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니컬슨(Adam Nicolson), 정혜윤 옮김,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세종서적, 2016.

이 복잡한 세상에 여정의 종착지쯤은 미리 알고 떠난다 해서 나쁠 게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결말부터 미리 다 말해버리는 게 호메로스의 작법이기도 하니까. – 서문

나는 호메로스의 시가 한 민족이 지중해 땅에 도래한 사건을 둘러사고 만들어진 신화라는 설명이 옳다고 생각한다. 호메로스의 시는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복잡학 불안한 상태에 있었던 당시 그리스 정신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신화다. – 서문

서사시는 단순히 기억을 전달하는 행위 이후에, 그리고 역사 기술 이전에 발명된 것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제3의 공간을 차지한다. 서사시는 ‘기억하기’라는 활동이 갖는 질적인 특성을 역사가 대상으로 삼는 시간의 범위에까지 확장시키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서사시가 지향하는 목표는 머나먼 과거를 바로 우리 자신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으로 만드는 것, 오래전에 만들어진 위대한 이야기들이 지금도 아름답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 서문

그런데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인생의 중반기에 들어선 남자인 내게 불현듯 이 시가 그때 그곳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는 그 목소리를 듣는 이의 마음속 지리를 묘사했고, 구석구석 거대한 은유로 점철되어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지중해가 아니라 한 인간이 삶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욕망을 항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들은 저 멀리 있는 창조자가 아니고 우리 안에 있는 요소들이었다. 분별력의 결핍으로 인한 무자비함, 변덕스럽고 일시적인 흥미, 무심함, 시시때때로 튀어나오는 이기심, 기만, 땅이 뒤흔들릴 정도로 쿵쿵거리며 걷는 것, 이 모든 것들이. –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