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J. 에번스(Richard J. Evans), 이재만 옮김, «에릭 홉스봄 평전», 책과함께, 2022.
학자에게는 특정한 의무가 있습니다. 증거와 논거를 따져보고 학문적 방법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학자는 증거를 왜곡하거나 누락할 경우, 혹은 논거를 무시할 경우 비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학자가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쓴다고 비판받을 수는 없습니다. 출판업자는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책을 마르크스주의자 저자가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에게 집필을 의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저자에게 집필을 의뢰했다면 출판업자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원고(공산주의 선전물로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를 받았다고 해서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 431
책의 구조는 주된 방법론적 전제, 즉 경제가 또는 마르크스주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생산양식이 다른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전제를 구체화한 것이었다. 그래서 책은 산업혁명에 관한 서술로 시작했다. 이미 이 도입부부터 책의 깊은 독창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혁명의 시대>에서 채택한 지구적 시각에 따르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영국인들의 어떤 기술적 또는 과학적 우위 때문이 아니라 영국이 특히 1815년 이후로 해양을 장악하여 인도와 라틴아메리카에 면직물을 수출하는 시장을 사실상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