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Ted Chiang), 김상훈 옮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엘리, 2019(2016).
광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 201
빛이 한 각도로 수면에 도달하고, 다른 각도로 수중을 나아가는 현상을 생각해보자. 굴절률의 차이 때문에 빛이 방향을 바꿨다고 설명한다면, 이것은 인류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빛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한다면, 당신은 헵타포드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해석이다. / 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이다. 모든 물리적 사건은 완전히 상이한 두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는 하나의 언술에 해당한다. 한 가지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하고, 한쪽에서 아무리 많은 문맥을 동원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일은 없다. – 212
맥락이 서로 다를 뿐,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타당하거나 덜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유명한 착시 현상을 닮았다고나 할까. 고개를 뒤쪽으로 돌린 우아한 젊은 여인으로도 보이고, 턱이 가슴에 묻힐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인, 울퉁불퉁한 코를 한 노파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그림의 경우처럼 ‘올바른’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양쪽 모두 동등하게 타당하다. 그러나 두 그림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었다. – 218
헵타포드의 경우 모든 언어는 수행문이었다. 정보 전달을 위해 언어를 이용하는 대신, 그들은 현실화를 위해 언어를 이용했다. 그렇다. 어떤 대화가 됐든 헵타포드들은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 219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 네 아버지가 이렇게 물어.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러면 나는 미소 짓고 “응”이라고 대답하지…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안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너를 가지기 위해. – 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