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 편집부, «뉴턴 하이라이트 2: 양자론», 뉴턴코리아.

양자론의 막을 올린 아인슈타인의 광자(광양자)’ 에 관한 개념을 소개했지만, 실은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개념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1858~1947)가 1900년에 발표한 ‘양자 가설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플랑크를 양자론의 아버지’라 한다.

당시 독일에서는 제철업이 활발했다. 제철업에서는 용광로 속의 온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용광로 속의 온도는 거기에서 나오는 빛의 색깔을 보고 경험적으로 판단되었다. 예컨대 빨강, 노랑, 하얀색의 순으로 고온이 되어 간다. 그러나 더욱 질 높은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용광로 속의 온도를 매우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물체의 온도와 거기에서 나오는 빛의 색깔(빛의 파장)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려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여러 실험 결과에서, 둘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는 범종(梵 모양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리고 물리학자들은 실험 결과의 그래프와 일치하는 법칙을 찾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가운데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빈(1864~1928)은 파장이 짧은(진동수가 높은 영역에서만 실측값과 일치하는 공식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파장이긴(진동수가 낮은 영역에서는 오차 범위 이상의 차이가 인정되었다.

한편 영국의 물리학자 존 레일리(1842~1919) 등은 반대로 파장이 긴(진동수가 낮은) 영역에서 실측값과 제대로 일치하는 공식을 이끌어 냈지만, 파장이 짧은(진동수가 높은 영역에서는 전혀 실측과 다른 결과를 얻었다.

이들 결과에서 빈이나 레일리의 이론은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이 분명해졌다. 즉 고전론의 한계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때 등장한 사람이 플랑크였다. 플랑크는 우선 왜 그렇게 되는지는 제쳐 놓고, 모든 파장에서 실험 결과와 제대로 일치하는 공식을 발견했다. 그러고 나서 그 공식이 가진 더욱 깊은 의미를 파악하려고 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뒤 플랑크는 공식을 설명하려면 에너지가 불연속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즉 에너지에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최소의 덩어리(양자)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양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플랑크의 생각은 아주 엉뚱한 것이었다. 플랑크 자신도 그 결과가 옳음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하면 플랑크의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플랑크의 이론에 의하면, 빛을 방출하는 원자나 분자의 진동 에너지는 진동수를 (뉴)라 하면 반드시 에너지의 최소 단위 hy의 정수배가 되며, 0.5배니 1.9배니 하는 값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최소 단위 는 진동수로 진동하는 ‘에너지 양자’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플랑크가 생각한 양자 가설이다. 여기에서 h는 ‘플랑크 상수(h=6,626×10*Js)라 하며, 현재는 자연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상수의 하나가 되었다.

플랑크의 주장은 원자나 분자의 진동 에너지가 불연속적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 후 아인슈타인은 빛의 에너지도 불연속적이 된다는 광양자 가설 (32~33쪽)을 제안했고, 그것이 빛은 입자의 집단이라는 이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양자론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은 플랑크는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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