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곽복록 옮김, «어제의 세계», 지식공작소, 2014(2001).
머리말
… 나는 과거의 어떤 사람도 그렇지 못했을 만큼, 모든 뿌리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그 뿌리를 지탱하는 땅으로부터도 떨어져 나왔던 것이다.
… 또 혼자 “나의 집”이라고 말해 놓고서는 그것이 영국의 바드에 있는 집인지 아니면 잘츠부르크에 있는 집인지, 그렇지 않으면 빈에 있는 부모님의 집인지, 도대체 전의 어떤 집을 말하는 건지 자신으로서도 선뜻 알 수 없을 때는 허를 찔린 듯한 기분이 되어 깜짝 놀라고 만다.
오직 스스로 남으려고 하는 회상만이 다른 여러 가지 회상에 대신하여 남겨질 권리를 갖는다. 그런즉 이야기하라, 선택하라, 그대 회상들이여!
[테오도르 헤르츨의] 묘지에서는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 모든 질서는 내가 그 이전과 이후의 그 어느 장례식에서도 본 일이 없었던, 일종의 근원적인 무아지경의 슬픔 때문에 파괴되어 버렸다. 수백만 민중 전체의 마음속으로부터 경련처럼 복받쳐 오는 거대한 비통을 눈앞에 보고, 혼자이고 고독한 한 인간이 그의 사상의 힘으로 얼마나 많은 정열과 희망을 세상에 던졌는가를 나는 비로소 헤아릴 수 있었다. – 134
[베를린에서 살아가며] 그리고 한 인간의 평판이 나쁘면 나쁠수록 그 평판의 소유자를 직접 알아보려는 나의 흥미는 왕성해졌다. 위험한 인물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라고 할까 호기심이라고 할까 하는 것이 전 생애를 통해 나를 따라다녔다. – 143
… 자신의 길에 확신이 없는 젊은 작가에게 충고를 준다면, 나는 상당히 위대한 작품을 각색하거나 번역하는 데 봉사하라고 권장할 것이다. 초심자의 모든 자기 헌신적인 봉사 속에는 자기가 창조하는 것 이상의 확실성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몰두하여 행하는 일은 절대로 해서 헛된 일이 없는 것이다. – 151
한 민족 또는 한 도시의 궁극적인 것, 가장 깊숙이에 숨어있는 것을 안다는 것은, 책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가장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것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단지 그곳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을 통해서만 알게 되는 것이다. – 166
[레옹 바잘제트였다.] … 진정으로 헌신적인 인간이며, 자기 삶의 과제를 오로지 자기 시대의 타고난 재능들이 자신을 실현하고 열매를 맺도록 돕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들의 발견자이자 촉진자라고 찬양받는 당연한 자부심에도 절대 빠지지 않았다. 그의 적극적인 열광은 그의 도덕적 의식의 자연스러운 기능에 지나지 않았다. … 그는 월트 휘트먼을 프랑스인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그의 시 전부를 번역하고 기념비적인 전기를 쓰는 데 10년을 소비했다. – 169
… 순수한 서정시인들이 오늘날의 요란스럽고 보편적인 파괴의 시대에 과연 다시 한 번 가능할 것인가? … 그들은 … 모든 덧없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함으로써, 그들의 생활은 그 자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청춘 시절에 그렇게 오점 하나 없는 시인들을 우리들 사이에 가졌다는 것은 내게는 더욱 더 멋진 일이라고 생각된다. … 이들 모든 시인 가운데 릴케만큼 소리 없이, 비밀스럽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았던 사람은 없었다. … 헛되게 몰려오는 호기심의 큰 파도는 그의 이름만을 침해했지 그의 인격을 침해하지는 못했다. 그는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애정을 담아 말했다. 아무리 하찮은 테마도 그가 말하면 얼마나 생생하고 중요한 모습을 취하여 가는가를 경청하며 따라가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 173~175
한번은 그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집에서 트렁크의 짐을 챙기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물건 하나하나가 마치 모자이크 세공처럼 너무도 귀여운 모습으로 차곡차곡 정돈된 트렁크의 빈자리에 채워지고 있었다. 이 꽃과도 같은 정돈을 도와준다고 손을 대서 어지럽히는 일은 무례한 행동처럼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의 근원적인 미적 감각은 가장 사소한 데까지 따라다녔다. 그는 둥그스름한 달필로 가장 좋은 종이 위에 마치 자로 잰 것처럼 행과 행이 똑같은 간격으로 떠 있을 만큼 정성들여 원고를 썼을 뿐 아니라, 정말이지 대수롭지 않은 편지를 위해서도 고르고 고른 종이를 사용했고 깨끗하고 둥근 필치로 종이를 채웠다. … 본질적으로 그에게 내재되어 있는 고요함과 정신 집중은 그를 가까이하는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바삐 돌아가는 릴케 같은 건 생각할 수 없었고, 그의 앞에서 그의 고요함으로부터 넘쳐나오는 진동에 의해서 요란함과 불손함이 사라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사양하는 듯한 태도는 비밀스럽고 계속적이고 의미심장하고 도덕적인 하나의 힘처럼 울려 퍼졌다. 그와 상당히 오랜 대화를 하고 난 뒤에는, 몇 시간 동안 아니 며칠 동안이나 뭔가 저속한 일을 할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 177
그에게 그가 알지 못하는 책을 빌려 주면, 흠하나 없이 엷은 종이로 싸서 선물처럼 색깔 있는 리본으로 묶어 그 책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가 나에게 귀중한 선물로 <사랑과 죽음의 노래>의 원고를 나의 방으로 가지고 왔을 때의 광경을 나는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것을 묶었던 리본을 보관하고 있다. – 179
가장 멋진 것은 파리에서 릴케와 함게 산책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을 깨어난 눈으로 그것들의 의미를 새롭게 보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소한 것도 주의 깊게 바라보았고, 간판에 쓰인 회사의 이름까지도 리드미컬한 울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면 기꺼이 소리내어 입 밖에 내보았다. – 179
유럽이 시작했고 미국이 완성하게 된 이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가! – 239
우리들 공통의 이상주의, 진보에 기초를 둔 우리의 낙관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공통의 위험을 판단하지 못하게 했고 경시하게 했다. – 251
…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제1권을 읽기 시작했는데, 점점 놀라움과 흥미에 끌려 들어갔다…. 우리가 보잘 것 없는 것의 발표에 정력을 낭비하고 있을 동안 그는 조용히 참을성 있게 모두에게 각 국민의 개성적인 면과 가장 사랑스러운 특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일에 몰두했던 것이다. … 모든 선전 책자나 항의문보다 더 마음을 파고들었다. 여기 우리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원하고 갈망했던 것이 조용히 완성되어 있었다. – 253
전쟁에 대한 공포는 갑작스런 열광으로 돌변했다. … 젊은 신병들은 의기양양하게 행진했다. 그들의 얼굴은 밝았다. 보통 때 같으면 아무도 안중에 두지도 않았고 찬양하지도 않았던 미미한 평범한 사람들인 그들에게 사람들은 환호성을 보냈기 때문이다. 진실을 존중하기 때문에 나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 최초의 군중의 출발에는 뭔가 당당한 것, 감동적인 것, 그리고 매력적인 것까지 내포되어 있어 이것을 피해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전쟁에 대한 모든 증오와 혐오에도 불구하고 이 최초의 한동안의 추억을 나의 생애에서 놓치고 싶지 않다. 수천 수십만 명이 평화 시에 더 한층 느껴야 했던 일, 즉 그들은 하나라는 것을 이때만큼 느꼈던 일은 없었다. 200만 명의 한 도시, 거의 5000만 명의 한 나라에서, 그들은 세계사에 결코 다시 기록될 수 없는 순간을 서로 체험하고 있다는 것, 각자는 그 미미한 자아를 불타고 있는 군중 속에 내던지고 거기에서 모든 이기심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정화한다는 것을 그때에 느꼈던 것이다. 신분, 언어, 계급의 모든 구별은 그 순간 넘쳐나오는 형제애의 감정으로 덮였다. … 각 개인이 자기 자아의 드높여짐을 체험했고, 그는 이제는 이전의 고립된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군중 속에 끼어들었으며, 민족의 일부였고, 이때까지 주목을 받지 않았던 그의 인격은 하나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신비스러운 도취는, 거의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우선은 우리 시대의 초대형 범죄에 대해 하나의 거칠고 거의 감동적인 의기양양함을 주었던 것이다. – 281
그러나 1939년의 세대는 전쟁을 알고 있었다. … 전쟁은 로맨틱한 것이 아니라 야만적인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 285
…1914년의 전쟁은 현실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망상, 더 좋은, 올바르고 평화로운 세계라는 환상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식이 아니라 망상만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희생자들은 꽃으로 된 관을 쓰고 철모에는 떡갈나무 잎을 두르고 환호하면서, 축제 때와 마찬가지로 떠들썩하고 빛이 찬란한 길거리를 지나 도살장으로 행군했던 것이다. – 286
영국은 독일의 가장 큰 적이며 전쟁의 주모자라는 감정을 그는 <영국에 대한 증오의 노래>라는 시에서 표현했다. 그 시는 지금 나한테는 없지만ㅡ 엄격하고 간결하고 인상적인 시구로 영국에 대한 증오를 영국의 ‘범죄’를 결코 용서하지는 않겠다는 영원한 맹세로 드높인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얼마 안 있어 증오를 일으키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는 것이 분명해졌다(이 눈이 먼 뚱뚱하고 키 작은 유태인 리사우어는 히틀러의 예를 선취한 것이었다). 그 시는 폭탄이 탄약고에 떨어진 격이 되었다. 아마 독일에서 어떤 시도, <라인강의 감시> 조차도, 이 악명 높은 <영국에 대한 증오의 노래> 만큼 급속도로 파급된 적은 없었다. 황제는 감격해 리사우어에게 적색 독수리 훈장을 수여했다. 그 시는 모든 신문지상에 인쇄되었고, 교사는 그것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크게 읽어 주었고, 장교들은 전선에서 군인들에게 읽어 주어서, 모든 사람들이… 암송하게 되었다. – 291
가게에 걸려 있던 프랑스어나 영어의 간판 글자는 없애 버려야만 했다. 수도원의 ‘천사수녀회’까지도 개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민중들은 천사수녀회의 이 ‘앵그리슈’라는 말이 천사를 말하는 것이지 앵글로색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흥분했기 때문이다. 우직한 상인들은 봉투에 ‘신이여 영국에 벌을 주소서’의 표어를 붙인다든지 날인을 하곤 했다. 사교계의 부인들은 살아 있는 한 절대로 프랑스어를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그녀들은 그것을 신문 투고란에 썼다). 셰익스피어는 독일 무대에서 추방되고,모차르트와 바그너는 프랑스와 영국의 음악당에서 추방되고, 독일 교수들은 단테가 게르만인이라고 선언하고, 프랑스 교수들은 베토벤은 벨기에인이라고 선언했다. – 294
나는 바로 『예레미야』의 저자로서, 나의 예술로써 패배를 극복하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꼈던 것이다. 전시에는 없어도 괜찮은 인간이었던 나는 이제 전쟁에 지고 난 이후에 설 땅을 얻은 것같이 생각되었다.- 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