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의 묘

2011년쯤 EBS 수능논술팀에서 동영상 강의를 찍자고 연락이 왔다. 잘 준비한 것 같은데, 첫 촬영 때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시선이 탁자로 너무 자주 내려간다고 담당 PD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1회차 촬영을 겨우겨우 마치고 원래 그날 다 찍기로 했던 2회차 강의를 다른 날로 미루었다. 집에서 더 많이 연습을 했다.

2회차 강의는 무난하게 잘 마쳤다. 시선 처리도 훨씬 개선되었다. 3회차 강의는 2회차 때보다 여유가 생긴 탓인지 미소까지 지으며 잘 진행했다. 특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를 설명하면서 내가 보기에 왼쪽에서 오른쪽이 아닌 시청자가 보기에 왼쪽에서 오른쪽이 되도록 손으로 역방향 제스처를 취한 게 기특했다. 연습한 대로 몸이 딱 움직여주었다.

다른 것도 그러하겠으나, 새로운 강의 때마다 이전 강의보다 약간만 더 개선하면 결과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의 복기가 필요하다. 녹음해둔 것, 또는 기억을 짚어가며 일거수일투족을 다시 떠올려보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춘천교육청에서 주관한 글쓰기 강의를 복기하려고 녹음한 파일을 찬찬히 들어보았다. 준비한 슬라이드 자료를 가리키며 “뒤에서는 잘 안 보이시겠지만…”이라고 말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2회차 강의 자료를 준비하면서 폰트 크기와 가독성을 대폭 개선하여 뒤에서도 잘 보이도록 슬라이드를 고쳤다. 그러고 강의 직전에 제일 뒷자리로 가서 잘 보이는지 확인까지 했다.

Before: “뒤에서는 잘 안 보이시겠지만…”
After: “잘 보이시죠? 제가 아까 뒤에서 보니까 잘 보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