. 바보나 돼지가 이런 주장에 대해 달리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한쪽 문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비교 대상이 되는 다른 사람들은 두 측면 모두 잘 알고 있다. – 28~29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해주는 행위는 그 동기가 의무감에서였든 아니면 그런 수고를 통해 보상을 받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든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옳다. … 공리주의 도덕에 대해 가해지는 또 다른 비난 – … 공리주의가 사람들을 차갑고 동정심 없게 만든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행위를 촉발하는 도덕적 요소는 내버려둔 채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만 삭막하고 딱딱하게 고려한다는 것이다. … 공리주의자들도 결국에는 좋은 행동이 좋은 성격을 가장 잘 입증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 43~46

… 긴 시간 동안 인류는 경험을 통해 행동의 경향을 배워왔다. 이런 경험이 우리 삶의 모든 도덕률은 물론 사려 깊은 지혜의 기초가 된다… 전해내려온 판단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도덕률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선의 여지가 한없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인간 정신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곳에서는 그런 이론들 역시 영원히 발전한다. – 51

… 공리주의 도덕이 강력해지면 강력해질수록 교육과 일반 교양도 그 목적에 더 부합하는 방향으로 쓰인다. – 61

… 강력한 자연적 감정의 기초가 분명 존재한다. … 사회적 감정이란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망인데… 인위적으로 가르치지 않더라도 문명이 발전하면서 그에 비례해 점점 강해진다. – 67

습관만이 유일하게 감정과 행동에 확실성을 심어준다. …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하나의 독립적인 습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85

나는 효용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정의에 관한 가상의 기준을 제시하는 모든 이론을 반박하는 한편, 효용에 바탕을 둔 정의가 모든 도덕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그 어느 것보다 더 신성하고 구속력도 강하다고 생각한다. –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