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에로스를 찾아서〉 읽기
일부러 어렵게 쓴 인문학 책은 없다. (저자가) 어떤 개념을 정확하게 규정하려다보니 표현이 복잡해졌고, 그러다 보니 (독자에게는) 어렵게 보이는 것이다. 인문학자 강유원 박사가 쓴 <에로스를 찾아서>는 매우 어려운 책이지만, 여러 번 읽으면서 차근차근 분석하고 한 구절씩 따져보면 이해 못할 부분이 없다. 인문학 영역에서 사용하는 개념들로 서술됐기 때문이다. 다만 쉽게 전달하겠다는 의도가 없고, 오로지 의미를 적합하게 잘 표현하겠다는 의도만 있을 뿐이기에, 인문학 기본 개념들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에게는 매우 난해해보일 것이다. 인문학의 개본 개념들을 익힌 다음에는 상징들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건 조금 나중에 살펴보겠다.
기본적인 수학 개념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미분 방정식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수학 개념들을 모르는 사람에게 간결한 미분 방정식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서는 아주 길고 긴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수학 기호 하나하나에 해당하는 것이 인문학에서는 개념들이다. 어려워보이는 인문학 책도 그 안에 사용된 개념들(기호)의 기본 용법만 알고 있으면 이해하기에 전혀 어렵지 않다.
한 단락을 읽어보자.
일자가 스스로를 물질적 현존으로 객관화하므로 이를 객관적 관념론, 일자의 자기외화가 그러한 객관화에 있어 주요한 동인이므로 실천적 관념론, 이념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으로 현상하여 정지된 상태를 지양 폐기하고 또다른 현상을 낳아 놓으면서 궁극의 목적을 향해 생동적으로 진전하므로 생동적 관념론이라고 한다. 예술미와 예술작품의 현존을 사변적 구조 속에서 논의한 헤겔은 이 구조를 바탕으로 하여 미의 역사적 현재성을 주장한다. – 136쪽.
조금 풀어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 진리나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적인 정신은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때로 누구나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것을 다룬 이론을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한다. 관념론이란 정신이 물질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다. 즉, 정신의 역할이 물질에 앞선다는 말이다. 보통 관념론이라고 하면 정신의 활동만 가리키므로 안으로 숨는 것처럼 보이는데 비해, 객관적 관념론이란 객관적으로, 즉 어떤 대상들의 모습으로 자기 모습을 바깥으로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실천적인 관념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신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지만 그 정신이 표현된 문자와 글은 딱 고정돼 있다. 그렇게 우리가 어떤 생각을 고정된 문자로 표현하듯, 살아움직이는 정신적인 것이 물질로 표현되면 정지 상태가 되는 셈이다. 이런 상태를 끊임없이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만들고 발전시키려는 것이니까 살아움직이는 관념론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예술가의 정신은 보이지 않지만 예술작품은 우리 앞에 실제로 나타난다. 따라서 예술을 정신의 측면으로 분석하고자 했던 철학자 헤겔은, 아름다움이란 정신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 세계, 즉 실제의 역사 속에서만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 단락을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인문학의 공통 개념들을 숙지해야 한다.
* 일자: 모습과 속성이 변하는 부분들이 아닌 항상 일정한 전체.
- 파르메니데스가 주창함. 비슷한 개념: 무한자, 절대자, 실체, 진리…
* 현존: 본질이 드러남.
* 관념론: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관점.
* 외화: 자신의 본질적인 것이 밖으로 드러남.
* 현상: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남.
* 지양: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서기 위해 이전 것들을 버림.
* 사변: 보거나, 듣거나, 만지거나… 하는 경험 활동이 아닌 순수한 사유 활동.
* 헤겔: 인간의 정신이 역사 속에서 계속 발전하여 완전한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함.
(플라톤의 이데아 + 역사의 발전 = 헤겔 관념론)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일자가 스스로를 물질적 현존으로 객관화하므로 이를 객관적 관념론,
→ 진리나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적인 정신은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때로 누구나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것을 다룬 이론을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한다. 관념론이란 정신이 물질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다. 즉, 정신의 역할이 물질에 앞선다는 말이다.
일자의 자기외화가 그러한 객관화에 있어 주요한 동인이므로 실천적 관념론,
→ 보통 관념론이라고 하면 정신의 활동만 가리키므로 안으로 숨는 것처럼 보이는데 비해, 객관적 관념론이란 객관적으로, 즉 어떤 대상들의 모습으로 자기 모습을 바깥으로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실천적인 관념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념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으로 현상하여 정지된 상태를 지양 폐기하고 또다른 현상을 낳아 놓으면서 궁극의 목적을 향해 생동적으로 진전하므로 생동적 관념론이라고 한다.
→ 정신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지만 그 정신이 표현된 문자와 글은 딱 고정돼 있다. 그렇게 우리가 어떤 생각을 고정된 문자로 표현하듯, 살아움직이는 정신적인 것이 물질로 표현되면 정지 상태가 되는 셈이다. 이런 상태를 끊임없이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만들고 발전시키려는 것이니까 살아움직이는 관념론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예술미와 예술작품의 현존을 사변적 구조 속에서 논의한 헤겔은 이 구조를 바탕으로 하여 미의 역사적 현재성을 주장한다.
→ 예술가의 정신은 보이지 않지만 예술작품은 우리 앞에 실제로 나타난다. 따라서 예술을 정신의 측면으로 분석하고자 했던 철학자 헤겔은, 아름다움이란 정신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 세계, 즉 실제의 역사 속에서만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 인문학 영역에서 자주 통용되는 기본 개념은 100개 정도 된다. 하나씩 익혀가면 된다. 우리는 그 중 10분의 1 정도를 방금 익혔다. 차근차근 꾸준히 해나가면 된다. 계속 연습해보자.
“플로티노스는 절대적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저편의 아름다움은 눈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다. 본래 저편의 아름다움은 빛을 비춤으로써 이편에 아름다움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원형과 모상이 빛의 비춤으로 연결되었으니 우리가 … 원형을 보려 한다면, 눈을 감고 영혼을 작동시켜야만 한다. … – 43
* 인문학에서는 인물 자체가 개념처럼 통용되기도 한다. 플라톤 = 이데아, 스피노자 = 범신론(신의 속성이 만물 안에 깃들다)
* 플로티노스: “완벽한 것(이데아)이 흘러넘쳐 만물을 구성하였다.”
* 저편의 아름다움: 앞에 ‘플로티노스’가 언급되었으므로 ‘저편’은 이데아를 가리킴.
* 눈으로 보아서는: 시각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감각(시각, 청각, 촉각…)을 가리킴.
* 빛: ‘진리’의 상징,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매개체. 플라톤은 “태양 비유”를 들면서, <태양-빛-시각>이 <진리-인식(에피스테메)-앎>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설명했음.
지금까지 아름답다 여겼던 것들은 불현듯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43
* 그림자: <국가> 제7권에 나오는 “동굴 비유”. 평생 온몸이 묶여서 동굴 한쪽 벽에 비치는 그림자만 바라보던 사람들은 자기가 보는 세상이 세상 전부라고 여긴다.
저편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흘려 내려서 지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었다. 우리는 그렇게 흘러내린 길을 영혼으로써 따라 올라간다. 이렇게 올라가는 길에는 수에 의한 척도, 비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비례는 감각적 사물의 조화를 파악하는 데에나 쓸모 있을 뿐이다. – 43
* 아름다움을 조금씩 흘려 내려서: 플로티노스가 설명하듯, 존재의 완벽성으로…
* 지상의 아름다움: 스피노자의 범신론처럼, 신의 속성이 깃든 만물의 아름다움.
* 영혼으로써: 인간의 불완전한 감각들에 의존하지 않고…
* 수에 의한 척도, 비례: 피타고라스 학파는 만물의 구성 원리가 비례라고 여겼다. 세계를 이루는 모든 사물과 현상은 정수배(자연수로 표현하는 비례)로 설명된다.
* 감각적 사물의 조화를 파악: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이해
신이 되고자 애쓰는 인간, 신이 된 인간은 절대적인 것과 유한한 것, 하강과 상승의 두 계기의 변증법적 통일에 이른다. 아름다움은 절대적 일자에 대한 믿음에 의해, 신이 되려는 인간의 신비한, 이해를 넘어서려는 노고에 의해 성취된다. – 43
* 변증법적 통일: 헤겔의 개념. 모순되는 두 개념이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가리킴.
* 일자: 파르메니데스의 개념. (부분은 변해도 전체는 불변하는) 완전한 전체.
- 쿠자누스는 신이 세계를 창조할 때… “닮은 것은 닮은 것에서 태어나니, 그로 인해 본성의 어울림을 좇아 낳아진 것을 낳는 것에서 생겨난 것이다.” … 신은 무한자요, 인간과 세계는 유한자이다. 유한자인 인간은 같은 유한자인 세계를 알려 한다. 인간이 세계를 알려고 할 때 그의 머리 속에서는 오성이 움직인다. 인간은 오성으로써 세계를 탐구하여 박식한 경지에 오른다. … 세계는 신의 드러남이다. 이 세계 안에는 신의 무한함이 묻어 있다. 인간과 세계는 신의 현현이다. … 오성을 가진 인간이라 해도 이성이 없다면 신을 알 수 없는 것이다. – 45
* 쿠자누스: 원을 무한히 확대하면 그 작은 일부는 직선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원이 신이라면 인간은 직선이다. 즉, 직선은 곡선을 어림한 값이다. 인간(유한성)이 신(무한성)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 무한자: 어떤 범주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 신, 이데아, 진리…
* 유한자: 어떤 특정 범주로 규정되는 존재. 사물, 인간, 인간이 만든 개념들…
* 오성: 우리 사는 세계를 파악하려는 개념적 사고.
* 이성: 절대성, 무한자를 파악하려는 정신. 상징적으로는 우리 안에 깃든 ‘신적인 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