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반도체 8대 공정, 이해부터 암기까지

앞 글자만 따로 떼서 외우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암기법이다. 암송하면서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외우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리듬에 맞추어 어절을 잘 끊어 읽는 것이 암기의 관건이다. 입에 잘 감기고, 귀에도 잘 감기면, 그만큼 잘 외워질 것이다. 여기에 이야기를 만들어서 입히면 암기 효율은 더 높아진다. 단순히 암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반도체 제작 공정 전반에 대한 아주 간략한 해설도 덧붙이고자 한다. 반도체 제작 공정을 파악하면, 과학 이론이 기술로 어떻게 응용되고, 일상생활에 어떤 제품으로 그 기술이 구현되는지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으므로 현대 사회를 파악하는 데 두루 유익하다.

반도체는 첨단 장비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장난감 전기밥솥 등 전기 신호를 사용하는 모든 제품들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반도체 제작과 유통은 단순히 반도체 회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 전반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제작 공정은 크게 8단계로 나뉘는데, 그 단계별로 많은 제조 회사들이 분포되어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디지털 신호는 0과 1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명령을 실행하는 것은 1, 실행하지 않는 것은 0이다. 트랜지스터는 이 신호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다. 전구의 전원을 켜고 끄는 스위치를 만든다면 트랜지스터 하나가 필요하다. 여기에 깜빡이는 기능까지 넣고 싶다면 트랜지스터가 하나 더 필요하다. 기능이 복잡하고 명령어가 많아질수록 트랜지스터 수도 많아져야 하는데, 무수한 프로그램과 명령어를 실행해야 하는 스마트폰에는 트랜지스터가 2억 개가 넘게 들어간다. 신형 애플 컴퓨터에는 트랜지스터 160억 개가 들어간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트랜지스터들이 빽빽하게 심어져있는 회로판을 ‘집적회로’(집적: 빽빽하게 모여있음)라고 부른다. ‘반도체’는 실리콘처럼 전기가 통하기도 하고 안 통하기도 하는, 즉 전기 제어를 하기에 좋은 물질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반도체’라고 쓰는 표현은 ‘실리콘’이 아니라 ‘반도체집적회로’를 가리킨다.

왜산-포식-증배-퇴폐

이렇게 배열하여 외워보자.

왜산-포식-증배-퇴폐

이 8글자를 쉽게 외우기 위해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았다. 머릿속으로 장면을 상상해보자. ‘왜산(일본산) 회를 포식하고 배가 증대돼서(배가 늘어나서, 배가 너무 불러서) 퇴폐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로 외우면 된다. 아마 어렵지 않게 이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일본산 회를 배불리 먹고 배가 불러서 퇴폐적인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연상 재료들이 유치하고 괴상할수록, 더러 변태적일수록 더 잘 외워진다.

왜산(웨산)… 1. 웨이퍼 공정 2. 산화 공정
포식(포식)… 3. 포토 공정 4. 식각 공정
증배(증배)… 5. 증착 공정 6. 배선 공정
퇴폐(테패)… 7. 테스트 공정 8. 패키징 공정

이 각각의 제작 공정 이름이 전문용어라서 매우 낯설고 딱딱한데 처음이라 그렇다. 천천히 낭송하면 이 낯선 느낌이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각각의 공정을 스스로 설명하는 것은 한두 번 익혀서는 힘들고 여러 번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치며 연습을 해야 한다. 그 설명 단계로 넘어가려면 일단 이 8글자 웨-산-포-식-증-배-테-패를 완전하게 외워서 자신감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 일단 외우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므로, 참고 자료 없이 머릿속으로만 연습해도 스스로 해설까지 할 수 있는 보람찬 순간이 문득 올 것이다. 반도체를 만드는 8단계 공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웨이퍼 공정: 동그란 실리콘 원판 제작
2. 산화 공정: 원판에 산화막을 입혀서 오염 방지
3. 포토 공정: 사진을 찍고 현상하듯 빛으로 회로 촬영
4. 식각 공정: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냄
5. 증착 공정: 효율을 높이려고 회로를 겹겹이, 층층이 쌓음
6. 배선 공정: 전기가 통하도록 전선을 배치
7. 테스트 공정: 전기 신호가 잘 통하는지 확인
8. 패키징 공정: 용도에 맞게 반도체 편집

* 웨이퍼 원판의 재료는 실리콘(규소)이다. 실리콘의 원자번호는 14번이다.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전문가들이 ‘일사’(14)천리로 만들었다고 외우면 된다. 모래에서 실리콘을 뽑아낸 다음 덩어리로 만들고 이 덩어리를 규격에 맞게 원기둥으로 만든 다음 아주 얇게 썬 것이 웨이퍼다.

산화 공정은 웨이퍼에 산소막을 입혀서 불순물이 침투하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포토 공정은 사진을 찍듯이 회로를 그리는 과정이다. 심이 더 가는 볼펜을 쓰면 글자를 더 많이 채울 수 있듯이, 회로의 선을 좁히면 좁힐수록 더 작은 공간에 더 빽빽하게 회로를 채워넣을 수 있다. 회로 선은 자외선으로 그린다.

포토 공정에 필수적인 약품이 ‘감광액’(빛에 반응하는 액체)이라고도 부르는 ‘포토레지스트’인데, 자외선에 반응하여 회로의 기본 구조를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전에는 일본 회사들이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었는데, 일본이 우리나라에 일방적으로 수출 제한 조치를 해버리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국내 자급 생산을 추진하게 됐고, 대단하게도 현재는 기술 자립을 이루었다.

식각은 깎아낸다는 뜻이다. ‘침식’의 ‘식’과 ‘조각’의 ‘각’이다. 회로도를 그린 다음에 불필요한 부분을 섬세한 공정으로 제거한다. 자, ‘왜산-포식’까지 했다. 그럼 ‘증배-퇴폐’도 마저 해보자.

증착 공정은 회로를 위로 착착 쌓는 공정이다. 비싼 땅에 단독주택보다는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과 같은 원리다. 얼마나 오차 없이 잘 쌓아올리느냐가 관건이다. 배선 공정은 실제로 회로에 전기가 통하도록 전선을 까는 일이다. 주로 알루미늄을 사용한다. ‘퇴폐’(테패)는 ‘테스트와 패키징 공정’이다. 테스트 공정에서는 완성 직전에 전기가 잘 통하고 신호가 잘 제어되는지 시험하고, 패키징 공정에서는 반도체의 용도에 맞게 잘라내고 편집하여 완제품으로 포장한다. 제품에 각 회사들의 로고가 찍히는 단계다.

반도체 생산과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굴러가던 세계가 덜컹거리거나 잠시 멈춘다. 반도체가 부족하면 자동차 생산 라인도 멈춘다. 잘 보도되지 않지만 반도체 수급이 잘 안 되면 장난감이나 소형 가전을 만드는 중소기업들이 먼저 망한다. 그러니까 반도체는 반도체 8대 공정에 관련된 회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더 효율성 높은 반도체 재료를 만들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인간의 신경 세포인 뉴런을 본뜬 새로운 구조의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기초 과학 연구의 성과는 시간이 흘러 응용 과학 분야로 넘어가고, 그다음에 상용화 제품 생산으로 이어지며 우리 삶을 바꾼다. 과학 지식은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삶에 모두 연결되어 차례로 영향을 끼친다. “왜산-포식-증배-퇴폐”를 떠올리며 각 글자에 얽힌 이야기에 우리의 삶을 연관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