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진원숙, 〈Lorenzo Valla 의 비판사학 소고〉, 대구사학 제19호, 1981.

로마에서 출생한 발라는 22세에 북부 이탈리아의 파비아에서 수사학 교수로 활동했고, 30세 이후에는 나폴리 국왕 알폰소 5세의 서기, 40세 이후에는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서기로 활동했다.

로렌초 발라는 ‘언어’가 지혜를 밝히는 원천이라고 굳게 믿었다. 인간 문화는 언어에 의해 형성되므로 수사학, 문법 등 언어학이 인간을 진리로 이끄는 데 철학이나 논리학보다 더 중요하다. 라틴어 문법, 문체론인 “Elegantiae linguae Latinae”(1444)가 그의 주저이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저술은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이 위조 문서임을 밝힌 “De falso credita et ementita Constantini donatione declamatio”(1440)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교황 실베스트르 1세에게 로마 제국의 서부 지배권을 양도했음을 기록한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에 대해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와 피코크 등이 위조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주로 역사적 맥락을 들어 추상적 비판을 했던 것에 비해, 로렌초 발라는 명시적 언어 표현을 분석 도구로 삼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공들여 작성되었어야 할 공식 문서에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조악한 문체, 모순적 내용, 시제 불일치, 애매한 구절, 중언부언, 시대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용어 사용 등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서기 324년에 작성된 문서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주요 근거는 다음과 같다.

- 당시에는 기독교 도시도 아니고, 그렇게 명명되지도 않았던 ‘콘스탄티노폴리스’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
-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왕’으로 지칭한 점.
- 비밀스러운 장소(작은 사당)에서 이루어졌어야 할 의식이 대중적 교회에서 치러졌다고 적은 점.
- 교황청 성직자들에게 원로원 의원직을 수여한다는 상황이 비합리적이라는 점.
- 당시에는 천으로 제작되었던 교황관(티아라, 삼중관)이 ‘황금과 보석’으로 이루어졌다고 표현한 점. (교황관 존재 자체도 의심스러움)
- 황제가 교황에게 수여했다는 어깨끈은 목에 두르는 가죽띠를 잘못 표현한 거라는 점.
- 그 외에도 황제 복장에 대한 이해가 형편없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