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안 보고 발표하는 요령
준비한 대본을 따로 보지 않고 청중들의 눈을 보며 발표를 하거나 연설을 한다면 설득력은 더 높아질 것이며 청중의 공감대도 더 커질 것이다. 거창한 연설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종종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인사말을 하거나 자기 소견을 조리 있게 발표해야 할 때가 생기곤 한다. 그때 쪽지를 보며 읽기보다는 사람들 얼굴을 차례로 보면서, 하고 싶었던 말이나 미리 준비한 문장을 멋지게 읊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좋은 발표를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긴장이다. 긴장하면 철저히 외웠던 내용도 전혀 떠올릴 수 없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긴장을 푸는 다양한 요령이 있겠지만 가장 무난하고 좋은 방법은 중요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먼저 꺼내는 것이다. (발표 직전에 확인) 긴장을 푼답시고 준비한 농담으로 발표를 시작하는 건 매우 좋지 않다. ‘긴장하면서 들려주는 농담’을 듣는 것은 청중에게 무척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긴장하거나 떠는 일이 흠이 아니다. 처음에 조금 떨더라도 중요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자신이 이미 공들여 준비한 내용이고 할 말도 많기 때문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덧붙여지고, 그러다보면 어색했던 분위기도 누그러진다. 이 30초~1분 정도 되는 도입부가 전체 발표의 성패를 좌우한다. 막힘 없이 이야기가 풀리면 긴장도 사라지고 떨리던 목소리의 톤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발표문 암기의 대가는 <수사학>을 지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다. 2시간이 넘는 분량의 의회 연설문을 통째로 외웠다고 한다. 그가 주로 썼던 방법은 자신이 매일 다니는 산책로의 여러 사물들에 그날 연설할 내용을 차례로 대응시킨 다음, 연설을 시작할 때 산책을 같이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순서대로 떠오르는 사물을 생각하며 연설 내용을 차근차근 떠올리는 방식이었다.
가령,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희생된 전사들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연설이 계획돼 있다고 해보자. 여기서 빠뜨리지 않고 반드시 전달해야 할 메시지가 있는데, “아이들 양육만큼은 나라가 평생 무상으로 책임지겠다.”라는 내용이라면, 산책길 중간에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에 아이들이 열매처럼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상상을 미리 해두는 것이다. 그러면 ‘연설 순서 = 산책 순서’이므로 적절한 순간에 해당 내용을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실습해보자.
* 발표 주제 “설명의 기술”
1) ‘지도가 아니라 약도처럼’ 표현하자.
2) 허리 건강에 좋은 기지개켜기를 생활화하자.
3) 눈높이 맞추기는 수준을 낮추는 아니라 정보량만 줄이는 것이다.
4) 예시: ‘중간이 푹 꺼진 트램펄린’으로 일반 상대성 이론 개념 소개
5) 예시: 산불 뉴스 “100헥타르 vs. 축구장 100개”
6) 비유의 양면성 강조, 비유는 쉬운 대신 부정확하다는 점 명심.
7) 본질은 유지하되 불필요한 부분을 버리는 과정을 추상화라고 한다.
8) 예시: 전철 노선도는 필요한 역 정보, 환승 정보만 남긴 일종의 약도.
9) 사람들은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쉽게 연다.
10) 최고의 설명 기술은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 즉 정보 공유다.
* 그리스/로마로 이어지는 수사학(설득술/연설 기법)의 전통에서 주제(topic)는 항상 장소(그리스어: topos)와 연관되었다. topic의 어원이기도 하다. 연상기억법의 선구자인 시인 시모니데스도 평소에 장소 정보를 암기 훈련에 적극 활용했다. 우리도 그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발표 내용을 소주제별로 차례로 정리하여, 모두 몇 단락으로 나뉘는지 파악한 다음, 그 개수(10개)에 해당하는 장소 정보를 순서대로 할당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발표의 첫 번째 순서에 배치하면 좋다.
1) 먼저 출근길이나 등교길, 또는 자주 방문하는 장소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이동하는 경로의 순차적인 동선이 필요하다. (실제 장소, 실제 사물 추천)
2) 그 동선에서 차례로 만나는 장소/사물 10개를 지정한다.
3) 각 사물에 차례로 발표 내용의 키워드를 대응시킨다.
4) 머릿속으로 집을 먼저 나서면서 연상되는 내용에 따라 발표를 진행한다.
[실습] 출근 경로(집 ~ 광화문)를 10단계로 나누고 발표 내용을 대응시킨다.
1) 침실 천장 → 2) 세면대 → 3) 커피 → 4) 엘리베이터 → 5) 아파트 정문 →
6) 버스 정류장 → 7) 버스 안 → 8) 전철역 앞 → 9) 전철 안 → 10) 광화문
1) 침실 천장 → 어설프게 대강 그린 ‘약도’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음.
2) 세면대 → 디스크 때문에 꼿꼿하게 서서 세수를 함. 바닥 물 천지.
3) 커피 → 하루에 딱 한 잔만 마실 것임, 양을 확 줄였음.
4) 엘리베이터 → 뚱뚱한 초등생이 유아용 방방이를 타고 있음. 민폐.
5) 아파트 정문 → 나무들에 불이 붙어서 소방헬기가 물을 뿌리는 중.
6) 버스 정류장 → 유치한 비유들이 난무하는 시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음.
7) 버스 안 → 피카소의 추상화(한자와 뜻은 다르지만)들을 전시 중임.
8) 전철역 앞 → 입구에 만화로 된 대형 노선도가 있음. 한눈에 보기 좋음.
9) 전철 안 → 같이 탄 승객들을 차례로 보면서 얼굴 외우는 중.
10) 광화문 → 이순신 장군(동상)께 마음속 고민을 솔직하게 터놓는 중.
1) 침실 천장 → ‘약도’가 천장에 대롱대롱 → ‘지도보다 약도처럼’
2) 세면대 → 꼿꼿하게 서서 세수 → ‘디스크 예방 기지개켜기’
3) 커피 → 딱 한 잔만 → ‘정보 질 아닌 양만 낮추기’
4) 엘리베이터 → 뚱뚱한 초등생 유아용 방방이 → ‘아인슈타인 중력’
5) 아파트 정문 → 나무에 불 소방헬기 → ‘헥타르 대신 축구장’
6) 버스 정류장 → 유치한 비유들 시들 덕지덕지 → ‘비유의 장단점’
7) 버스 안 → 피카소의 추상화 → ‘추상화의 중요성’
8) 전철역 앞 → 만화로 된 대형 노선도 → ‘전철 노선도’
9) 전철 안 → 승객들 얼굴 외우기 → ‘상대방 얼굴 이름 익히기’
10) 광화문 → 이순신 장군(동상)께 마음속 고민을 → ‘마음 터놓기’
자, 눈을 감고
몇 개나 떠오르는지
확인해보자.
우리 기억의 서랍에 넣어두었던
정보들을 차례로 꺼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