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 박찬국 옮김, «상징형식의 철학», 아카넷, 2011.

* 요약 pp. 174~196.

훔볼트에 따르면, 언어는 (예술과 마찬가지로) 정신의 단순한 에르곤이 아니라 정신의 에네르게이아(고정되지 않은 생생한 활동)으로 사유돼야 한다. 앞선 논의들을 먼저 살펴보자.

콩디약은 자연언어에서 계산언어(수학기호 등 포함) 등 복잡한 형식이 파생됐다고 본다. 단순하든 복잡하든 “표상의 분절화 – 결합 – 배열”로 이루어지는 과정과 원리는 동일하다. 즉, 특수에서 보편을 찾으려는 인식 충동을 표현한 것이 언어다. 언어는 이해 영역 안에 있다. 헤르더는 “언어이성”이 어떤 규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목적 없는 합목적성”에서 비롯한다고 보았다. 지성적인 것과 비지성적인 것이 통일된 어떤 것이다.

견해들의 차이가 크든 작든 ‘언어가 관념의 기호’라는 점은 공통 견해인데, 근대 철학에서 주관성이 강조될수록 언어의 표상적 역할보다는 정동/충동 표현으로서의 언어가 부각되었다. 극단적으로는 ‘하만’에게서처럼 언어와 감각이 동일시되었다. 하만에게 추상적이며 개념적인 사고는 살아있는 자연현상을 죽은 것으로 만드는 행위나 다름없다.

정신에 관한 보편 형이상학 영역 안에서 언어 문제를 따져보았던 비코는 단어와 의미 사이의 자연적 연관을 깊이 파고들었다. 감정이 실린 단음절 감탄사가 모든 언어의 기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발음과 의미 사이에 놓인 이 동적인 관계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명사가 그다음에 출현했고 그다음에 동사가 나타났다. 자연적인 정동과 감정을 중시하는 이런 경향은 루소에게 이어졌다. 이성중심주의(인간의 개념적 인식이 초래하는 교만)를 비판한 하만은 인간의 직접적 감정과 언어를 동일시했다.

헤르더는 신비적이며 반지성적인 하만에 의거하면서도, (하만과 정반대처럼 보이는) 언어를 판명한 개념 형성 시각에서 보는 라이프니츠를 결합하고자 한다. 언어가 (정동의 표출인) 부르짖는 소리에서 설사 기원한다 해도 그것이 언어의 본질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작용인 ‘내성’(Besinnung)을 간과해선 안 된다. 더 이상 쪼갤 수 없으며 모든 본질이 내재한 ‘단자’ 개념을 받아들이면, 인식 과정에서 우리가 동일성과 지속성을 파악 가능한 것을 해명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구별한다는 것이 ‘내성’(반성)의 존재와 중요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언어는 감정의 산물이자 동시에 내성의 산물이다. 언어가 표면상으로는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 해도, 실은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된 것이다. 의식 자체의 종합적 형성 작용이 곧 언어다. 헤르더의 관점은, 계몽주의에서 낭만주의 시대로로의 이행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언어 = 유기체’ 관점이 점점 강조되기 시작했다. 보편적이며 추상적인 통일체로서가 아니라, 특수한 것들의 총합이자 전체로서 드러나는 통일체로서 언어를 파악해야 한다는 철학적 세계관이 언어철학의 새로운 정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