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 라티오, 2021.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후 헬라스 세계는 삼십 년 평화조약을 맺음으로써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억지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 그런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둘 다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으니 적대감이 상승한다. 공포가 쉽게 적대감으로 번지는 것이다. 일종의 ‘덫’에 빠진 상태다. … 덫에서 빠져 나오려는 세력들에 의해 조약이 파기됨으로써 전쟁이 시작된다. – 37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이른바 ‘역사적 소크라테스’와 정확하게 부합하는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플라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크세노폰의 텍스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이런 의문에서 벗어나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처럼 하나의 주제를 드라마처럼 창작하여 쓴 것이 아니라 기억을 더듬어서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들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 58
지금까지 우리는 플라톤의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기 위하여 예비적인 독서를 한 것이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참조하여 헬라스 세계의 고유한 체제인 폴리스에 대해 개념적으로 파악하였다. 그 폴리스인들이 같은 헬라스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면서도 싸움을 벌이던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크세노폰의 <헬레니카>를 읽었다. 소크라테스는 헬라스 세계가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이던 시기, 아테나이가 라케다이몬에 패배한 시기 모두를 살았다. 그리고 그 시기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젊은 제자였다. 크레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은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공공 영역에서 중요하게 여긴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그가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강조했던 덕목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 71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 “저는 알지 못합니다”로 시작해서 “신을 빼고는 모두에게 불명한 일입니다”로 끝난다. 시작과 끝 모두가 ‘모른다’이다. … 신을 빼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마지막 말은 ‘정말 모르겠다, 신은 아시겠지’라는 함축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나는 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신께서는 나을 알아 주실 것이다’라는 의미를 강하게 풍긴다. … 처음부터 끝까지 소크라테스는 강한 확신 속에서 자신의 재판에 임했다. – 72
신은 소크라테스에게 두 가지를 지시했다. 하나는 지혜를 사랑할 것, 다른 하나는 자신과 남들을 캐물어 들어가면서 살 것. –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