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정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일단 그 내용이 우리 상식과 너무 어긋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별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여기고, 시간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져 있으며, 공간 역시 누구에게나 똑같이 펼쳐져 있다고 여긴다. 그것이 우리 상식인데 아인슈타인은 이를 모두 부정한다.

빠르게 이동하는 물체의 시간이 지연되고 공간은 수축된다든지, (특수 상대성 이론)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든지(일반 상대성 이론)… 하는 현상들을 우리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상상하기도 힘들다. 아인슈타인 이론은 광속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해명되기 때문에, 우리가 살면서 보는 가장 빠른 물체가 총알이나 전투기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속 4천km로 날아가봐야 시간 지연이나 공간 수축 등을 확인하는 일은 가능하지가 않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구성되는데, 특수한 조건에서만 적용되는 특수 상대성 이론이 먼저 나왔고, 모든 조건에서 두루 적용되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나중에 나왔다.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것은 특수 상대성 이론이 밝힌 원리다.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특수 상대성 이론을 집약한 이 간단한 표현에는 어려운 단어가 없지만, 그 문장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관찰자가 보기에, 정지한 이쪽의 시간보다 움직이는 저쪽 물체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 설명을 덧붙여보았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 같다.

우리는 주변의 변화나 시계를 보면서 시간이 흐른다는 점을 파악한다. 약속 시간을 정하여 만날 수 있는 건 우리가 공통의 시간 개념, 공통 시계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뜨고지는 해를 비롯하여 장인이 만든 스위스 시계에 이르기까지, 일정하게 반복 운동을 하는 모든 것은 시계가 될 수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사용되는 시계를 보면 마라톤 경기에서처럼 1초 단위로 측정하는 시계도 있고 사이클에서처럼 0.001초까지 재는 시계도 있다. 반복되는 간격이 촘촘하고 짧을수록 시계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현대 과학으로 다룰 수 있는 것 중에서 왔다갔다 하는 간격이 가장 촘촘한 것은 원자의 떨림이다.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고유한 원자를 원소라고 부르는데, 일정한 떨림 횟수(진동수)가 많아서 더 정밀한 시계로 쓸 수 있는 원소들이 있는데, 세슘이나 이터븀 같은 것들이 그렇다. 현재까지 가장 정밀한 장치인 이터븀 시계라 해도 우주 공간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물체에 실리면 지구에 남겨진 이터븀 시계보다 느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정지한 상태에서 정해진 구간을 아래위로 1번 왔다갔다 하는 주기 운동을 떠올려보라. 이 주기 운동이 일어나는 판 전체가 우주선에 실려서 빠르게 움직인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을 밖에서 보면 아래위로 1번 왔다갔다 하는 거리가 조금 늘어난다. 정지한 상태에서는 위쪽 방향으로 수직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빠르게 움직이다보니까 수직으로 올라가지 않고 비스듬하게 올라갈 수밖에 없고, 위까지 도착하면 다시 내려올 때도 비스듬하게 내려오게 된다. 이동 거리를 비교해보면 아래위 직각으로 왕복한 거리보다 대각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내려온 거리가 조금 더 길다. 똑같은 1초 같았는데, 정지한 상태에서의 1초와 움직이는 상태의 1초가 같지 않다. 지상의 시계는 ‘똑딱’하고 움직였지만 우주선에 실린 시계는 ‘또옥따악’하고 움직였다.

결국 아무리 정밀한 시계를 찾아낸다 해도 위치가 바뀌면 시간이 서로 달라진다는 말이 되니까, 우리가 공통의 기준으로 삼을 만한 불변하는 시계는 없는 셈이다. 그건 시계 장치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본질이라서 그렇다. 애초 시간은 항상 공간에 따라 , 즉 물체 위치와 이동에 따라 신축성 있게 변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서로 다른 운동을 하고 있으므로 완벽하게 동일한 한 종류의 1초란 없는 것이고 따라서 불변하는 ‘절대 시간’도 없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이론이 틀린 적은 없지만, 이 이론을 우리가 살면서 확인하기는 어렵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더 느려진다는 것은 적어도 광속에 견줄만한 고속의 물체에서나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속에 견준다는 것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아주 빠른 것을 비유할 때 ‘총알처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총알의 속력은 고속열차의 10배인 시속 3천5백km인데, 빛의 속력인 시속 11억km에 견주어보면 0.000003%밖에 안 된다.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려지는 것을 우리가 느끼려면 적어도 광속에 견줄 만한 속력이 돼야 할 텐데, 광속의 60%에 육박하는 속력으로 날아가야 시간이 겨우 1.2배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조깅을 열심히 하면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으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빛의 속력’을 기준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지구에서의 우리 일상과는 관련이 없다. 빛의 속력으로, 우주의 스케일로 바라보았을 때, 정확히 같은 시간이 우주에 없다면, 시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신축성 있는 고무줄처럼 그때그때 달라지는 어떤 것이다. 뉴턴은 시간이 우주 어디서나 똑같다고 여겼다.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뉴턴의 이론에 크게 감동한 철학자 칸트는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에 바탕을 둔 새로운 철학 체계를 구상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 개념을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서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우주라는 차원에 비해 지구라는 세계가 너무 작아서, 그 미묘한 차이를 도무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며, 광속과 비슷한 속력을 우리가 체험하기도 상상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에 운전대를 잡았을 때 식은 땀이 흐르고 두려웠던 때를 떠올려보자. 이 쉽고 간단한 운전을 왜 그렇게 힘들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전거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뭔가를 새로 익혀서 터득한다는 게 다 그렇다. 과학 지식은 모국어처럼 그냥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경험 지식과는 분명 다른 면이 있다. 자전거나 운전처럼 일부러 배우려고 시도해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노력해서 넘어서야 하는 작은 장벽이 항상 있다.

자전거가 휘청거리면서 넘어질 것 같을 때, 용기를 내어 더 세게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점, 그래야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처음 깨달았을 때의 희열을 떠올려보라.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들어가는 첫 장벽은 ‘지구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이라는 상식적 사고를 일단 잊는 일이다.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가 지구에서 눈을 돌려 더 넓은 코스모스를 바라보고 상상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