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이기상 옮김, «존재와 시간», 까치, 2003(1998).

* 요약

고대 그리스부터 전해져온 전통적인 존재론에서 ‘존재’란 만물을 아우르는 가장 높고 근본적인 범주로서 ‘확고부동’하고 ‘불변’하는 ‘완전함’으로 간주돼 왔다. 존재를 가리키는 ‘실체’는 신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우리 의식에 떠오르는 것들은 ‘허상’이나 ‘불완전한’ 지각으로 여겨졌다.

하이데거는 그동안 간과되었던 모든 정신 활동, 우리 의식에 떠오르는 현상들이 바로 ‘존재’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의식에 떠오르는 것들을 검토하여 존재를 연구하는 분야를 ‘현상학’이라고 부른다.

존재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을 존재자라고 부른다.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존재자(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사람, 동식물, 사물 등) 중에 ‘나는 어떤 존재인가?’ 하고 스스로 묻는 것은 인간뿐이다. 이런 존재자를 하이데거는 ‘현존재’라고 부른다.

우리는 우리 의지대로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다. 우연히 세상에 내던져졌고, 불가피하게 세상과 연관을 맺어야 하며, 죽음이라는 숙명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이런 인간을 ‘세계-내-존재’라고 부른다. ‘세계 안에 사는 존재’라는 뜻도 되고 ‘세계와 서로 연관을 맺는 존재’라는 뜻도 된다.

‘세계-내-존재’는 ‘현존재’와 동일한 우리 자신이다. 시공간의 한계 속에서 사는 인간을 가리킬 때는 ‘세계-내-존재’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존재의 본질에 대해 숙고할 때는 ‘현존재’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숙명(부자유)을 안고 살지만 삶을 선택(자유)할 수 있는 인간을 ‘실존적 존재’라고 부른다.

우리는 ‘현존재’로서 존재가 무엇인지 호기심을 품거나, ‘세계-내-존재’로서 다른 존재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산다. 죽음이라는 숙명을 안고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과 어떤 대상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실존적인 정신의 활동을 하이데거는 ‘마음씀’(Sorge, 심려)이라고 일컫는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새로 규정하는 개념들은 무척 많지만 그 공통된 특징은 일상어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존재에 대해 ‘막연하게’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막연하게 느낀 다음에 구체적이고 정교한 내용은 차차 파악해 나가면 된다.

‘마음씀’(심려) 역시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의미와 비슷하다. 우리는 항상 주어진 상황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기대하고, 상상한다. 우리가 마음을 쓰지 않는 분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우리는 ‘모든’ 것에 두루 마음을 쓴다.

그렇다면 ‘마음씀’이라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 활동은 모든 영역에 두루 해당하는 ‘있음’(존재)을 파악하기에 제격이 아닐까. 어쩌면 마음씀이라는 것이 존재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씀’과 더불어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 파악에 필수적인 개념은 ‘시간’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현존재가 존재의 본질을 찾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시간에 의해서만 파악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있음’은 ‘없음’과 대비될 때 비로소 알려지는데 그것을 알 수 있는 건 시간 때문이다.

시간성은 필수적인 존재 속성이라서 시간 없이는 존재도 없고, 시간 역시 존재와 더불어 시작된 것이므로 존재가 소멸하면 시간도 사라진다. 이러한 시간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를 읽으며 창조 이전과 시간의 본질을 숙고한다.

하느님은 어떤 의지를 갖고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 즉 유한한 어떤 것을 ‘무’에서 만든 것으로 시간도 그와 더불어 탄생했다. 따라서 피조물인 존재자들은 자신들과 더불어 창조된 시간을 통해 세계와 다른 존재자를 알 수 있다. 무한한 신이 창조한 유한한 시간은 유한한 우리 의식에 깃들어 있다.

모든 시간은 한 번도 똑같지 않은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하는데, 시간과 마찬가지로 현존재(세계-내-존재) 역시 매 순간 새롭게 규정되며 파악되는 존재 역시 매번 조금씩 다르다.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은 고대 그리스 이래의 고정된 존재 개념과 사뭇 다르다.

과거는 ‘기억으로서의 현재’이고 현재는 ‘지각으로서의 현재’이며 미래는 ‘기대로서의 현재’다. 그 모든 것이 ‘의식’에 달렸다. 이런 주체적인 인식 태도가 후대 데카르트에게 영향을 끼쳤다. 현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지만 항상 존재 전체를 가리키고 있다. 시간은 존재를 알려주고, 존재는 시간을 인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