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골드스타인(Rebecca Goldstein), 고중숙 옮김, «불완전성: 쿠르트 괴델의 증명과 역설», 승산, 2012(2007).
괴델의 정리들은 인간 정신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게 아니며… 모든 사고를 규칙전개로 보는 모델에 내포된 한계를 보여 준다. 그 정리들은… 인간 정신에 대한 특정의 환원적 이론을 배격하는 것이다… 괴델의 정리들은… 본래 수학적 진리이면서도… 인간의 본질에 관한 핵심적 질문, 곧 “우리가 인간이라 함은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 29
지적인 싸구려 겉치레는 진리뿐 아니라 도덕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는 크라우스의 견해는 빈의 동시대인들에게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 79
“철학자 루돌프 카르납은 ‘빈서클의 즐거운 분위기는 한없는 겸양과 인내와 다정함을 갖춘 슐리크의 인격 덕분이었다’라고 말했다. – 88
…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이 실제로 있다고 보았다. … 윤리적이거나 신비적인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으며, 이런 것들은 실재이면서도 표현이 불가능했다. – 117
공리들의 수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데, 왜냐하면 최대한의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직관에 대한 호소는 최소한으로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 142
형식주의는, 적어도 수학의 범주 안에서, 실증주의자들의 선언서에 적힌 주장, 곧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주장을 선포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 형식체계를 창조하며, 이로부터 모든 수학이 따라 나온다. – 152
힐베르트의 첫째 문제는 칸토어의 연속체가설에 관한 것인데, … 칸토어는 … 실수와 자연수의 개수는 모두 무한이지만 실수의 개수가 자연수의 개수보다 많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 ‘대각선논법’…을 이용하면 … 자연수와 짝을 짓지 못하는 실수가 무수히 많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실수집합은 자연수집합보다 큰 농도를 가지는데 … 자연수의 농도보다 크고 실수의 농도보다 작은 농도를 가진 무한집합은 없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이것이 칸토어의 연속체가설이며 … 괴델과 폴 코헨은 … 연속체가설은 참이나 거짓 그 어느 것으로도 판정할 수 없음을 증명했던 것이다. … 다시 말해서 연속체가설은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으므로 그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나 알 수 없는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바로 힐베르트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무지의 한 예가 되었다. – 154
괴델의 독창적 고안을 통해 형식체계의 명제들 사이에 성립하는 모든 논리적 관계들은 그 체계 자체의 산술적 언어로 표현이 가능한 산술적 관계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증명의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정수이다. – 192
괴델의 경우 각각의 형식체계에는 그 안에서 표현가능이되 증명불능인 진리들이 존재하며, 그 계에 대해 가장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는 그 계가 무모순이더라도 이를 그 계 안에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괴델과 초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실증주의자들이 자꾸 되풀이하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고대 소피스트들의 슬로건에 대하여 공동으로 맞서는 처지이다. 두 사람 모두 인간에 대한 척도를 가진 근본적 불완전성이 존재함을 단언했던 것이다. … 괴델은 그의 불완전성정리가 신비로움, 특히 적어도 종교의 세계에서 어떤 귀결들을 내놓을 것이라는 암시에 공감하기도 했다. …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만간 제 증명이 종교에 유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듭니다. 어떤 의미로 종교는 의심할 바 없이 정당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괴델은 그의 제1불완전성정리가 영원한 진리들을 품은 초감각적 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플라톤주의를 뒷받침한다고 믿었다. – 210
힐베르트는 수학에서 직관에의 호소를 모두 제거하여 역설이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주사를 놓으려고 했다. 괴델은 직관에의 호소가 제거될 수 없음을 보임으로써 형식주의의 예방계획을 무너뜨렸다. … 괴델은 수학이 직관 없이 나아갈 수 없음을 보였다. – 216
… 과학적 성향을 가진 괴델 이후의 사상가들…은 괴델의 불완전성정리로부터 우리가 무엇인지, 또는 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괴델의 정리는 우선 우리의 지성이 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알려 준다고 말한다. – 218
… 수학자인 로저 펜로즈는 … 지성이 컴퓨터는 아니지만 물리적 계라고 믿었다. … 수학적 직관을 낳는 지성은, 기계적으로는 포괄할 수 없음이 밝혀졌지만, 물리적 계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지성의 비계산적 측면을 수용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비기계적 과학을 개발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양자역학의 신비들은 이 과정에서 좋은 안내자가 될 것이다. – 220
물론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점에 대한 증거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형식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며, 이것도 불완전성의 한 측면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란 점을 엄밀히 증명할 수 없다. 불완전성정리는 형식화의 한계를 보여 줌으로써 우리의 지성이 기계를 초월할 수도 있지만 그 점을 증명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참으로 거의 역설에 가까운 결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222
… ‘자기무한반복’의 예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 눈 나쁜 사람이 안경을 찾지 못하면 ‘안경 찾을 때 쓸 안경’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 리모컨을 찾지 못할 때 ‘리모컨을 찾는 리모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이 과정도 안경의 예에서와 같은 무한반복을 이룬다. … 프랙탈에서 보는 ‘자기닮음성’의 본질도 사실상 이와 동등하다. – 315, 옮긴이의 말.
처음에 열역학은 에너지의 끊임없는 소산을 표현하는 열역한 제2법칙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다양한 열역학적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없었기에 독립적인 법칙들을 더해서 결국 네 가지로 귀착되었다. … 수학은 처음 기하학에서 시작했지만 이후 계속 새 분야가 더해져서 오늘날 보는 광범위한 체계를 이루었다. 물리학도 역학에서 시작했지만 이후 열역학, 전자기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으로 확장되었다. … 모든 학문체계는 본질적으로 열린 체계이다. 그래서 항상 보다 넓은 체계를 지향하며, 이 과정에서 기존체계로는 증명불능인 새로운 공리들이 계속 덧붙여진다. 그리고 이 과정은 불완전성정리가 시사하는 바로 그 현상이다. 다시 말해서 불완전성정리의 내용은 우리가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던 상식과 일치한다. … 괴델은 불완전성정리를 통해서 학문의 근본에 자리 잡은 상식을 마치 전혀 새로운 사실인 것처럼 절실히 깨닫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 기존 공리계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나타나면 이를 확장해서 풀고, 또 그 확장된 공리계를 계속 적용하고, 다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면 그에 맞추고 또 확장해 가는 과정을 되풀이하면 된다. 사실 지금까지의 학문발전 과정이 모두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 319,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