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김희숙 옮김, «백치1», 문학동네, 2021.

원제: Идиот[이디옫]

사제가 십자가를 들고 모든 사형수 앞을 돌아다녔습니다. 이제 목숨이 붙어 있는 것도 오 분 정도밖에 안 남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길, 이 오 분이 한없이 긴 시간처럼, 엄청난 재산처럼 여겨지더라는 겁니다. 그는 이 오 분 동안 아직 최후의 순간 같은 건 생각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많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동안에 할 여러 가지 일을 정했습니다. 시간을 계산해서, 동료들과 작별하는 데 이 분을 할당하고, 다음 이 분은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데 쓰고,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데 쓰기로 한 겁니다.

그는 자기가 바로 이 세 가지 일을 하기로 결정했고, 바로 그렇게 시간을 계산했다는 사실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더군요. 그는 스물일곱 살의 건강하고 혈기왕성한 청년으로 죽는 것이었는데, 동료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그중 한 명에게 상당히 엉뚱한 질문을 했고 그 대답에 무척 흥미를 느끼기까지 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동료들과의 작별인사가 끝나자,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계산해둔 그 이 분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기가 무엇에 대해 생각할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신속하고, 가능한 한 명확하게, 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되어갈 건지, 모든 것을 머릿속에 그려보려고 했습니다. 자기는 지금 존재하고 있고 살아 있지만, 삼 분 뒤면 이미무언가가, 그 누군가가, 아니면 그 무엇인가가 돼버린다—과연 누가 될 것인가? 과연 어디에 있게 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을 그는 이 이 분 동안 모두 해결하려고 생각했단 말입니다!

사형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있었고, 지붕에 금을 입힌 사원의 꼭대기가 눈부신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지붕과 거기 반사되어 반짝이던 태양 광선을 무서울 정도로 뚫어지게 바라보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빛에서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광선이야말로 자신의 새로운 자연이다, 이제 삼 분만 지나면 자기는 이 광선들과 어떤 식으로든 융합하게 된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일어나고 당장 들이닥칠 이 새로운 것이 불투명하다는 사실과 거기서 느껴지는 혐오감은 정말 끔찍할 정도였다더군요.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순간 그에게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이었습니다. ‘만일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만일 삶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그야말로 무한이리라! 그리고 그건 고스란히 내 것이 될 테지! 그렇게만 되면 나는 일분일초를 한 세기로 만들어 그 무엇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일분일초까지 정확히 계산해서 그 무엇도 헛되이 써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 생각은 마침내 증오감으로까지 변해서, 차라리 한순간이라도 빨리 총살시켜줬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는 겁니다.” – 제1부.